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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정당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혁신위…생존 전략인가 꼼수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03 08:21

민주당, ‘돈봉투 의혹·코인사태’ 등으로 혁신위 출범



역대 혁신위, 여야 불문 ‘용두사미’ 꼬리표 잇따라



전문가들 "리더십·실천가능 안건·충분한 시간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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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혁신기구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정당이 위기상황에 처할 때마다 등장하는 혁신기구를 두고는 당의 생존 전략 혹은 지도부의 꼼수라는 상반된 평가가 정치권에서 뒤따른다.

당의 위기를 타파하고 오랜 악습을 개혁하는 기구는 맞지만 역대 혁신위 마다 개혁적인 내용이나 뚜렷한 혁신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도 ‘돈 봉투 의혹’과 ‘코인 사태’로 얼룩진 당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출범했다. 김은경 혁신기구 위원장은 현재의 민주당에 대해 ‘기득권과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비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전면적인 혁신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도 정치권에서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혁신위가 꾸려지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을 두고 ‘그 자체를 혁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뭔가 개선하려는 의지인 것 같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다. 반면 당 지도부 체제가 유지되면서 혁신기구가 별도로 출범하는 방식이다 보니 지도부가 바뀌지 않는 한 혁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따라 붙는다.

2일 전문가들은 혁신기구에 가장 필요한 요소로 혁신위의 리더십, 실천가능한 혁신안, 충분한 시간 등을 꼽았다. 이번 혁신위가 성과를 내려면 혁신위 출범 원인이 된 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당내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고 이를 중심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 현황

직책이름소속
위원장김은경한국외대 법학전문대 교수
위원김남희변호사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 임상교수
윤형중LAB2050 대표
전 한겨레신문 기자
서복경더가능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진국아주대 법학전문대 교수
전 형사법학회장
차지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이진건양대 인문융합학부 교수
박성진광주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이해식21대 국회의원(서울 강동구을)
황희21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구 갑)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이선호민주당 울산광역시 당위원장
(자료=더불어민주당)


◇ 민주당, ‘돈봉투 의혹·코인사태’ 등으로 혁신위 출범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혁신위원회(혁신위)가 대두된다. 비대위와 혁신위는 같은 듯 다르다.

비대위는 현재 당 지도부의 체제를 대신하는 기구다. 당 지도부 자체가 사라지면서 비대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 역할을 맡는다.

반면 혁신위는 당 지도부를 교체하지 않고 별도 기구를 출범시키는 형태다. 혁신위원장이 당 대표를 대신하는 게 아니다. 혁신위가 당의 위기요소를 점검한 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추진해야 할 여러 가지 혁신안을 발굴해 당 지도부에 건의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당 쇄신을 주제로 한 의원총회에서 전당대회 투명성과 민주성을 강화하는 정치혁신 방안을 준비하고자 당 차원 혁신기구를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당을 둘러싸고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거액 가상자산 보유 논란’ 등 잇단 악재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당 안팎으로 쇄신 목소리가 뿜어져 나오자 김은경호 혁신위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다만 이번 혁신위는 시작부터 평탄하지 못했다.

당초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지난달 5일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됐지만 ‘천안함 자폭설’ 발언으로 논란이 일어 9시간만에 자진사퇴를 했다.

이 이사장의 사퇴 이후 열흘만에 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새롭게 혁신기구 수장으로 임명됐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새 혁신위를 출범했다.

혁신위는 앞으로 김 위원장을 포함해 외부 인사 8명, 내부 인사 3명의 ‘11인 체제’로 운영된다.

출범과 함께 꾸려진 혁신위원은 △김남희 변호사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윤형중 LAB 2050 대표 △이선호 민주당 울산광역시당 위원장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해식 민주당 국회의원 △차지호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등이다.

이후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비명(비이재명)계 황희 의원과 교수 2명 등 총 3명의 위원을 추가로 인선하면서 출범 열흘 만에 위원 인선 작업을 마무리했다. 추가로 영입된 외부 인사는 이진 건양대 행정학과 교수와 박성진 광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다.

혁신위는 지난 20일 첫 회의를 열었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가 나오게 한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암호화폐) 사건 중 돈 봉투 사건이 본질의 문제인 것 같고 코인은 개인 일탈처럼 보인다"며 "우선적으로 돈 봉투 문제를 의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매뉴얼을 만들어서 했는지, 매뉴얼이 제대로 없으니 (등을) 확인해 봐야 제대로 된 제도적 쇄신안이 나올 것 같다"며 "문제 발생의 원인부터 찾아보고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또 "2020년 이후 의원, 당직자 부패·비리 사건을 우선 진단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돈 봉투 사건과 연결시켜서 제도적 쇄신안을 만들어보자 의제로 만들어봤다"고 말했다.


□ 역대 민주당 혁신기구 활동 내역

혁신기구활동시기주요 혁신안도입여부
김상곤 혁신위원회2015년(문재인 전 당대표)당 사무총장제최고위원회 폐지O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 구성
현역의원 가운데 하위 20% 공천 배제
O
안심번호 통해 국민공천단 경선O
공천 경선 시 결선투표제O
정치 신인여성장애인청년 가산점 제도O
최재성 정당발전위원회2017년(추미애 전 당대표)현역 의원 경선 의무화△(수정 반영)
비례대표 상향식 공천X
부패 원인 제공 시 보궐선거 무공천X
탈당자 등에 대한 감점△(수정 반영)
김종민 더혁신위원회2020년(이낙연 전 당대표)전당원 온라인 청원시스템 구축O
당원국민 소통시스템 강화△(추후 반영)
청년 당원 연령 만 45세→39세로 하향△(추후 반영)
여성 당직 확대X
국회의원 선출직 공직자 평가항목 중 법안 발의 실적 권고X
청년민주당 재창당O
장경태 혁신위원회2022년(1차-송영길 전 당대표)국회의원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 제한X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제한X
위성정당 창당 방지X
당 공천관련기구 청년위원 20% 할당 의무화X
장경태 혁신위원회2023년(2차-이재명 당대표)‘당헌 80조’ 삭제X
대의원 전당대회 투표 비율 축소X


◇ 역대 혁신위, 여야 불문 ‘용두사미’ 꼬리표 잇따라

민주당의 역대 혁신위 중 가장 큰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는 혁신위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혁신위다.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선 두 달 만에 치른 4·29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 지역구 4곳에 모두 패하면서 퇴진 요구까지 받는 위기에 처했다. 이에 문 전 대통령은 혁신위 카드를 꺼내들고 계파색이 엷은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혁신위워장으로 임명했다.

김상곤 혁신위는 출범부터 해산까지 146일 만에 11차례에 걸쳐 내놓은 혁신안을 2번의 중앙위원회를 통해 당헌·당규에 모두 반영하는 성과를 내놨다.

당 사무를 총괄지휘하던 사무총장제를 폐지하고 내년 총선 후 최고위원회도 폐지하기로 했다.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현역의원 가운데 하위 20%는 공천에서 배제하는 안을 확정했다. 안심번호를 통한 국민공천단 경선을 통해 총선 후보자를 결정하는 경선안도 반영했다. 경선 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정치 신인과 여성, 장애인, 청년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마련해 제도로 확정했다.

2017년 추미애 전 대표 시절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혁신기구인 정당발전위원회(정발위)를 출범했다. 정발위는 위원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부터 추 대표의 ‘사심 채우기’ 수단으로 의심받았다. 정발위는 최재성 전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고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당내 주요 계파 인사를 포함시켰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의 측근인 이후삼 지역위원장,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천준호 지역위원장이 참여해 이목을 끌었다.

최재성 정발위는 △현역 의원 경선 의무화 △비례대표 상향식 공천 △부패 원인 제공 시 보궐선거 무공천 △탈당자 등에 대한 감점 등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역 의원들의 반발로 대부분의 안이 제외되고 일부 혁신안이 수정 반영되는 정도에 그쳤다.

2020년 이낙연 전 대표 시절에는 김종민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2020 더혁신위원회’를 꾸렸다. 김종민 혁신위는 △스마트플랫폼 전국정당 구현 △전당원 온라인 청원시스템 구축 △당원·국민 소통시스템 강화 △청년 당원 연령을 만 45세에서 만 39세로 하향 조정 △여성 당직 확대 △국회의원 선출직 공직자 평가항목 중 법안 발의 실적 권고 △청년민주당 재창당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김종민 혁신위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제안한 방안 중 온라인 청원시스템, 청년 당원 연령 인하가 반영됐다.

2022년 송영길 전 대표는 장경태 의원을 위원장으로 배치하고 민주당의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장경태 혁신위는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제한 △국회의원 면책특권·불체포특권 제한 △위성정당 창당 방지 등 정치 혁신 관련 법안 7개를 발의했다.

청년혁신안에 대한 법안도 내놨다. 구체적인 내용은 △청년후보자 기탁금 및 경선비용 50% 하향 △청년추천보조금 신설 △당 공천관련기구 청년위원 20% 할당 의무화 등이다.

다만 ‘3선 연임 초과 제한’에 대해서 민주당 내 중진 의원들의 강한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장 의원은 올해 1월에도 혁신위원장으로 재임명돼 이재명 대표 사퇴 논란 규정이 된 ‘당헌 80조’를 삭제하는 것을 검토했다. 당헌 80조는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에 비명계와 국민의힘 사이에서 논란이 커지면서 장 위원장은 검토 계획이 없다고 수차례 해명했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 2022년 최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임명한 혁신위를 발족했다. 혁신위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당내 정진석 의원과 배현진 의원을 비롯한 반대 세력이 공개적으로 반발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혁신위가 공식 출범했다. 하지만 7월 이 전 대표가 당내에서 실각되면서 혁신위는 사실상 활동이 중지됐다.



◇ 전문가들 "김은경호 혁신위, 리더십·실천가능 안건·충분한 시간이 관건"

김은경호 혁신위를 두고도 당 안팎으로 기대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정당이다 보니 당 내부에서도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온다"며 "혁신위 출범과 이재명 당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발언 등에 대해서는 당 내부에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또 다른 관계자는 "혁신위가 제 역할을 하려면 혁신위가 당으로부터 운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고 행사해야 하는데 현재 혁신위원장이 그만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혁신위 출범 이후 위원 구성에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다.

참여연대 출신으로 알려진 김남희 변호사를 제외한 혁신위원 6인이 모두 친이재명(친명)이거나 이재명 대표와 과거 인연이 이어져 왔던 인물로 알려지면서다.

두번째 인선에서도 황 의원의 합류를 두고 ‘친명 혁신위’라는 비판을 고려한 인선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당초 ‘현역 의원 최소화’ 의지가 강했지만 이재명 대표가 황 의원 인선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비명계 추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남희 혁신위 대변인도 "계파가 당 통합을 제한하고 혁신 논의의 장애라고 생각했기에 계파를 고려하지 않고 당에서 더 많이 소통해주실 분이라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했다"며 ‘비명계 달래기 인선’ 해석에 선을 그었다.

혁신위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당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 낼 리더십, 실천가능한 혁신안, 혁신에 걸리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상황이 어렵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못한 혁신을 이번에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며 "제대로 혁신위가 성과를 보려면 시간적 여유와 혁신위에 그만한 힘을 부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조 교수는 "혁신을 하려면 당 구성원들의 높은 수준의 공감대와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혁신위에 엄청난 리더십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그 다음 혁신기구가 획기적이고 실천할 수 있는 혁신안을 만드는 게 관건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혁신이란 갑자기 되는 게 아니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지금 획기적인 안이 나오더라도 내년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또 혁신위 출범의 원인이 된 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당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종훈 정치 평론가는 "이번 혁신위 출범에 결정적 계기가 돈 봉투 의혹과 코인 사태인 만큼 이 사건들과 관련한 원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며 "전당대회와 관련해 돈 봉투가 개입될 여지를 없애는 활동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김남국 의원 코인사건과 관련해서도 재발방지나 앞으로 비슷한 의혹이 나오지 않도록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찾아내 건의해야 한다"며 "불체포특권 포기 발언도 돈 봉투와 코인 사태 등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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