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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
지금은 우리 전력산업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응하는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다. 먼저 전력산업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전력산업이 언제까지 산업에 필요한 동력을 싸고 안정되게 공급하는 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일각에서는 제조업 경쟁력과 값싼 에너지 공급이 상호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긴다. 전력이 생산요소이자 산업인프라 기능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에너지가 필요할 때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반드시 낮은 가격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전기 다소비 업종을 제외하면 전기요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전기요금이 제조업 경쟁력에 미치는 효과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전기 재화는 국가가 국민에게 값싸게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 공공재인가의 문제다. 전기가 일정한 범위에서 필수재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시장재화의 기능도 한다. 갈수록 많은 전기제품이 보급되며 전력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냉난방도 지속적으로 전기에너지로 전환되고 있다. 요금이 낮다고 무턱대고 쓰지는 않겠지만 가격효과는 있다. 주택용 전력수요는 주택 유형, 가구원수, 기후와 같은 외적 요인과 소득수준, 요금과 같은 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낮은 전기요금이 국민의 후생에 크게 이바지한다면 원가보다 낮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다다익선은 아니다. 낮은 요금이나 불합리한 요금체계로 인해 에너지 낭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금이 갖고있는 가격신호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앞서 언급한 두가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나 정책결정자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 전력산업은 내일도 여전히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며 허망한 담론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자주 얘기되는 전원 문제나 송전망 확충 그리고 전기요금 문제는 발등의 불을 끄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여태껏 보아왔듯이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스템 변화와 함께 전력산업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전력산업 환경은 지난 10년을 보더라도 크게 변했다. 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국제적 협약과 국가적 체면을 넘어 산업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 기술규제 압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지적 전쟁만으로도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에너지 안보가 위협받는 현상도 상존하는 불확실성의 하나다. 나아가 기술적 변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방식 자체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전기차, 수소차는 물론 반도체, 데이터센터로 이어지는 새로운 에너지 수요는 얼마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운 것 들이다. 원거리 전력망으로 유지되던 전력네트워크도 이제는 보다 정교하고 지역화된 분산에너지 시스템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사회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에너지시스템에도 커다란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다.
아직도 전력산업이 송전망을 확충하고 대형 발전소 몇 개를 더 지어서 공급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전력산업은 이제 단순히 규모의 경제나 공급안정이라는 지표로 보던 관점에서 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전력산업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앞으로 더 이상 답을 찾기 어렵다. 전력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자동차, IT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국방, 안전, 금융과 같이 거리가 있어 보이는 분야와의 접합점도 생겨나고 있다. 전력은 새롭게 전개되는 사회경제시스템의 핵심 드라이버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파이를 놓고 치고 받는 치킨게임에 더 이상 매달릴 때가 아니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가는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과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새로운 인식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력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