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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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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윤석열정부 출범 1년 평가와 향후 과제-에너지분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11 08:44

에너지 위기 여전…근본적 체질개선 고삐 당겨야



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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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성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에너지 시장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산업 발전과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뒀던 과거와 달리, 기후 위기와 탄소 중립이라는 새로운 이슈에 직면하며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도입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세와 민간부문의 자발적 협약인 RE100 이니셔티브 등은 수출 중심인 한국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에너지 시장도 비상등이 켜졌다.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에너지공기업들이 누적된 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서울에너지공사 그리고 자본 잠식 상태인 한국석유공사 등 어느 곳 하나 멀쩡한 곳이 없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원전 중심의 탄소중립 실현’을 골자로 한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분야의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새롭게 꾸리고 탄소중립·녹색성장 비전과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올해 1월에는 원전 비중을 늘리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이는 내용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고, 3월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부문별 전략과 함께 산업부문의 감축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낮췄다. 윤석열 정부의 기후변화·에너지정책은 원전생태계 복원과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담 줄이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토가 좁고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원자력 발전을 적극 활용해 온실가스를 실효성 있게 줄이겠다는 것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전기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해 원전 확대만으로는 나머지 80%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는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필요하게 될 전기를 기존의 화력발전소에서 원자력발전이나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지만, 그 못지않게 나머지 80%의 에너지를 무엇으로 대체하고 얼마나 빠르게 탈 탄소화 할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현가능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명분으로 부문별 감축목표를 재조정해 기업의 부담을 줄인 정책도 일면 타당해 보인다. 2030년까지 40% 감축목표 달성을 전제로 현 정권이 끝나는 2027년까지 19.6%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다음 정부에서 2030년까지 3년 동안 나머지 21.4%를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 중심의 산업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 어렵다. 정부가 산업구조 전환과 고도화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 기능의 정상화도 절실하다.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 속에서도 국내 에너지 시장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함을 느끼는 것은 에너지공기업이 중간에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든든한 벽에 금이 가고 있다. "콩보다 싼 두부 가격"이란 말로 표현되듯 지금의 전기요금은 가격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렇다 보니 원가 인상 요인을 반영하지 못한 낮은 전기요금은 한전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키우고 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위치할 경우 새로운 전력의 블랙홀이 생기는 셈인데, 새로운 전력망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필요한 전기를 공급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적자 수렁에 빠진 한전으로서는 새로운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전기요금 문제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해외 에너지 기업들은 석유와 가스 혹은 전기와 가스 혹은 전기와 열 그리고 가스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통합해 운영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에너지 기업들을 각각의 에너지원에 한정해 업역을 제한한다. 한국전력은 전력판매,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 한국석유공사는 석유만 각각 담당하도록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제는 그 틀을 깨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의 휘발유, 디젤만 판매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수소와 전기 등 다양한 에너지를 판매하고 재생에너지를 설치하는 등 종합스테이션으로 변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간영역인 주유소를 종합스테이션으로 구축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력만 전기를 판매하도록 돼 있는 전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해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원전이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 정부의 신규 발전 건설과 수명 연장 정책은 원전 생태계의 단절만 키울 뿐이다. 신규 건설이나 수명 연장과 함께 적절한 폐기물 관리와 수명을 다한 원전의 해체까지 연결하는 원전산업 생태계의 선 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 없이 원전을 새롭게 건설하고 수명만 연장하는 것은 문제만 키워갈 뿐 지속가능할 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과 시장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집권 1년을 맞은 윤석열 정부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에너지 가격 기능의 정상화를 비롯해 에너지공기업의 적자 해소 및 업역 조정,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실효적인 정책추진, 원전산업의 선순환 구조 마련, 재생에너지 산업생태계 구축, 이외에도 에너지 이슈들이 정치적 쟁점 사안이 되면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에너지산업과 시장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를 모으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당한 절차를 통해 합의된 정책은 5년 단위로 분절되는 정책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남은 기간 욕먹을 각오로 소모적인 정치적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우리 에너지산업과 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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