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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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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1년에 보내는 제언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5.0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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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10일 집권 1년을 맞는다.[대통령실 제공] 사진=연합뉴스


<요약>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년 간 보수 일변도 정책을 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기도 했다. 대통령이 진영을 넘어 국가 공동체를 우선하는 정책을 펼 때 유권자들은 대통령다움을 느낀다. 이념과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해 윤 대통령이 복지 정책을 주도할 것을 제안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집권 1년을 맞는다. 성적표는 보기 민망하다. 지지율은 30% 안팎 박스권에 갇혔다.

왜 이럴까. 보수 일변도 정책을 펴면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 야당은 물론 중도층도 등을 돌린다. 나는 윤 대통령이 진보 어젠다, 특히 복지 확대를 주도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 등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보수 지지층의 반발이 무섭다고? 김대중 대통령은 대일 외교에서 정략보다 국익을 앞세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썼다. 두 대통령은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본받아야 할 사례다.


◇ "나는 천황에게 덕담을 건넸다"


야당이 대일 외교를 비판할 때마다 용산 대통령실과 집권 국민의힘은 김대중 대통령 사례를 든다. 김 전 대통령이 일본 국회 연설에서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맞다. 김대중은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 방문해 ‘천황’을 만났다. ‘김대중 자서전’을 들춰보자 "도쿄에 도착한 첫날, 아키히토 천황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나는 천황에게 덕담을 건넸다. ‘천황 폐하, 황태자 부부는 보기에도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나는 ‘천황’이라 호칭했다. 외교가 상대를 살피는 것이라면 상대 국민이 원하는 대로 호칭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만찬 다음날 김대중은 오부치 게이조 총리를 만났다. 이때 "나는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며 그동안 두 나라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거론했다"고 회고했다. 여기서 나온 게 바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곧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이때 일본 대중문화도 전면 개방했다. 김 대통령은 "더이상 문화 쇄국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한국이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될 거란 우려가 나왔다. 기우였다. 문화 개방은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가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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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021년 6월 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과 함께 전시물을 살펴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쿠라’ 비난에도 굽히지 않은 소신


1964년 6·3 사태가 터졌다. 한일 국교 수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때 김대중 의원은 ‘왕사쿠라’로 매도당했다.

다시 자서전을 보자. "한일 회담을 하는 당사자들을 무조건 매국노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야당 안에 괴이한 소문이 돌았다. "김대중은 여당 첩자다. 사쿠라(여당에 매수된 야당 정치인)다. 사쿠라 중에서도 왕사쿠라다."

그럼에도 김대중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세계의 흐름, 민심의 향배를 모르고 강경 투쟁만을 부르짖던 야당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 기반만을 강화시켜 주었다"고 회고했다.


◇ "이라크 파병은 불가피한 선택"


진보 노무현 대통령도 종종 보수색 짙은 정책을 폈다.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다. 노 대통령은 2004년 9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3000명 넘는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 노무현은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인물이다. 진보 시민단체 등 지지층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퇴임 후 노 대통령은 ‘성공과 좌절-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생각해 봐도 역사의 기록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참으로 어렵고 무겁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것이긴 했지만 당시 파병 외교는 아주 효율적인 외교였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12월 노 대통령은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자이툰 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이때 노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병사를 힘껏 포옹하는 사진은 노무현 시대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사진이 됐다.


◇ "한국 영화, 자신 없습니까?"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 개시가 발표됐다. FTA는 경제를 넘어 안보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 보수 야당은 찬성하고, 여당과 지지층은 거칠게 저항하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특히 스크린쿼터 축소를 두고 영화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해 3월 노 대통령은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갖고 현장에 나온 영화배우 이준기에게 물었다. 당시 이준기는 ‘왕의 남자’로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 영화 경쟁력을 지켜낼 자신 없습니까?" 이어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열고 나가자"고 영화인들을 설득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20년 2월에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한국 영화를 위한 잔치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스크린쿼터 축소해서 한국 영화가 쪼그라들었다는 말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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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작년 6월 1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윤 정부는 보수 일변도

진보가 보수적인 정책을 펼 때 유권자들은 대통령의 대통령다움을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고, 스스로 실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자는 주장에 "장사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 1년 윤 대통령은 보수 일변도 정책을 폈다. 대미, 대일 관계는 한층 단단해졌다. 반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와는 더 멀어졌다. ‘건폭’ 등 기득권 노조 때리기도 멈출 줄을 모른다. 이런 정책은 보수층의 환호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박스권에 갇힌 지지율이 그 증거다.


◇ 보수가 주도하는 복지


나는 윤 대통령이 긴 시야에서 나라에 도움이 되는 진보적인 정책을 펴길 바란다. 이념 갈등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모와 자식, 직장 상사와 부하가 마치 딴 나라에 사는 듯하다. 빈부 격차도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복지는 통상 진보의 어젠다로 통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진보 정부가 주도하면 보수 정부는 마지못해 끌려간다. 선거 때 표를 의식해서다. 이런 소극적인 태도로는 중도층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차라리 복지를 보수정부가 주도하면 어떤가? 당연히 재정에 부담이 간다. 현 정부 정책 기조와도 어긋난다. 재정건전성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수 지지층의 반발도 예상된다. 세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동체 유지라는 대의(大義)에 초점을 맞추면 복지 확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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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사회복지 지출 국가별 비교. 출처=e나라지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사회복지 지출을 보자. 2020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4%를 사회복지 비용으로 썼다. 이는 프랑스 (34.9%), 덴마크(29.3%), 스웨덴(25.9%) 등 유럽국가는 물론 일본(24.8%), 미국(24.5%)에도 한참 못 미친다. OECD 평균은 23%다. 왜 이들은 복지에 이렇게 큰 돈을 쓸까? 그래야 사회 분열을 막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존 갈브레이스 교수는 명저 ‘풍요로운 사회’에서 절대 빈곤이 사라진 미국에선 소득 불균형이 경제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공원, 교통시설, 교육 등 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 확대를 제시했다.

국가 공동체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누가 하든 불가피한 일이라면 보수, 진보를 가릴 필요가 없다. 차라리 보수 정부가 나서면 복지를 넓히되 마구잡이 복지를 제어할 수 있다. 복지 어젠다는 야당 협조를 끌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층 반발을 넘어서는 결단을 내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대통령의 혜안이 돋보인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1월 전남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과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을 잇따라 찾았다. 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 4년 남았다. 보수(補修)하는 보수(保守 )가 살아남는다. 윤 대통령에게 지지층 울타리를 넘어서는 통 큰 정치를 기대한다.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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