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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 |
고물가·고금리의 위기국면에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현안 대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1년을 준비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공급측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에 토대를 두고 있다. 감세와 규제개혁, 경제체질 개선과 미래산업 육성을 추진하여 기업의 활력과 혁신, 투자를 유인한다. 이를 통해 기업 주도의 빠른 성장과 도약을 달성하고 궁극적으로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실현하는 것이 정책목표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에 한국형 산업정책을 결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 아래 지난 1년간 추진된 정책들이 현재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지를 평가해보자.
먼저 한국경제가 직면한 대표적 과제를 살펴보자. 첫째, 저성장이다. 최근 발표된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493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0.9% 성장에 그쳤다. 대통령 표현대로 초저성장이다. IMF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을 1.5%로 전망했고 OECD는 잠재성장률을 1.8%로 예측했다. 둘째,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전년동기대비 1%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수출이 급감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에 월 100억 달러 이상의 높은 실적을 달성한 반도체의 수출이 작년 10월부터 하락세로 접어들고 올해 60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중국 수출도 팬데믹 기간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최근 리오프닝이 본격화되고 있는데도 회복 조짐이 안 보인다. 셋째, 금융시스템의 안정화가 중요해졌다. 최근 자산시장 가격 하락과 함께 금융시장 위험이 커지고 있다. 국내적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PF 등의 부채 부실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경상수지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1월과 2월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직면한 세가지 과제 해결을 위해 정부 정책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를 먼저 감세와 규제개혁부터 점검해보자. 조세감면과 관련해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췄으며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는 대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높이고, 올해에 한해 투자증가분에 대해 10%의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거대 야당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낸 정부의 노력에 합격점을 줄 수 있겠다.
규제개혁은 초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과 같은 정책의 방향성,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애로의 광범위한 수집과 신속한 해결 등에서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낡은 규제에 발목 잡힌 K스타트업’이 현 시점의 규제개혁 자화상이다. 실적보다 현장과 전문가 중심의 실용적, 체계적 접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현 정부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 중의 하나는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의 신속한 추진이다. 지난해 10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육성방안을 발표했으며 올해 2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작년 12월에는 미래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신성장 4.0 전략’을 수립하고 15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기할 점은 4월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한미 기술동맹의 추진체가 구성됐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한미일 기술동맹도 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과거 정부에서 볼 수 없었던 신속한 정책 추진과 첨단기술 국제협력의 신기원 수립은 ‘A학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체질 개선과 관련하여 정부는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구조개혁과 금융, 서비스, 공공 등 3대 경제혁신을 제시하고 있는데 아직은 두드러진 성과를 찾기 어렵다. 노동개혁에서 근로시간 유연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주 69시간’ 논란은 아마추어적인 정책추진의 대표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유연근로제는 중소기업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건의사항으로서 정부는 노사 타협안을 만들어 유연화 방안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당면 현안인 수출과 관련해서는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금년 통관수출이 작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2월에 개최된 수출전략회의에서 올해 수출 목표액을 작년 실적보다 0.2% 높은 6850억 달러로 제시하고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일명 수출 플러스 전략이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대통령의 각오가 정말 실현될지가 자못 궁금하다. 아이디어 하나를 더한다면 수출 불모지인 일본시장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의외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무방비로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현 정부에서 한미동맹 강화는 불 보듯이 뻔한 방향이었으므로 정부 어느 부서에서는 대중 전략을 준비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옐런 재무장관이 공식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강조했듯이 한국과 중국과의 교역과 관계는 끊을 수가 없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충분히 공존할 수 있으므로 조만간 한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금융 안정화와 관련해 부동산PF, 가계부채,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문제 등의 불안요인에 대해 정부는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시스템 위기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은 강화되었지만 작년 레고랜드 사태 발발 후 초기진화에 실패한 사례를 볼 때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다. 미국이 SVB 사태에 즉각 대처하여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뻔한 문제를 조기 진화한 사례를 참고하여 갑작스러운 사태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의사결정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현 정부의 노력으로 수출과 저성장, 금융위기 예방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피벗 스테이트’로 도약하기에는 불충분하다.새 시대에 맞게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기업에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정부문화’를 뒤집어야 한다. 기업도 각자도생의 틀을 깨고 ‘혁신을 위한 협력적 상생생태계’로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고객만족경영’이 세계 산업계의 로망이었듯이 새 시대의 한국 ‘기업주도 경제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