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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요금인상 시급"→"자구노력 철저"…산업부 주관 회의 주제 180도 바뀐 이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4.11 11:26

- 4월 2일 예정됐던 ‘요금조정 지연시 에너지공기업 재무악화 우려’ 보도자료 갑자기 배포 취소
- 4월 6일 민당정 간담회 이후 11일 배포된 자료에는 ‘국민 눈높이 맞는 자성, 혁신'으로 변경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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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들을 참여시킨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 주관 회의의 논의 주제가 9일 새 180도 뒤집혔다.

<에너지경제신문 4월 3일자 2면 보도 ‘발전업계, 당정 자구노력 재차 압박에 볼멘소리’ 기사 참조>

산업부는 11일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정승일 한전 사장,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공기업 긴급 경영혁신 점검 회의를 갖고 "한전과 가스공사가 국민들께 에너지요금 조정 필요성을 호소하기 이전에 보다 뼈를 깎는 자구대책을 준비하라"고 촉구했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전기·가스요금 인상 요구 이전에 스스로의 자구노력 강화부터 하라는 것이다. 당초 일요일이었던 지난 2일 열기로 했다가 개최 한 시간 전 돌연 취소한 같은 회의 주제와 180도 달라졌다. 당시 산업부가 냈다가 취소한 보도자료엔 에너지 공기업의 자구노력보다는 정부의 정책변화를 요구하는 전기·가스요금 인상 시급성에 초점을 맞췄다.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전기·가스요금 인상 요구를 억누르는 기획재정부와 집권 국민의힘 등을 겨냥한 것으로 비춰졌다.

에너공기업 경영혁신 점검회의의 주제가 갑자기 바뀐 데엔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업계 등에서 나왔다.

◇ 박일준 차관 "한전·가스공사, 요금 인상 앞서 뼈 깎는 자구노력 선행돼야"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위기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으나, 에너지요금 인상시 국민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한전과 가스공사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선행되어야 국민들께서 요금인상도 납득하실 수 있을 것"이라며 "한전과 가스공사는 경영상황을 철저히 점검해 현재 마련 중인 경영혁신방안이 국민에 눈높이에 맞는 최선의 자구조치와 합리적인 조직혁신 방안을 포함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각 기관들은 앞으로 비핵심자산을 매각하거나 조직과 인력을 효율화하는 한편, 선별적인 투자를 위해 사업심의 절차를 강화하고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을 절감하는 등의 자구노력을 더욱 확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박일준 차관은 지난달 28일 한전과 공기업 사장단과 ‘제2차 에너지 공기업 경영혁신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에너지 비용 지원이 에너지위기 해결의 답이 될 수 없다"며 "고효율 기기·설비의 보급, 적극적인 효율·절약 관리, 국민 모두의 행동 변화를 통해서만 에너지 비용 부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국민의 에너지 비용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기반 구축과 함께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에너지공기업 "자구노력 피로감…더 이상 짜낼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의 ‘자구노력 피로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발전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부터 에너지다이어트 캠페인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지난주에는 ‘재정건전화·경영혁신 중점 추진과제 현황 및 향후계획’을 통해 지난해 5조3000억원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초과달성한 것에 이어 한전 및 발전 6사 3조3000억원, 가스공사 2조7000억원, 지역난방공사 5038억원 등 올해 목표 달성을 위한 대책을 보고했다"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란 것인지 모르겠다. 시장원칙이 작동하게 하겠다 더니 지난 정부와 달라진 게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산업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에 난방온도를 17도로 제한하고 비핵심 자산 매각, 에너지절약 캠페인, 복지 축소 등 수차례 경영혁신 과제를 지속 발굴을 요청하고 있다.

발전공기업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달부터 또 다시 대국민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지난해 정부의 공공기관 에너지절약 실천 강령에 따라 실내온도 17℃ 지키기, 5층 이내 걷기, 사무실 전등 3분의 1 끄기, 공용시설 사용 후 돌아보기 등 에너지절약을 위한 강도 높은 실천 운동을 펼쳤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고갈됐다.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기를 만들어 팔아서 수익을 남겨야 하는데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산업부, 당정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요금인상 시급" -> "자구노력 철저"

당정은 물론 주무부처인 산업부마저 갈 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산업부는 당초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공기업 긴급 경영상황 점검회의’를 갖겠다고 주말 갑자기 예고했다가 회의 개최 불과 1시간 전에 전격 취소했다. 산업부는 당초 배포한 주간보도계획을 수정해 토요일인 전날 오후 2시 언론에 알린 뒤 만 하루도 안 지나 이날 오후 1시 회의 개최 일정을 연기한다고 돌연 공지했다. 산업부는 "공기업 자구노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 등에 시간이 소요되어 불가피하게 연기하게 됐다"고 사유를 설명했다.

산업부는 당초 이날 회의에 정승일 한전 사장,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 등을 참석시켜 요금 조정 지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위험성)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산업부가 사전 배포한 회의 관련 보도자료가 일부 보도된 뒤 회의 일정이 연기된 것이다.

이날 오전 일부 언론에 보도된 이 보도자료엔 당정이 지난 31일 회의를 갖고 발표한 ‘2분기 전기·가스요금 일단 보류, 전문가 의견수렴, 에너지공기업 자구노력’ 등과 배치된 내용이 포함됐다. 언론 보도는 "요금인상 지연 시 한전채 발행한도 초과·가스공사 미수금 13조" 등 제목으로 에너지 공급망 위기 및 요금 인상 시급 등 내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공기업 기관장들이 모여 당정이 요구한 자구노력 계획을 내놓기보다는 요금조정 지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업계에선 이날 회의 전격 취소가 여권으로부터 모종의 압력을 받아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마치 당정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 여권이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당초 3일 에너지요금 관련 에너지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 일정도 이날 오후 갑자기 취소한 뒤 지난 6일 민당정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청취했다.

닷새 후인 이날 산업부는 오후 1시 30분에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공기업 경영 혁신 점검회의’로 이름을 바꾼 회의를 갖고 ‘한전·가스공사, 국민이 눈높이에 맞는 자성과 함께 경영혁신 대책 마련할 필요’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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