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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與 당권 경쟁 두더지잡기 결말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2.12 13:33

에너지경제 구동본(정치경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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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추대하거나 옹립하라."

집권 국민의힘의 최근 당 대표 선거전에 대한 이같은 감상은 필자 만의 생각일까. 본 경선에 돌입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전초전 모습은 한 마디로 가관이다.

두더지 잡기를 보는 듯 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두더지들을 망치로 때려 제한된 시간에 얼마나 빨리, 많이 구멍 안으로 밀어 넣느냐로 승부를 가리는 게임 말이다.

국민의힘의 차기 당권 유력 주자 중 벌써 3명이 중도 낙마했다. 권성동 의원과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여전히 당권 레이스 중인 안철수 의원까지 포함하면 여권 주류가 두드린 ‘두더지’는 4명이다. 이전으로 멀리 거슬러 가 이준석 전 대표도 그 범주에 넣으면 ‘두더지’는 5명으로 늘어난다.

윤석열 대통령과 처음부터 각을 세운 유 전 의원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의 맏형으로 윤 대통령과 친구였다는 권 의원도, 윤 대통령과 함께 고시 공부하며 오빠·동생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는 나 전 의원도 가차 없이 찍혀 나갔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더니 딱 그 짝이다.

윤 대통령과 사적인 인간관계에 있는 인사 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 의원, 이 전 대표도 표적이 됐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1주일 전 후보 단일화로 윤 대통령 당선에 힘을 보태고 인수위에서 5년 국정운영의 밑그림까지 그리지 않았나. 이 전 대표는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윤석열을 국민의힘에 영입해 대통령까지 만든 인사 아닌가.

이들이 ‘두더지’ 신세에 놓인 가장 큰 죄라면 당권을 장악했거나 차기 당권을 넘봐 인기를 얻은 것이다.

권 의원은 윤핵관 등의 집중 공격을 받은 나 전 의원이나 안 의원, 이 전 대표와는 다소 다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조용한 교통정리였다. 권 의원은 사실 이 전 대표를 몰아내는 데 전면에 서지 않았나. 이 전 대표의 중도 퇴진을 이끌어낸 그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이번 조기 전당대회 자체가 치러질 수 없었다.

그런 그조차도 당권 도전을 못하고 밀려났다. 당 대표 선거 출마회견 예정일 하루 전날 스스로 전격 불출마 선언한 것이다. 이를 두고 토사구팽이라면 지나친 해석인가.

그는 불출마 이유로 느닷없이 대통령 국정운영과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꼽았다. ‘윤심’(윤 대통령 마음) 작용의 오해를 피하고 당의 화합과 단결을 우선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권 의원의 불출마 이후 과연 그의 뜻대로 윤심 논란이 사라지고 당의 화합이 이뤄졌는가.

찍어낸 그 과정을 돌아보면 사전 각본 없이 이뤄질 수 없는 한 편의 막장극이었다. 시작은 지난해 7월 이 전 대표 개인 부정 의혹 관련 징계였다. 윤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이었다.

권성동 의원 등 친윤(親윤석열) 그룹은 정치의 사법화까지 부르며 이 전 대표측과 3개월 간 힘겨루기 끝에 지난해 10월 이 전 대표를 대표직에서 몰아냈다. 결국 올해 6월까지였던 이 전 대표의 임기가 단축되면서 조기 전대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전대의 당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유력주자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누가 봐도 특정 주자 배제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친윤 주도의 룰 변경, 국민의힘 소속 전체 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초선의원 50여명의 연판장 돌리기 등 집단 조리돌림 등이 원인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실은 왕조시대도 아닌데 윤심에 대해 마치 전매특허를 낸 것처럼 상표권을 내세웠다. 실제로 친윤 중심의 당이 전대 선거 룰을 ‘당원투표 100%, 결선투표’로 바꾸자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유 전 의원으로선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됐다.

이어서 나 전 의원이 당심과 민심을 함께 업고 당권 레이스 1위 주자로 떠올랐지만 그 역시 친윤과 대통령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 전 의원은 친윤그룹에 ‘반윤(反윤석열)의 우두머리’, ‘친윤 호소인’ 등으로 낙인찍혀 주저앉혀졌다.

여우를 피했더니 호랑이를 만난 것인가. 안 의원이 나 전 의원의 뒤를 이어 부상하자 이번엔 친윤과 대통령실은 안 의원 두들기기에 나섰다. 안 의원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해꾼이자 적’이란 발언까지 공개됐다.

반면 김기현 의원은 당초 후순위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이젠 유력주자에 올랐다. 극적인 연출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배경에 친윤그룹과 대통령실의 유력 경쟁자 내치기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윤핵관 장제원 의원과 ‘김장(김기현-장제원)연대’를 꾸렸다.

김기현 의원은 누구인가. 그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 희생자라고 주장해왔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 재선 도전을 앞두고 자신에 대해 이뤄진 경찰수사가 문 대통령 친구 송철호 전 울산시장 당선을 위한 청와대의 선거개입 결과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 그가 이제는 친윤 그룹과 대통령실로부터 윤심 논란 속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차기 당권에 가까이 가 있다.

친윤과 대통령실이 차기 당 대표 선거에 왜 이리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대선 이전 국민의힘 입당을 고민한 적 있다. ‘차떼기 정당’, ‘국정농단 온실’ 등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민의힘이 자신의 철학과 가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같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둥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자신에게 국민의힘은 한낱 강을 건너는데 필요한 뗏목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으로선 현재 무엇보다도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아 성공적인 국정을 이끌고 싶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적어도 국민의힘 재건축이 필요하다. 지금은 헤쳐 모여 식의 정계개편을 통해 정치판을 흔들 수 있는 국면이 아니다. 그렇다고 얼굴 등 일부 만 성형하는 리모델링 수준에 그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차기 당권을 쥐는 건 국민의힘을 재건축하는데 급선무다. 차기 당권은 내년 총선 물갈이 공천을 통해 국민의힘을 재건축하고 의회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바탕이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당장 당 선관위가 김기현 의원에 대한 지지운동 자제를 경고하고 나섰다. 제 앞가림하기도 바쁜 야당도 남의 당 선거에 숟가락을 얹었다. 대통령의 국민의힘 선거 개입이 헌법상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등 위반이라며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경고나 형사고발 검토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당 선관위 경고의 경우 앞으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되고 야당의 형사고발 검토도 다분히 정치공세 성격이 짙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당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직 겸임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후 사라졌다. 행정권력은 물론 의회권력까지 장악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막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당정 일체로 국정을 원만하게 이끈다는 명분은 그 부작용에 빛이 바랬다. 그 이전 대통령은 권력을 창출한 집권당을 허수아비 또는 거수기 정당쯤으로 취급했다.

친윤과 대통령실을 앞세운 윤 대통령의 전대 개입 모습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돌리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집무실을 옮긴 것과도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 제왕적 대통령 직을 내려놓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강조하지 않았나.

윤 대통령은 이렇게 해선 안된다. 국민 마음은커녕 당원 마음조차 얻기 어렵다.

지금 상황이라면 진짜 윤심 후보가 당권을 쥔 뒤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심상치 않은 그 위기 조짐이 최근 국민의힘 예비경선 결과로 드러났다. 윤심과 반대편에 선 이 전 대표측 후보들이 모두 본경선에 오른 반면 윤심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던 일부 후보들은 줄줄이 컷오프됐다.

윤 대통령에게 당권이 절실할 수 있다. 하지만 당권 차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절차와 과정을 공정하게 이끌지 못하면 당심과 민심이 모두 떠난다. 솔직히 윤 대통령 지지율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를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윤핵관들도 국민 밉상으로 찍혔다. 국정도 원내 절대 다수 의석인 야당에 포위돼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은 이런 때 자꾸 싸움의 전선을 넓히고 뺄셈정치로 시간을 보낸다. 경거망동하다간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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