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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KAIST 경영대학 교수 |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에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된 금액이 전년 3분기 대비 40% 감소한 1조 2500억 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만 해도 직전년도 동분기 대비 68% 증가했는데 하반기 들어 경악할 정도로 추세가 반전된 것이다.
고금리, 물가상승, 우크라이나 전쟁,미·중 갈등, 기후 변화 등 각종 불확실성 요인 속에 자금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시기를 어떻게 견뎌야 하나 고민하는 스타트업들이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현금흐름을 평소보다 훨씬 더 철저히 관리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조언의 이면에는 대부분의 초기 스타트업들이 충분한 영업이익을 창출해 유지되기보다는 투자유치, 차입, 지원금 등을 통해 끌어 모은 돈을 문자 그대로 ‘태워 가며’ 운영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이제는 추가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무척 어려워졌으니 돈이 빠르게 고갈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너무나 적절한 충고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스타트업의 전략과 운명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현금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방법으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허리띠 졸라매기다. 기업들에게 비용을 줄이라고 하면 "우리가 평소에 방만하게 경영을 한다는 생각이냐"며 볼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이야기를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출 대상이 무엇이 됐든 사내에서 필요한 수요의 추정 및 집계 오류, 신규 솔루션에 대한 정보 부족, 기존 거래처와의 결탁, 변화에 수반될 수 있는 책임 회피 등 다양한 원인 때문에 과도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같은 비용 절감 효과를 수반하더라도 인력 감축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심지어 매출도 전혀 없는 스타트업들이 용케 투자를 유치한 이유는 혁신과 도전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맡아 수행할 인재들이 떠나면 기대했던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설령 어렵게 혹한기를 견뎌냈다고 해도, 핵심 인재가 떠난 기업이 재차 성장을 추진하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기는 어렵다. 오히려 호황기에는 몸값이 높아 확보하기 어려웠던 인재를 한 명이라도 영입할 기회가 바로 지금일 수 있다.
현금흐름을 양호하게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이 또한 기업들로부터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게 쉬운 줄 아느냐"는 냉소를 사기 십상이다. 그러나 많은 스타트업들이 매출의 동력을 기술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성장의 발목을 잡곤 한다.
매출의 원천은 두말할 것 없이 고객의 니즈다. 개발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예측하려면 주변의 지인이나 ‘보상 매니아(설문에 답하면 주는 경품이나 인센티브를 쫓아다니는 사람들)’가 아니라 철저하게 대표성이 있는 표본을 구성하고, 가장 쓴 소리를 해줄 수 있는 잠재 고객의 소리를 듣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더 나아가 고객들이 겪는 문제나 원하는 가치의 핵심을 파악하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회사 안이 아닌 밖에서 출발하는 사업화 전략이 매출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버번 위스키를 좋아하던 케빈 스트롬은 2010년 버븐(Burbn)이라는 위치 기반 바(bar) 체크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만들고 장소기록, 일정짜기, 게임, 포인트 적립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으나 신세대가 사진을 찍고 공유하기를 좋아한다는 걸 발견하고 서비스의 복잡성을 대폭 줄여 현재 월간활성사용자(MAU)가 20억 명을 넘는 인스타그램으로 발전시켰다.
시장 조사는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심리와 행동을 파악하여 어떻게 혁신적으로 그들의 불편을 덜고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경영학의 세계적 구루 클레이 크리스텐센 교수가 일찍이 ‘파괴적 혁신’이라는 저서에서 간파한 대로, 고객이 원하는 가치에 비해 과도한 기술이 시장에서 실패하는 경우는 많아도 고객을 제대로 이해한 기업이 그 것을 충족시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스타트업과 투자자에게 모두 고통스러운 시기이지만, 팬데믹을 맞아 확대된 유동성과 벤처지원정책 등 전례없이 호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혹한기도 있는 것이다. 혁신과 개척을 향한 기업가정신에 기반하기보다는 우호적인 환경에 편승해 창업을 한 스타트업은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자연스레 도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조직역량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스타트업은 언젠가 다시금 순풍이 불어올 때 다시금 투자자들의 성가신 구애를 받게 될 것이다. 왓츠앱, 우버,에어비앤비, 벤모, 비욘드미트와 같은 기업들은 미국에서 2차 대전 이후 가장 극심한 경기침체기로 일컬어졌던 2008년 전후에 설립되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도약했음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