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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제기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취소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달 중순 나오는 가운데 해당 소송에서 손 회장이 승소해도 내부통제 책임론을 둘러싼 금융권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이미 금융당국이 금융사 대표이사에 내부통제 관련 최종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만 책임을 물을 경우 CEO가 중장기적인 경영 전략보다는 단기적인 성과 창출에만 매몰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끝이 보이는 DLF 중징계 취소소송...15일 대법원 판결
4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오는 15일 손 회장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문책경고 등 처분 취소청구소송의 상고심 선고 기일을 연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는 것은 손 회장이 2020년 초 중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한 지 약 2년여만이다.
이번 판결은 내부통제 부실 관련 금감원이 DLF 판매 당시 우리은행장이었던 손 회장에 내린 문책경고의 중징계 조치가 적법했는지가 핵심이다. 단순 우리금융 회장의 개별 소송 건에 대한 대응차원을 넘어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에 대한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존 1심,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손 회장은 해당 소송의 1심,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금감원이 손 회장에 문책경고를 내린 처분사유 5가지(상품선정위원회 심사 생략기준 미마련, 사모펀드 판매 사후관리기준 미마련, 상품선정위원회 운영기준 미마련, 적합성보고서 기준 미마련, 준법감시인 점검기준 미마련) 가운데 상품선정위 운영기준 미마련에 대해서만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그러나 2심에서는 5개 처분사유 모두에 대해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 위반 또는 운영상 문제라고 판단해 피고인인 금감원의 항소를 기각했다. 1심에서 유일하게 인정된 상품선정위 운영기준 미마련 사유도 합당한 제재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나, 분위기상 1심, 2심에서 승소한 만큼 논리적으로 대법원 판결에서 이를 뒤집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당국, 대표이사에 내부통제 책임 강화..."소명 충분치 못하면 제재"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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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너지경제신문DB) |
다만 손 회장이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다 해도 내부통제 부실 관련 CEO 제재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가 중대한 금융사고 발생시 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한 금융사 CEO에 총괄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당국은 내부통제의 총괄책임자인 대표이사에 가장 포괄적인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부여해 금융사고 발생 방지를 위한 적정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할 계획이다. 사회적 파장, 소비자 및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한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금융사 임원들은 ‘해당 사실을 알 수 없었다’가 아닌 ‘어떠한 방지노력을 취했는지’를 적극 소명해야 하고, 소명이 충분하지 않으면 당국이 CEO를 제재하는 상식을 제도화할 방침이다. DLF 중징계 취소소송과 같이 내부통제 미비로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내부통제 관련 조직 구성원 간에 역할과 책임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제조업과 달리 투자 등에서 나오는 손익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중장기 경영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신속하게, 차질없이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CEO가 내부통제 강화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느라 적기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경우 금융사 입장에서는 유무형적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안이 내년 법령 개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금융사 CEO 입장에서는 보수적으로 경영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 기업의 경영활동뿐만 아니라 금융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위축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당국이 CEO를 대상으로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을 무리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손 회장이 승소한다고 해도 금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했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