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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금융감독원이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강경한 기조를 내세우면서 금융사들이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소비자 보호를 앞세워 금감원이 사모펀드 사태에 연루된 금융사 및 최고경영자(CEO)에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면, 최근에는 법리적인 원칙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에서 나온 일련의 결정들이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당국의 법적 대응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분위기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독일 헤리티지 펀드 관련 분쟁조정 신청에 대해 ‘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헤리티지 펀드의 경우 앞서 투자원금 전액 배상 결정이 나온 라임 무역펀드, 옵티머스 펀드와 비교했을 때 법리적인 원칙에 많은 비중을 두고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실제 금감원은 금융사를 대상으로 검사 및 현장조사, 해외 감독기관과의 공조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법률자문 2회, 사전간담회 3회, 분조위 2회 등 여러 차례의 의사결정을 거쳤다. 그 결과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우리은행, 현대차증권, SK증권 등 6개 판매사가 상품 제안서에 따라 독일 시행사의 신용도, 재무 상태가 우수하다고 설명해 투자자의 착오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해당 구조에 따라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투자자 누구라도 이 상품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에 대한 금감원의 가치는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한 치도 변함이 없다"며 "다만 이전에는 소비자 보호에 무게를 뒀다면, (헤리티지 펀드는) 법리적인 원칙을 최대한 충실하게 검토한 끝에 나온 최종적으로 나온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간 일련의 금융사고에 대한 CEO의 중징계 가능성에 대해 일정 부분 거리를 뒀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뀐 점도 금융사의 고심을 더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 원장은 지난 8월만 해도 "상식적으로 수긍 가능한 내용, 범위가 아니라면 금융사 CEO에 책임을 묻는 것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달 라임사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은 것에 대해 이 원장은 "본점에서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고의로 벌어진 심각한 소비자 권익 손상 사건"이라며 CEO의 행위에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금융사고에 대한 자기책임 원칙을 무시한 채 CEO 및 판매사에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결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의 자기책임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판매사에만 책임을 묻는 결정은 이미 라임사태때부터 꿰어진 단추"라며 "금융사들이 사모펀드 판매에 더욱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자산운용사들만 이중고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원장이 검찰 출신인 점을 고려할 때 금융사들이 금감원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법적 대응을 택할 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의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면 배임 소지가 있고, 불수용시 여론과 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며 "금감원 기조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올지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ys106@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