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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
[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과 금리 인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 상장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4분기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기업들의 실적 둔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계상황에 몰리는 기업들도 기존보다 더욱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부동산 시장 위축, 단기 자금시장 악화에다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물렸다.
롯데케미칼은 이달 18일 폐장 이후 주당 13만원(예정발행가)에 신주 850만주(보통주)를 발행해 총 1조105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50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6060억원은 국내 2위 동박 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자금으로 사용된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미국 내 배터리 소재 지주사 롯데 배터리 머티리얼즈 USA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위한 2조7000억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지분 53.3%)을 맺었다고 밝혔다. 한국, 말레이시아에 생산 기지를 운영하는 일진머티리얼즈는 약 6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수로 미국, 유럽 등 친환경 전기차 배터리 소재 해외시장을 확대해 글로벌 배터리 소재 선도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유상증자 결정은 높은 대출 금리, 회사채 시장 냉각 등으로 조달 시장 경색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 2월로 예정된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 납입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상증자는 우리사주 20%, 기존주주 80%로 진행되며 총 희석비율은 자사주를 제외하고 25% 수준이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다소 버거웠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가격, 예상보다 깊었던 시황 부진, 롯데건설 자금난, 빠르게 식어버린 자금시장 경색의 불운까지 겹치며 유상증자라는 기존 주주에게는 최악의 결론으로 이어졌다"며 "이번 증자가 성공해도 여전히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대금은 부족한 상황이며, 회사의 증자 이외의 조달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결정과 함께 롯데건설에 6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자금부담이 가중됐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을 앞두고 계열사들과 은행에서 1조5000억원가량을 확보했다. 이 중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은 5800억원가량을 투입했고, 롯데케미칼의 연결 자회사인 롯데정밀화학도 롯데건설에 3000억원을 빌려줬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수요 둔화, 대규모 증설 유입으로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지속되며 본업에서의 현금 창출력이 낮아졌음에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대금으로 롯데케미칼은 2조7000억원의 대규모 자금 지출이 필요해진 상황"이라며 "이 와중에 PF 시자 위축,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영업여건이 악화된 롯데건설에 대한 자금 지원까지 이뤄지며 재정 부담은 대폭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항공사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의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한국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제출한 3분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3분기 말 기준 9개 상장사의 자본이 일부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소 관리종목 지정 등 기준에서 자본잠식 항목은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자본금의 100분의 50 이상이 잠식된 경우에 해당한다. 다만 종속회사가 있는 법인은 연결 재무제표상 자본금과 자본총계(비지배지분 제외)를 기준으로 요건을 적용한다. 다만 아직 연말이 아닌 3분기 기준인데다 채권 재분류 영향으로 금리가 상승해 자본잠식으로 보이는 회계상 착시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한화손해보험의 경우 3분기 말 기준 자본금 7737억원, 지배지분 자본총계 513억원으로 표면적으로 93.3%가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채권 재분류 영향으로 금리가 상승해 자본잠식으로 보이는 회계상 착시 효과라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티웨이항공은 3분기 기준 자본금 961억원, 개별 자본총계 318억원으로 자본이 66.9%가량 잠식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포함한 연결 기준 3분기 자본잠식률 57.3%, 부채비율은 1만%가 넘는다. 이밖에 KR모터스 38.49%, 티비에이치글로벌 30.89%, 금호타이어 13.41%, HJ중공업 6.96%, 평화산업 5.41%, 아센디오 3.52% 등 상장사도 일부 자본잠식 상태였다.
한편, 거래소는 다음달 초부터 증시 퇴출 합리화 방안을 시행한다. 기존에는 재무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도 형식적 퇴출 대상이 됐지만, 이번 규정 개정으로 상장 적격성을 인정받으면 된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경우 2년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년 연속 매출액 50억원 미만의 기준이 실질심사 대상 사유로 전환된다. 코스닥시장은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회 연속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2년 연속 매출액 30억원 미만, 2회 연속 자기자본 50% 초과 세전손실 발생 등 네 가지다.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거래량 미달로 인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이의신청을 허용하거나 사유해소 기회도 부여하는 식으로 규정이 개정된다. 기존에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사업보고서 미제출, 2회 연속 정기보고서 미제출 시 이의신청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해당 상장사에도 이의신청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밖에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액면가의 20% 미만으로 주가가 떨어질 경우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는 요건을 삭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