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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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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인류에게 진정 고마운 에너지의 요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4.12 10:10

최수석 제주대학교 전기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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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석 제주대학교 전기에너지공학과 교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어떤 사람은 사랑에 관한 시로, 또 어떤 사람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꽃을 에너지로 바꾸어 본다면, 아무리 좋은 에너지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에너지가 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치 불이 번개나 화산에 의해 자연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원시 인류가 마찰을 일으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불을 피우면서 불이 실용적인 에너지로 의미가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맑은 날 햇빛은 언제나 우리를 비추지만,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야 비로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볕이 드는 낮에만 태양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광량은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얼마 만큼의 전기가 생산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대 발전 가능량 대비 실제 발전량의 비율을 의미하는 설비 이용률은 재생에너지의 경우 20% 내외인데, 필요전력의 5배에 해당하는 시설을 설치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설비용량이 커지면 날씨가 좋은 날 전력이 과잉생산되어 전력망에 문제를 일으키고, 전력거래소에서는 사전에 생산 전력을 차단하는 출력제한 조치를 내리게 된다.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비율이 20% 수준인 제주도에는 약 500 MW의 전력이 소비되고 있는데, 가동 중인 재생에너지의 설비용량은 약 800 MW이다. 몇 년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출력제한은 공공 풍력 발전시설에 먼저 내려졌지만, 얼마 전부터는 민간 태양광 발전시설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제주도에서 ‘탄소 없는 섬’ 비전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가 급격히 확대된 최근 10여 년간, 화력발전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함께 증가한 점은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햇빛연금으로 불리는 태양광 시설에 대한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내려면 볕이 좋은 날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지만, 거래소에서 전기를 구매해주지 않으니 민간 사업자들은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RPS)’로 발전단가가 비싼 재생에너지를 일정비율 이상 공급해야 하는데 과잉생산된 전기에 대한 보상까지 이루어진다면, 결국 전기를 소비하는 일반 국민에게 이중의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비싼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작년 독일의 석탄발전은 전년 대비 23% 늘었고, 제주도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확대는 그것이 목표로 하는 온실가스 감축에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관련 기술을 개발하여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예측 불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대용량의 안정적 배터리와 잉여전력을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술개발의 끝은 알 수 없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수소를 곁들여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지와 지속적인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 회의적이다.

지구온난화를 막아내면서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는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성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수소와 ESS에 관한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면서,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충분한 예측 가능성을 가진 원자력 발전을 든든한 ‘주력’ 기저발전으로 사용해야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에너지가 언제까지나 잊히지 않는 진정 고마운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더욱 계획적이고 실용적으로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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