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
‘RE 100’이 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됐다. 대선을 치르면서 TV토론에서 RE 100을 놓고 여야 후보 간 입씨름까지 벌어진 뒤로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RE 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자는 국제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2014년 다국적 비영리 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시작되었다. ‘RE 100’은 기업이 자체 생산한 것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구매한 재생에너지 전력도 인정해준다. 예를 들어,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하면, 그만큼 해당 기업이 사용한 전력을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인정해준다.
‘RE 100’은 재생에너지 이용을 활성화하는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기업이 자체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RE 100’을 달성하려면, 해가 떠 있거나 적당한 바람이 불 때만 공장이나 사무실을 운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려면,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하는 등 상시 전력공급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기업이 수지타산 맞추기가 쉽지 않다.
구글도 한때 ‘RE 100’을 채택했으나, 그 한계를 깨닫고 탄소 배출 없는 전력원을 사용하자는 ‘CF(Carbon-Free) 100’으로 대체하였다. 2018년 10월 구글은 ‘구글 데이터센터 탈탄소화’라는 보고서에서 ‘RE 100’ 이행실태를 다음과 같이 고백한 바 있다.
"칠레 킬리쿠라(Quilicura) 데이터센터는 햇빛의 가변성 때문에 몇 시간 동안 무탄소 에너지 부족을 경험했고, … 24시간 내내 100% 무탄소 에너지 매칭 달성에 실패했다. 아이오와 데이터센터는 풍력 에너지 가변성 때문에 좀처럼 무탄소 전력에 도달하지 못하고, 탄소를 배출했다." ‘RE 100’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보고서의 내용이 아닐 수 없다.
‘RE 100’은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린 워싱은 ‘친환경(green)’과 ’더러운 곳을 가린다’는 의미의 ‘white washing’의 합성어로서, ‘위장 환경주의’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업이 제품 생산 과정 중 환경오염은 축소하고 재활용 등 일부 친환경적 과정만 부각해 마치 그 제품이 친환경 제품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실제로는 온실가스 배출 활동을 하면서, REC를 구매해 ‘RE 100’으로 포장하는 기업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 탄소 배출 감축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EU 택소노미(Taxonomy)는 그린 워싱을 방지하고 기후위기 적응 및 대응에 실제 공헌하는 활동을 식별하기 위한 기준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탄소 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나 그 전환을 가속화 하기 위한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도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택소노미에 포함되었다. 원자력이 택소노미에 포함된 여러 근거 중 하나가 유럽 공동연구센터(JRC)의 검토 결과다. 그 핵심은 ▲원자력이 기후변화 완화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고, ▲원전 안전과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현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의식주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과 경제활동의 근간이다. 에너지, 특히 전력 공급이 불안정할 경우, 어떤 재난적 상황이 벌어지는지는 작년 중국 등에서 벌어진 대정전 사태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은 국민과 기업을 위한 것이다. 그 취지는 도외시한 채 수단을 목적인 마냥 위장해 국민과 기업에 과중한 부담을 스스럼없이 지우는 에너지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이제는 국민과 기업을 위한 진짜 에너지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