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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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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기회와 도전] 독일 "환경 파괴되면 문화도 붕괴"...태양광 수소로 '그린레볼루션' 박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10.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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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전면이 태양광패널로 이뤄진 프라이부르크 시청 전경.

<글 싣는 순서>

<1회> 산업계, ‘게임 체인저’ 변신 박차
<2회> 탄소중립 시대의 새 기회 배출권 거래
<3회> 생활 속 실천 탄소중립 거버넌스 확립
<4회> 발전부문의 에너지 전환
<5-1회> [르포] 풍력발전 메카 덴마크
<5-2회> [인터뷰] 덴 요르겐센 덴마크 기후에너지부 장관
<6회> [르포] 산업혁신 모델 독일

[뮌헨·프라이부르크(독일)=이서연 기자] "독일 사람들은 환경문제가 자신의 삶과 직결된다고 생각해요.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현지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얼마나 깊게 이 문제를 고민하는지 와닿습니다. 환경을 ‘문화’에 포함시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환경이 파괴되면 자신들의 문화도 망가진다고 여기는 거죠"

독일 서남부 ‘녹색도시’, ‘태양의도시’ 등으로 불리는 프라이부르크에 약 4년째 거주중이라는 정시진(31)씨의 말에서 독일인들이 얼마나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 ‘태양의 도시’ 프라이부르크…"환경 파괴되면 문화도 망가진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시민회관이었다. 건물벽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이루어져있었다. 벽이 패널로 뒤덮이면 건물 미관을 해칠 것이란 생각은 빗나갔다.

정시진 씨는 "프라이부르크가 태양광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이런 건물을 짓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사전에 많은 토론과 협의를 거친 뒤에야 결정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독일 문화성과 뿌리 깊게 관련돼 있다"며 "독일에서는 오래된 것들을 쉽게 부수지 않고 건물이던 어떤 건축적인 요소를 설계할 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 빠르게 건물을 세우는 것 보다 그 이후에 의미들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사람들의 삶을 보면 이해가 간다. 여기에서는 시내 중심에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산책하는 것이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며 "물론 여기서도 어쩔 수 없는 자본의 흐름이 있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하지만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강가를 깔끔하게 한다고 뒤엎는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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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부르크 도로에 세워져있는 자전거.

프라이부르크 중앙역에서 10분 가량 이동해 ‘보봉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프라이부르크 중에서도 대표적인 친환경 마을로 손꼽힌다. 독일 통일 이전까지만 해도 군사 주둔지였으나 친환경의 쾌적한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고급 주거지로 주목받고 있다. 집값 순위로 보면 독일 전체에서 6위에 오를 만큼 독일인들이 선호한다. 보봉마을을 찾은 첫 인상은 ‘깨끗하다’였다. 늦은 오후여서 해가 쨍하지는 않았지만 비 그친 뒤의 공기가 상쾌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교통수단은 수많은 자전거들과 트램이었다.

도로에는 한국의 주말 새벽만큼이나 차량이 없었을 뿐더러 자동차 운행 속도도 느렸다. 계속 걷다 보니 멀리 산 중턱에 있는 풍력발전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태양광 도시’ 답게 곳곳의 주택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빛의 집열판으로 덮인 지붕과 알록달록한 벽, 넓은 창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냈다. 보봉마을의 태양광 에너지 주택은 태양 빛을 받는다는 뜻에서 ‘패시브 하우스’로 불린다. 건물 내부의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철저한 단열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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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봉마을 주택의 지붕에는 대부분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있다.


마을 내 건물 대부분이 층고가 낮았는데 걷다보니 한눈에 띄는 큰 원통형 건물이 있었다. 바로 보봉마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태양광 주택 ‘헬리오트롭’(Helliotrope)이었다. 프라이부르크 출신의 건축가 롤프 디쉬가 1994년 지은 이 건물은 원통형 건물의 절반은 패널이, 나머지는 두껍고 큰 창문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외관을 자랑했다.

여러 차례 건축상을 수상한 헬리오트롭은 햇빛을 따라 회전하며 자체 수요량의 5배에 달하는 전기를 판매한다.

독일은 지자체 건축물 규정에 따라 발전시설을 설치한 후 온라인 등록절차를 거치면 지역의 전력망 사업자에게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독일 국민들이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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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따라 돌아가는 원통형모양의 헬리오트롭.


◇ 보봉마을, 군사주둔지서 고급주거지로 탈바꿈…독일 집값 순위 6위 올라


프라이부르크 보봉은 프랑스와 스위스의 접경지역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주둔지였다. 독일군의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승리한 연합군 소속 프랑스군이 1990년 독일 통일 2년 뒤인 1992년까지 머물렀는데 당시 마을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따와 보봉마을이 됐다. 통일 후 프라이부르크는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곳으로 보봉을 선택했다.

그 배경은 학생들이다. 보봉에 소재한 명문 프라이부르크대학의 학생이 마을 전체 인구의 무려 10%를 차지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병영지를 주택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운동이 활발해졌다. 프랑스 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보수해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곳에 자리 잡은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거나 학생신분이었다. 30여명의 시민들은 ‘포럼보봉’을 구성했다. 교통, 에너지, 주민공동시설, 주거환경 등 주제별 소모임을 만들고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연합군 철군지역의 활용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이다.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들의 기획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방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시진 씨는 "최근 4~5년 사이에 녹색당의 입지가 세지며 문화지원 정책보다 환경보호정책에 보조금이 더 많이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30여년이 흐른 현재, 프라이부르크 집값은 독일 전체 6위이다. 428세대 1000여명의 주민이 입주 중이며 특히 세컨하우스(별장) 용도로도 인기다.

환경이 좋은 독일 내에서도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유럽의 환경 수도’ 보봉마을. 자연친화적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주민들이 오랜 시간 정성껏 꾸려온 마을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봉마을이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생태도시 건설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조량이 풍부하고 드넓은 평야가 끝없이 이어지는 독일 남부의 환경 덕이다.


◇ 벤츠·BMW 등 본사 밀집 뮌헨, 태양광·전기차로 ‘그린 레볼루션’


"독일 남부지역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태양광과 E-모빌리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코트라 뮌헨 지사에서 만난 조일규 무역관장의 설명이다. 그는 "탄소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발전도 중요하지만 독일 현지에서 국내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친환경 교통, 그중에서도 전기차"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월 오는 2030년까지 2021년 대비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7.5%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유럽연합과 독일의 친환경 정책은 궤를 같이 한다.

올해 기아와 현대차는 독일 정부의 친환경차 장려 정책에 맞춰 친환경 신차를 대거 출시한 바 있다. 독일자동차공업협회(VDIK)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1~9월 독일에서 12만9257대를 판매했다.

조일규 관장은 "독일에는 벤츠·폭스바겐 등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자동차 기업들이 있지만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우리나라 기업은 준비기간이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를 비롯한 전기차 부품시장에서도 굉장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독일 바이에른 주에 진출한 우리 기업 19곳 중 16곳이 자동차·반도체 부품 관련 회사이다. 특히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술은 독보적 1위라는 설명이다.

조 관장은 "전기차 전환계획에 속도를 내자 벤츠·폭스바겐 등 독일의 내연기관차를 비롯해 부품 공장이 직격탄을 맞았다"며 "이러한 상황이 오히려 우리 기업에는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이 해야 할 일은 내연기관차의 재고 현황을 파악하고 변화하는 정책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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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왼편에는 항상 자전거 도로가 있다.


◇ 트램·자전거·나무 눈에 띈 녹색 산업도시…"쾌적해 삶의 질 높아"


탄소중립 현장으로 베를린·함부르크에 이어 독일 제3의 도시로 일컫는 뮌헨도 찾았다. 뮌헨엔 BMW(자동차), 지멘스(전자), MAN(상용차), 오스람(전기), 로데&슈바어츠(전기), 린데(가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제조기업들의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독일에서 산업화가 늦은 편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동·서독 분단으로 경제번영 가장 크게 이룬 곳이다. 독일에서 1인당 소득과 땅값이 가장 비싼 곳으로 알려졌지만 쾌적해 삶의 질이 높은 곳으로 유명하다. 면적은 서울의 절반 크기지만 인구는 서울의 6분의 1이다. 고층건물이 비교적 적다.

뮌헨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벤츠 뮌헨센터였다. 벤츠 최대 전시장인 이곳은 건물 크기가 압도적이었음에도 높지는 않았다.

뮌헨의 겉모습을 간단히 설명하라면 벤츠 건물 옆을 지나가는 트램과 자전거 도로, 그리고 나무를 꼽을 수 있다. 산업, IT도시인만큼 서울의 도심과 비슷한 모습을 예상했는데 전혀 달랐다. 벤츠 최대 전시장과 BMW 본사가 있는 도시지만 시민들은 자동차보다는 자전거와 트램을 주로 이용하는 듯 했다. 인도의 왼편에는 자전거도로가 있었는데 횡단보도까지 자전거 전용 구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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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지멘스사의 트램.


트램길 옆에 나있는 잔디는 소음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숙소 바로 앞이 트램 정거장이 있었는데도 조용했다. 경제도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른 아침 출근시간에도 거리에 자동차는 많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도로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와 공유 전동 킥보드도 눈에 띄었다. 자동차를 많이 이용하지 않아 그런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 에너지 전시장 열기…"재생E원·수소 결합, 에너지전환 새 드림팀"


뮌헨에 머무는 동안 현지 전시관 ‘메세뮌헨’이 주최한 스마트에너지전을 관람했다. 이 전시관의 크기는 체감상 서울 코엑스 전시홀의 약 4배 정도 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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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세뮌헨’이 주최한 스마트에너지전시회의 삼성SDI 전시관.


전시회에선 대부분 태양광·전기차·배터리를 선보였다. 지멘스·삼성SDI·화웨이 등 낯이 익은 기업들도 꽤 눈에 띄었다. 전시 마지막 날이었음에도 참관하는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주최 측은 "앞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성공을 위해선 재생 에너지원을 확대시키는 동시에 저장 인프라, 교통부문 등의 결합이 필수"라며 "E-모빌리티의 발전을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 격차를 줄여야 하고 그 답은 태양광 발전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필요한 기후 보호 조치는 재생 에너지의 신속한 확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독일 국립충전인프라센터에 따르면 향후 10년 동안 주거용 전기차 충전소가 약 80%를 차지할 예정이며 공공 충전소를 능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정부는 민간 설립 충전소에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2020년 11월 보조금 정책이 시작된 이후 38만5000건의 자금 지원 신청서가 제출됐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독일의 전기차 수요를 짐작할 수 있는 지점이다.

수소 산업 전시도 눈에 띄었다. 독일 수소연료전지협회(DWV) 이사회 의장인 베르너 디발트는 "재생에너지원과 수소의 결합은 곧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의 수소 전략은 향후 30년 동안 재생 가능한 자원을 통해 수소 생성에 최소 4700억 유로를 투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3400억 유로는 태양광 및 풍력 에너지 개발에 할당된다.

전시회를 통해 수소경제가 아직은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산업·운송·전력 부문에서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한 탈탄소 해결책이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했다.

특히 생산이 늘고 있지만 적기에 사용이 어려운 태양광·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전기로 그린 수소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독일의 ‘그린 레볼루션’의 핵심임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수소생산은 곧 태양광·풍력 에너지의 가장 효과적인 저장 및 유통 도구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린 수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하루 빨리 구축할 수밖에 없다. 그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뮌헨에서 ‘그린 레볼루션’의 답을 찾을 필요가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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