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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글로벌 에너지대란에 탄소중립과 탈원전 등 에너지전환이 정책 궤도수정의 갈림길에 섰다. 특히 난방 및 전력수요가 큰 겨울철 글로벌 에너지대란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의 탄소중립 및 탈원전 정책의 속도조절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17일 외신 및 국내 업계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방향을 재검토하는 분위기다. 국제유가 등 연료비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올 겨울 세계적으로 한파가 예상됨에 따라 에너지수급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우리 정부도 에너지대란이 내년 2월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우리가 아직 에너지 수급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지만 해외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은 심상찮다.
이에 우리 정부도 그간의 에너지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수많은 비용이 소모되는 탄소중립 정책과 공공요금 인상 억제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현재 마련 중인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나와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최종안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석탄발전을 없애고 원전의 발전비중을 7%까지 낮추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0%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2030년 NDC도 2018년 기준 대비 유럽 선진국 수준에 가까운 40%로까지 올리는 정부안이 제시됐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원전(29.0%)과 석탄발전(35.6%)이 전체 전력 생산의 70% 가까이를 담당하고 천연가스가 난방 공급의 핵심역할을 하는 국내 형편에서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 추진하는 것은 전력수급에 중대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태양광의 경우 간헐성으로 겨울철 피크기 가동이 고작 1%에 그치는 등 전력효율이 크게 낮은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 수급 대응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전력의 6% 수준에 그치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50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것 자체도 허황 되기 짝이 없다는 주장도 펼친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최근 급등해 높은 연료비 부담 때문에 액화천연가스(LNG) 가동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난방 성수기 도시가스 인상 압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정책 재검토의 필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등 에너지공기업은 탄소중립위의 탄소중립시나리오에 대해 일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 발전소를 9기만 남긴 탄중위 시나리오에 대해 ‘9기+α‘로 확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수원은 "재생에너지 한계 및 불확실성에 대한 보완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저탄소배출원이며 안정적 에너지원인 원자력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들은 석탄발전을 모두 중단할 경우 매몰 비용 발생과 수익 악화 등으로 오히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동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남부발전은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석탄 및 LNG발전기의 잔존수명보다 조기 퇴장시 불가피한 매몰비용 발생으로 발전사의 재무적 부담이 가중된다"며 "이 경우 재생에너지, 무탄소 전원 등 에너지전환의 추진동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수익악화가 지속될 경우 회사 존립 위협받는다"고 했다. 이어 "3안에 따른 LNG 발전 전량 중단을 고려할 경우 석탄 대체 LNG 발전의 경제성 확보가 곤란해 사업추진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만을 늘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이 가능해 밤에는 생산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해야 하는데 에너지저장장치(ESS) 비용이 워낙 높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엔 발전비용보다 저장 비용이 높아지는 등 전력 시스템 유지 비용이 커져 전기요금이 지금의 3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전날(현지시간) 백악관이 1500억 달러 규모의 초당적 인프라 법안에 청정에너지 정책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성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000만개의 화석연료 산업 일자리를 보유한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강력한 반대가 원인이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지난 주 석탄발전소의 건설 계획을 밝혔다. 또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 위기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일정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소식에 국제사회는 탄소 저감 목표를 얼마나 진전시킬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영국과 다른 주요국가들도 이미 온실가스 대규모 방출국들로부터 전면적 탄소저감 약속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프랑스, 체코 등 유럽 10개국 경제 및 에너지장관 16명은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노출되는 것을 막고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원전은 필수적"이라며 공동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지금 가장 급한 것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경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용상승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 에너지 공공요금 인상 압력 계속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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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주택가의 도시가스 계량기의 모습. 정부는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를 통해 공공요금을 연말까지 최대한 동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
실제 국제유가와 LNG 등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은 에너지 인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 11일 최근 7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으며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석유뿐 아니라 난방용 연료로 주로 쓰이는 국제 LNG 가격도 치솟고 있다. 연초 100만BTU당 7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던 LNG 가격 지표는 최근 5배가량 상승한 35달러 선에 진입했다.
국내에서도 4분기 전기요금이 7년 만에 인상되는 등 비용상승에 따른 전기료와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압력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하반기 공공요금을 동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11월 도시가스 요금도 동결로 방향을 정했다. 공공요금 인상이 물가 급등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다만 연료비연동제 도입으로 에너지가격이 오를 경우 공공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억지로 억누를수록 후폭풍이 더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11월 가스요금 인상 여부를 두고서도 기획재정부의 동결 주문에 산업통상자원부가 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수 차례 반기를 들었지만 결국 동결로 방향이 정해졌다.
◇ 공기업 경영 부담 가중 불가피, 한수원·발전사 "탄소중립 정책에 존립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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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위적인 물가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전기 요금도 올해 3분기 연속으로 동결을 했지만, 화력발전에 사용되는 유연탄 가격의 급등으로 결국 4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했다.
일각에서는 물가당국이 대선을 앞두고 최대한 물가를 억누르고 있지만,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공요금 인상이 선거 악재로 돌변하는 것을 막겠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한 이 같은 인위적인 억누름이 향후 인상압력을 더 키워 물가부담이 증폭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데 공공요금을 동결할 경우 에너지 수입대금의 미수금과 이에 따른 이자 비용이 늘어나 공공기관의 영업부담을 높이고, 이는 다음 요금 조정 때 인상 압력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