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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월성 1호기(오른쪽). 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정부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한 손실보전을 공식문서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에 약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전 절차인 손실보전을 위한 근거(법적 절차 등)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손실보전을 약속하고 한수원은 이를 근거로 원전조기 폐쇄를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절차상 문제와 함께 정부와 한수원간 손실보전 책임 및 배임을 둘러싼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월성1호기 조기폐쇄와 관련, 한수원에 1481억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오는 24일부터 시작되는 재판과정에서 이를 근거로 검찰 및 정부측과 치열한 법리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경제신문은 20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간 송·수신 공문서 3건을 단독 입수했다.
이 공문서 내용을 요약해보면 산업부는 그해 2월 20일 한수원에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후속조치, 즉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협조요청을 했다. 이에 한수원은 정 사장 취임(2018년 3월 말) 두 달 여 뒤인 6월 11일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 보전방안을 요청했고 산업부는 사흘 뒤인 6월 14일 ‘법령 개정을 통해 관련 비용보전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라는 내용을 문서를 통해 회신했다. 그리고 한수원은 그 이튿날인 6월15일 이사회를 열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를 의결했다.
한수원, 산업부 ‘비용보전’ 약속 받고 하루 뒤
월성1호기 조기폐쇄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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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료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산업부는 2018년 2월20일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에 따른 협조요청’ 공문을 통해 한수원에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등을 요청했다.
이 공문에는 "전력정책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신규원전 백지화 및 월성1호기 조기폐쇄 과련 사항 등이 포함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공고했다. 귀 사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들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적혀있다.
‘귀 사 차원의 필요한 조치’는 이사회를 통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결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정 사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월성1호기 조기폐쇄의 타당성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정부가 두 차례 공문을 보내 에너지전환 정책에 협조해달라고 했다"며 "정부 정책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게 공기업의 역할이며 법리적 책임이 있으면 지겠다"고 밝혔다.
이 공문을 받은 한수원은 같은해 6월 11일 산업부에 ‘에너지전환 정책 이행 과련 비용 보전 방안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월성1호기 조기폐쇄 및 신규원전 사업종결 등과 관련하여 정부의 에너지전환로드맵(2017.10.24, 국무회의 의결)에 의거 향후 비용 보전을 요청하니 정부의 보전 방안을 알려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산업부는 6월 14일 ‘에너지전환정책 이행 관련 비용 보전 방안 요청에 대한 회신’ 공문을 한수원에 보냈다. 산업부는 이 공문에서 "정부는 원전의 단계적 감축 과정에서 적법하고 정당하게 지출된 비용에 대해서는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하여 보전하기로 결정(에너지전환 로드맵, ‘17.10.24, 국무회의 의결)한 바 있으며, 이를 위한 근거, 절차 등을 포함하여 관련 법령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개정될 법령의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비용보전 조치가 이루어질 예정임을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이 공문을 받은 한수원은 다음날인 6월 15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했다.
정 사장은 지난달 검찰이 자신을 배임혐의로 기소하자 페이스북에 "국회에서 수십차례 답변했던 사항일 뿐 아니라 저와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공문을 종합해보면 한수원의 월성1호기 조기폐쇄 조치는 정 사장의 주장대로 산업부의 관련 협조 요청과 손실비용보전 약속을 근거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손실보전 근거 법령 개정 전 조기폐쇄, 법적 다툼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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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손실비용 보전의 근거(관련 법령 개정)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수원이 월성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한 부분에 대한 책임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 사장의 배임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한수원에 대해 산업부가 월성1호기 조기폐쇄 협조요청 및 손실비용보전 약속을 했을 당시 백운규 산업부 장관의 관련 배임교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및 수사중단을 요구했다.수사심의위의 이같은 결정엔 백 전 장관 변호인단의 주장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관 변호인단은 정부가 원전 폐쇄에 대한 손실을 보전하기로 한 만큼 정 사장에게 배임을 물을 수 없으며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존중해 백 전 장관을 배임 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지 않는다면 정 사장도 배임 혐의를 벗을 수 있다.정 사장은 정부의 관련 각종 행정조치와 감독 부처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청, 손실보전 약속 등에 따라 산업부 산하 기관장으로서 수행한 업무에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 배임 혐의 인정 땐 정부-정 사장 책임공방 거세질 듯
그러나 법원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해 한수원에 손실을 인정할 경우 정 사장은 배임혐의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손실보전과 관련 정부의 법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의결한데다 한수원이 정부의 약속대로 손실보전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당 손실보전 방법으로 ‘기금 등 여유재원 활용’을 한수원에 약속했고 이를 위한 근거를 담은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지난 6월 1일에서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후 3년이나 지난 상태에서 손실보전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 개정령안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용처를 추가해 원자력발전 감축을 위해 발전사업 또는 전원개발사업을 중단한 사업자에 대해서도 전력기금으로 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이 개정령안은 국무회의 의결 6개월 뒤인 오는 12월부터 시행된다.
문제는 한수원이 이 개정령 시행 후 정부에 비용보전을 공식 요청하더라도 소급적용 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실제 정부의 비용보전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결정대로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하고 법원에서 정 사장의 배임혐의만 인정될 경우 정부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책임 관련 ‘꼬리자르기’ 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고 정부가 각종 행정조치와 함께 손실 보전까지 약속한 상황에서 산업부 산하 기관장으로서 기관 감독부처인 산업부의 사실상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지난 18일 검찰 수사심의위 결정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고 그걸로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정보를 세상에 퍼뜨리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감사원에서도 1년이 넘도록 모두 다루었던 문제고 국회에서도 수십차례 답변했던 사항일 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을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맞춰서 마음대로 재단해 버리네요"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평소에 제가 늘 말해왔듯이 진실은 하나이고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편견과 왜곡"이라며 "흥분할 필요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잘 대응하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전력기금을 통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손실보전은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령안의 소급적용 문제 외에도 정부가 타당성 논란을 빚고 있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책임을 국민부담으로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전력수요 관리사업 등을 위해 조성되는 전력기금은 국민이 매달 낸 전기요금의 3.7%를 법정부담금으로 부과해 적립한다. 매년 2조원 가량 걷히며 작년 말 기준 여유 재원은 약 4조원이다.
산업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는 12월 초까지 비용 보전 범위와 절차 등 세부 내용을 담은 하위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후 원전 사업자인 한수원이 비용 보전을 신청할 수 있다. 한수원은 아직 비용 보전을 신청하지 않은 상태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월성1호기는 국민혈세 7000억원을 들여 보수한 안전하고 경제성이 입증된 알짜 원전인데 문재인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산업부와 한수원이 작당해 원자력발전소를 멈춰놓았다"며 "그 손실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