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
과연 우리 대한민국이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기후변화에 무관심하고 비협조적이었는가. 그래서 국제사회에서 다른 선진국을 제치고 한국이 유달리 그런 비난을 받을 만한 정책오류를 거듭해 왔는가. 팩트체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규모로 글로벌 20위 이내 국가 중에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국가 단위로 시행하는 유일한 국가다. 미국의 경우 일부 주에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될 뿐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여러 국가가 탄소배출권 시장으로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한때 도입하였다가 폐지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온전한 선진국이 아직 아닌 신흥국으로 분류될 때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여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 분류된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여러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RPS, EERS, RE100, 녹색프리미엄 등 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제도가 동시 다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막상 정책 정합성 달성을 위한 제도 설계자 관점에서 보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다양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최근 석탄발전상한제, 탄소국경조정제도, 탄소세 등이 논의되고 있다. 아직 경제수명이 남아있는 노후 석탄발전을 값비싼 LNG발전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연료유 규제에 대응해 LNG 추진선 건조와 비축기지를 조성하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지금부터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규모는 거의 두 배로 증가할 만큼 가파른 보급 속도를 보일 전망이다. 대규모 해상풍력 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동절기에 시행되는 미세먼지계절관리제는 미세먼지 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해외 유연탄 발전 수출은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탈탄소 정책을 선언하였다. 탄소중립을 선언한 일본도 유사하게 해외 석탄발전 사업은 중단하기로 하였지만 일본 내의 신규 유연탄 발전은 지속하는 것과는 우리나라는 대비된다. 이와 같은 노력과 비용 감내를 통한 구조조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일각에서는 스스로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이라고 국제사회를 향해 소리 높여 비난한다. 이는 분명 불합리하고 부당한 평가다.
향후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통상협상 과정에서 쌍무적 협상으로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기후악당이라고 자처하는 국가의 탄소비용 부담은 높아질 것이다. 기후악당이라고 자처하는 국가의 탄소비용을 EU가 왜 순순히 인정해주겠는가.
2015년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탄소가격 갭(Carbon pricing gap)이라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다. 이상적인 탄소비용과 각국에서 실제 실현되는 탄소비용 차이를 나타낸 것인데, 우리나라보다 갭이 작은 나라는 스위스, 룩셈부르크, 프랑스, 노르웨이, 영국,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뿐이다. 규모가 작은 나라를 제외하면 영국과 프랑스가 우리보다 앞설 뿐이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탄소가격 갭이 컸었다. 그리고 2015년은 우리나라가 탄소배출권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기후악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1990년대 초부터 기후변화 정책을 연구해 온 기후변화 경제학자로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과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계속 긍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기후악당이라는 스스로의 비난 대신에 ‘기후리더쉽 국가로 거듭나는 대한민국’ 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