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에교협 공동대표 |
원전 수출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도 각별하다. 체코·폴란드·루마니아·사우디의 원전 건설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통상·외교·안보 분야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원전수출자문위원회’를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미국·프랑스·러시아와 치열한 경쟁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조차 밀어내버렸던 원자력 전문가를 포함시키는 결단도 있었다. 중소 원전 부품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원전수출정보지원시스템’도 개설했다.
그런데 원전 수출에 대한 대통령의 별난 관심은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국내에서의 무차별적인 탈원전에 대한 황소고집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로 마지못해 재개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공사도 지지부진하다. 월성 2호기의 계속 운전을 위한 준비도 포기해버렸다. 포화 직전인 사용후 핵연료 임시 저장시설에 대한 관심도 턱없이 부족하다. 안전하게 가동 중인 원전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편이다.
지난 연말 산업부가 졸속으로 만들어놓은 기형적인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탈원전의 기조는 분명하다. 9.5GW의 전력을 생산하는 11기의 원전이 퇴출되는 2034년에는 원전의 비중이 19.4GW로 줄어들게 된다. 발전 효율이 17.9%에 불과한 태양광·풍력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서둘러 재개해야 한다는 원자력계와 지자체의 절박한 요구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원전 수출에 대한 대통령의 기대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국제 원자력계는 2017년 IAEA 총회에서 대통령 과학비서관의 어설픈 탈핵선언을 지금도 잊지 않고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애써 지어놓은 바라카 원전의 장기정비계약(LTMA)을 놓쳐버리고,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에서 탈락하게 된 것도 그 결과였다.
탈원전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원전 수출에 꼭 필요한 원전 부품산업이 무너져버렸다. 2018년 4400억 원이었던 원전 부품의 수출 실적이 2019년 200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EU와 미국에서 인증을 받아낸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매력도 시들해지고 있다. 탈원전으로 차세대 원전 개발 노력이 중단되어버린 탓이다.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정부의 거부감으로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도 중단되어 버렸다.
국민 안전을 핑계로 탈원전을 고집하는 우리 원전의 수출은 윤리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원전이 우리에게 위험하다면 다른 나라 국민에게도 위험한 것이다. 다른 나라 국민의 안전도 걱정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대통령도 안전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은 것이다.
원전의 가치와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물론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원전이 인류 건강과 환경에 더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한국형 APR1400을 비롯한 3세대 원전은 모든 발전 기술 중에서 치사율이 가장 낮다는 점에서 안전성이 확인되었다는 것이 EU의 합리적 결론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기술을 무작정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백신 접종에서는 치명적인 부작용의 가능성도 감수한다. 결국 탈원전은 시대착오적 착각이었다.전 세계가 전력투구하고 있는 탄소중립에 꼭 필요한 것이 원전이다.
전 세계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원전 기술을 절박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가 개발했다고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