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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 |
제 46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2020년 대통령 선거가 이달 3일부로 1년 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정치, 경제, 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우리나라의 한반도 비핵화, 군사동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재선 출마를 선언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후보 선출이 기정사실화된 분위기인 반면 민주당은 이에 맞서 대선주자를 뽑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모양새다. 이에 따라 1년 앞으로 다가온 2020년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은 공화당 소속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냐, 민주당의 정관 탈환이냐로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라는 이변이 연출됐다. 힐러리는 일반 국민 총득표 수로 트럼프보다 280만표 이상 앞섰지만, 트럼프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304대 227로 힐러리를 누르면서 결국 제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 요인으로는 여론조사에서 감지되지 않은 지지층 ‘샤이 트럼프’ 유권자의 표심이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은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의 백인 중산층 노동자들이 세계화와 이민정책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트럼프를 택했고,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강조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에 따른 변화를 바라는 심리와 ‘워싱턴 정치’에 대한 실망 등이 어우러져 트럼프 당선이 연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현재 미국 내 정치 여건이 과거 4년 전과 다르다는 부분에 있다. ‘아웃사이더’, ‘정치적 이단아’로 여겨지던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예상을 깬 대선 승리를 거머쥔 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하면서 새로운 정책 실행에 나섰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미국이 구축해왔던 기존 질서가 무너지기도 했다.
국내적으로는 멕시코 국경장벽으로 대표되는 이민정책, 건강보험 정책인 오바마 케어 폐지 추진 등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모든 정책을 뒤집는 이른바 ‘ABO’(Anything but Obama)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또 외교적으로는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에 회의적 태도를 취하며 고립주의와 불개입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추구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일으킨데 이어 한국에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는 등 세계 국가들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큰 비난을 부른 행보 중 하나는 단연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태도다. ‘기후변화가 사기’라는 주장을 펼쳐온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공식적으로 파리기후협약(파리협약) 탈퇴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파리협약이란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서 맺은 국제협약을 일컫는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는 당시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28% 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외에도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 기조에 따라 화석연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듯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숱한 정치적 논란을 낳았고 민주당의 강한 반발을 샀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약화시켰다고 비난하며 전통적 질서 회복을 호소하는 전략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슬로건으로 내세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 전략이 통할지, 또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며 ‘트럼프 심판’을 호소하는 민주당의 주장이 민심을 얻을지가 미국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미국 경제가 현재 수준과 같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서 이길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경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만큼 현재 미 경제가 보기 드문 호황을 유지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특검에 이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조사까지 받으면서 국정 수행 지지도는 낮아지고 탄핵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부담이다.
◇ 내년 2월부터 시작되는 경선…7∼8월 후보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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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 (그래픽=연합) |
2020년 미국 대선의 첫 번째 주요 일정은 양당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기 위해 전당대회 대의원을 선출하는 주(州)별 ‘경선’에서 시작된다. 각 당의 후보 확정을 위한 절차인 경선은 코커스(당원대회)와 프라이머리(예비선거)로 나뉘는데 코커스는 당원만, 프라이머리는 당원과 일반인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게 차이점이다.
코커스는 아이오와 주의 코커스가, 프라이머리는 뉴햄프셔 주의 프라이머리가 ‘원조’로 통하며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것으로 인식된다. ‘전국 최초’라는 명칭이 따라다니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하면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서 이후 열릴 프라이머리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8년 민주당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당시 유력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1위에 오르면서 유력주자로 발돋움해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내년 2월 3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2월 11일에 각각 치른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수많은 후보를 4∼5명 안팎으로 1차 ‘정리’하는 역할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각 당 후보를 1∼2명 안팎으로 ‘압축’하는 역할을 한다. 내년 3월 3일 캘리포니아, 텍사스, 조지아 등 16개 주에서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이 지나면 대선후보의 판세가 결정된다. 이후 6월까지 주별 대의원 선거가 마무리되면 공화당과 민주당은 전당 대회를 열어 대선후보를 확정한다. 공화당은 내년 8월 24일부터 27일까지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민주당은 내년 7월 13일부터 16일까지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전당대회를 연다.
내년 7∼8월 양당이 후보를 확정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승부가 시작되면서 정당 대선 후보끼리 경쟁에 나선다.
대통령 선거일은 11월 첫 번째 월요일 이후의 화요일로 법에 정해져 있다. 이에 내년 미국 대선일은 2020년 11월 3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선일로 알려진 이 날은 대통령이 아닌 선거인단을 뽑는 날이다. 통상 일반 유권자 투표에 따라 각 주별로 선거인단 배분이 정해지면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다. 다만, 공식 확정은 선거인단 투표를 거쳐 이뤄진다. 선출된 선거인단은 12월의 두 번째 화요일 이후 월요일에 주별로 소집돼 대통령을 투표한다.
미 대선은 일반 유권자의 다수를 득표한 후보가 각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 독식제’를 따른다. 주마다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해 과반수를 얻어야 대선에서 승리하는 만큼 선거인단이 배정된 ‘큰 주’에서 이겨 대다수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유권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못해 표심이 오락가락하는 ‘경합주’를 공략하는 전략도 필수이다. 실제 대표적인 경합주로 꼽히는 플로리다가 내년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29명의 선거인단 표가 걸린데다 지난 대선에서는 양당이 초박빙의 승부를 펼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49%의 표를 받아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47.7%)를 겨우 꺾으면서 선거인단 29표를 차지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플로리다에서 재선을 선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선거인단 수는 538명이다. 50개 주의 상원 100명, 하원 435명 및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을 합한 수치다. 캘리포니아(55명), 텍사스(38명), 뉴욕·플로리다(각 29명) 등에 많은 수가 배정돼 있다. 선거인단 수의 과반인 270명을 확보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선거 다음 해 1월 20일에는 대통령 취임식으로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 공화당 후보는 트럼프 기정사실, 민주당은 18명 후보 난립
내년 대선에 앞서 최근 미국 내 선거전은 눈치 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공식화함으로 그의 후보 선출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다. 마크 샌퍼드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조 월시 전 하원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반면 민주당은 대선 주자가 난립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무려 26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8명이 중도 하차해 18명의 주자가 남아있다. 상반기만 해도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최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상승세가 두드러지면서 바이든과 워런이 1, 2위 다툼을 벌이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추격하는 ‘2강 1중’ 구도로 변모했다.
이렇게 민주당 내에서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는 점은 돋보이는 후보가 부족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민주당 일각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미셸 오바마 여사,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제3의 후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조사가 향후 선거전에서 가장 폭발성이 있는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 때 부당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의 탄핵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로선 탄핵소추안은 민주당이 다수석인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어떤 사실이 추가로 나올지, 여론의 추이가 어떻게 변할지 등은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탄핵 조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정도로 파급력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만큼 국민적 호응을 받지 못한 채 부결되면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편, 미국 대선 결과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비롯해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할 경우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 신고립주의 기조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방위비 분담은 물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의 역할 확대 등에 있어 미국의 압박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미중 패권경쟁 가속화와 맞물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반대로 민주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을 기반으로 미국이 구축해온 기존의 질서가 어느 정도 복원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과 미국의 관계에서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적 성향이 빚어내는 ‘트럼프 리스크’는 제거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