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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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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성악가 12명 목소리의 마법...금세 ‘고막여친’ ‘고막남친’ 만들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1.22 17:15

임청화·김지현·이현·이정원·송기창·김진추 등 ‘제9회 아리수가곡제’서 감동 27곡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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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아리수가곡제’ 모든 출연자들이 피날레곡으로 ‘보리밭’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에너지경제신문=민병무 기자] 역시 별들의 잔치였다. 톱성악가 12명이 꽃노래를 부르자 콘서트장은 금세 훈풍으로 가득 찼다.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에 진달래·동백·목련이 계절을 잊은 채 마음 속에서 앞다퉈 피었다. 그리운 사람을 향한 러브송을 토해낼 땐 저절로 울컥했다. 어서 빨리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려와 달라는 소망이, 금빛으로 부서지는 강가에 작은 쪽배로 둥둥 떠 기다리겠다는 하소연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2시간 30분 동안 황홀한 목소리의 마법에 휩싸였다.

가수뿐만 아니라 피아노 반주자 2명, 현악 협연자 2명, 기획진행자 1명을 포함해 모두 17명이 힘을 합친 무대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귀에 익은 옛가곡과 세련미 넘치는 신작가곡을 고르고 골라 금쪽 같은 27곡을 연주했다. 베스트 출연자의 베스트 노래 덕에, 관객 모두는 ‘고막여친’ ‘고막남친’을 얻었다.

대한민국 대표 성악가들이 해마다 1월이면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제9회 아리수가곡제’가 19일(토) 오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렸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올해도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가곡 애호가의 클릭 전쟁이 시작되면서 4연속(2016년∼2019년) 전석 매진의 신화가 이어졌다. 빅히트 공연에 걸맞게 브라보 브라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임청화

▲소프라노 임청화가 배성원의 피아노와 강지현의 첼로에 맞춰 ‘풍등 하나’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K클래식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진 소프라노 임청화는 베테랑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몸에 힘을 뺀 채 자연스럽게 발성을 이어가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강력한 한방을 선보이는 스킬이 놀랍다. 그의 목소리는 배성원의 피아노와 강지현의 첼로 선율을 타고 ‘풍등 하나(고옥주 시·김성희 곡)’가 되어 저 멀리 별까지 흘러갔다. 이어 부른 최영섭 선생의 ‘천년의 그리움(홍일중 시)’에선 새빨간 내금강 단풍을 고스란히 음악회장으로 옮겨와 울긋불긋 통일의 기운으로 물들였다. ‘그리운 금강산’의 후속작으로 만든 금강산 사계연가곡 중 가을에 해당하는 곡이다.

김지현

▲하늘색 드레스를 벗고 빨간색 드레스로 갈아 입은 소프라노 김지현이 ‘님 마중’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하늘색 드레스 나풀거리며 등장한 소프라노 김지현은 귀요미 뿜뿜 소녀였다. 먼저 ‘무곡(김연준 시·곡)’에서 동요 같은 상큼함과 발랄함을 생기 있게 표현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사쁜사쁜 노래가 춤을 췄다. 그리고 ‘님 마중(이명숙 시·한성훈 곡)’에서는 빨간색 드레스 여인으로 변신해 풍부한 성량과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둥근 달빛 아래 버선발로 뛰어 나가는, 쓴맛도 단맛도 아는 여인의 모습이 환하게 그려졌다. 한무대에서 풋풋한 소녀와 성숙한 여인, 이런 두가지 극명한 색깔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는 솜씨가 놀랍다.

신승아

▲소프라노 신승아가 송영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꽃 그림자’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꽃 그림자(이길원 시·한지영 곡)’와 ‘그대 강가에(류동완 시·정덕기 곡)’는 애절했다. 소프라노 신승아는 이 마음 부서져도 사랑하겠노라는 절절한 마음을 절묘하게 묘사해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성혜

▲소프라노 김성혜가 송영민(피아노)·강지현(첼로)·김정민(바이올린)의 반주에 맞춰 ‘서귀포 동백꽃’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소프라노 김성혜는 송영민(피아노)·강지현(첼로)·김정민(바이올린)과 호흡을 맞춰 ‘서귀포 동백꽃(한상완 시·박영란 곡)’을 연주했다. 두개의 현과 어우러진 콜로라투라의 보이스는 제주 바다를 훌쩍 넘어 광화문 한복판까지 동백을 실어왔다. 황여정 시인의 서정적 노랫말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섬진강(박경규 곡)’에서는 수채화 그림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폭풍고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꾹꾹 숨겼는데도 "오 아름다운 섬진강 내 마음의 사랑이여" 하이라이트에서 오히려 빛났다.

김현경

▲가슴에 분홍 스카프로 꽃망울을 표현한 소프라노 김현경이 송영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진달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해마다 봄이면 소프라노의 단골 레퍼토리 1순위에 오르는 ‘진달래(이상규 시·정애련 곡)’는 김현경의 가슴에서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다. 드레스 왼쪽에 분홍 스카프로 액센트를 줘 진달래를 센스 있게 표현했다. 이어 ‘내 맘의 강물(이수인 시·곡)’에서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연륜의 깊이를 느끼게 해줬다.

백재은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이 해학적 가사가 일품인 ‘명태’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양명문 시인의 해학적 가사가 일품인 ‘명태(변훈 곡)’는 그동안 남자의 노래였다. 꼭 바리톤이나 베이스가 불러야만 하는 곡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번에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이 이런 편견을 단숨에 깨뜨렸다. 과감한 선곡이었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카∼" 부분에선 정말 한잔 마시는 듯한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해 환호를 받았다. 백재은은 ‘우포늪(노중석 시·김현옥 곡)’에서도 보이시한 매력을 발산했다.

이현

▲테너 이현이 새로운 느낌으로 편곡된 ‘어느날 내게 사랑이’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이현·이정원·김승직의 ‘스리 테너’는 겨울 여심을 저격했다. 이현은 ‘어느날 내게 사랑이(다빈 시·이안삼 곡)’에서 편곡의 힘을 보여줬다. 1절이 끝나고 곧바로 2절이 시작되는 노래에 아예 한 템포 멈춤의 여유를 줘 더 깊은 울림을 전달했다. ‘세월의 안개(안문석 시·이안삼 곡)’에서도 그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실력을 자랑했다.

이정원

▲한창 물이 올랐다는 찬사를 받고 있는 테너 이정원이 ‘솟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이정원은 자기 마음대로 노래를 가지고 놀았다. ‘한창 물이 올랐다’는 그에게 딱 맞는 표현이다. 저음과 고음을 적절히 섞어 ‘그대 창 밖에서(박화목 시·임긍수 곡)’를 소화했다. ‘솟대(김필연 시·이안삼 곡)’에서는 우렁차다 시원하다 거침없다의 찬사를 받았다.

김승직

▲아름다운 목소리를 자랑하는 테너 김승직이 ‘애모’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남자에게 "아름답다"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모험이지만 김승직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미성의 끝판을 보여줬다. ‘애모(정완영 시·황덕식 곡)’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죄가 될 것 같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또 ‘목련화=엄정행’이라는 공식은 곧 깨질 것 같다. 김승직은 클래스가 다른 ‘목련화(조영식 시·김동진 곡)’를 선보여 이 젊은 성악가의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송기창

▲매력적인 저음의 심쿵 바리톤 송기창이 ‘시절 잃은 세월에’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바리톤들의 저음 퍼레이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송기창은 ‘시절 잃은 세월에(고영복 시·이안삼 곡)’에서 연인에게 말하는 듯한 심쿵 송기창 스타일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또 ‘비목(한명희 시·장일남 곡)’에서는 자기만의 탁월한 곡 해석력이 돋보였다.

김진추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노래하는 바리톤 김진추가 ‘님이 오시는지’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김진추는 "노래의 정석이란 바로 이런거야"를 입증하는 스탠더드 스타일을 선사했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님이 오시는지(박문호 시·김규환 곡)’를 불러 오히려 더 진심이 느껴지는 남성의 세레나데로 승화했다. ‘청산에 살리라(김준연 시·곡)’는 그윽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의 넓은 들판을 생각나게 했다.

이정식

▲바리톤 이정식이 송영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가곡 애호가 겸 아마추가 성악가인 이정식은 특별출연해 ‘내 영혼 바람되어(김효근 역시·곡)’와 ‘강 건너 봄이 오듯(송길자 시·임긍수 곡)’을 연주했다.

김지현과이정원

▲김지현과 이정원이 ‘연리지 사랑’을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송기창과이현

▲송기창과 이현이 배성원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향수’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남여·남남의 듀엣곡도 2곡 선보였다. 김지현과 이정원은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로 엉켜 마치 한몸처럼 붙은 연리지(連理枝)에 부부의 금슬을 빗댄 ‘연리지 사랑(서영순 시·이안삼 곡)’을 불렀다. "영원한 사랑 연리지 사랑" 마지막 부분에서 깜짝 포옹을 연출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현과 송기창은 영원한 흙의 노래 ‘향수(정지용 시·김희갑 곡)’를 선물했다. 피날레 곡으로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보리밭(박화목 시·윤용하 곡)’을 합창했다.

배성원

▲피아니스트 배성원이 ‘제9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송영민

▲피아니스트 송영민이 ‘제9회 아리수가곡제’에서 성악가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김정주

▲아리수사랑 가곡카페 김정주 대표가 ‘제9회 아리수가곡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문기의 포토랜드

배성원과 송영민은 번갈아 피아노 반주를 맡아 성악가들과 멋진 케미를 뽐냈다. 특히 송영민은 유아인이 주역을 맡았던 TV드라마 ‘밀회’에서 유아인의 피아노 연주 대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이번 음악회를 기획한 ‘아리수사랑 가곡카페’ 김정주 대표는 깔끔한 말솜씨로 매끄럽게 진행을 이끌었다.

이날 연주된 작품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들도 대거 자리를 빛냈다. ‘연리지 사랑’ 서영순, ‘진달래’ 이상규, ‘어느날 내게 사랑이’ 다빈 김정주, ‘풍등 하나’ 고옥주, ‘시절 잃은 세월에’ 고영복, ‘서귀포 동백꽃’ 한상완, ‘솟대’ 김필연, ‘아름다운 섬진강’ 황여정, ‘님 마중’ 이명숙, ‘천년의 그리움’ 홍일중 시인 등이 맨 앞자리에서 감상했다.

또 많은 작곡가들도 참석했다. ‘꽃 그림자’ 한지영, ‘진달래’ 정애련, ‘풍등 하나’ 김성희, ‘서귀포 동백꽃’ 박영란, ‘우포늪’ 김현옥, ‘그대 강가에’ 정덕기, ‘아름다운 섬진강’ 박경규, ‘님 마중’ 한성훈 작곡가 등이 성악가들을 격려했다. 또 변훈 선생의 아들인 변용범씨 내외도 참석해 아버지가 작곡한 ‘명태’를 흐뭇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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