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모셔널이 공동 개발한 레벨4 자율주행 아이오닉 5 로보택시. 사진=현대자동차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두고 자동차보험과 사고 책임체계를 운전자 중심에서 운행관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 환경에서는 제조사와 자율주행시스템 제공자, 운행사업자, 원격지원자 등 다양한 주체의 책임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만큼 보험과 피해구제 체계도 이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일 국회에서 열린 '자율주행 상용화 시대 사고책임과 국민안전 체계는 준비됐나' 세미나에서는 현행 교통사고 처리체계가 여전히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통제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 핵심 문제로 제기됐다. 레벨4 이상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운전자가 차량 운행에 개입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기존 책임 구조만으로는 사고 처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영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은 “지금까지 교통법규와 사고 대응 체계는 운전자가 차량을 직접 통제한다는 전제 아래 사람의 과실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며 “자율주행 시대에는 운전자뿐 아니라 제조사 등 관련 주체의 책임을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율주행에서는 누가 책임질 것이냐가 핵심"이라며 “기술 발전을 막을 수는 없는 만큼 자율주행 상용화에 맞는 보험 체계와 안전 체계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자율주행차 사고 발생 시 경찰과 소방이 차량의 운행 상태와 시스템 정보를 신속히 확인하고 대응할 수 있는 현장 안전체계 구축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사고조사를 위해 경찰이 사고기록장치(EDR)와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DSSAD)를 수집·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주행자동차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10일 국회 '자율주행 상용화 시대 사고책임과 국민안전 체계는 준비됐나' 세미나에 참석한 김영진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사진=박서현 기자
◇ 사고 책임 가르는 건 '운전자' 아닌 '운행데이터'
자율주행 시대 자동차보험의 핵심 변화는 사고 당시 차량의 운행을 누가 통제했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운전자의 과실 여부가 보험과 책임 판단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레벨4 이상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차량의 제어권이 운전자에서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만큼 사고 원인과 책임 주체를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책임을 검토해야 하는 대상도 확대된다. 기존에는 운전자와 차량 소유자가 중심이었다면 자율주행차 사고에서는 제조사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제공자, 운행사업자, 원격지원자, 정비·유지관리 주체까지 함께 검토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운행데이터다. 자율주행차에는 기존 사고기록장치(EDR)와 자율주행정보 기록장치(DSSAD)가 함께 탑재된다. EDR은 충돌 직전·직후의 속도와 제동, 에어백 전개 등 차량의 물리적 상태를 기록한다. 반면 DSSAD는 자율주행시스템의 작동 여부와 해제 시점, 제어권 전환 요구, 오작동, 위험최소화운행 등 시스템 상태 변화를 기록한다. EDR이 '충돌 순간의 차량 상태'를 보여준다면 DSSAD는 '사고 당시 실제 운전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판단하는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자율주행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운전자가 제어권 전환 요구에 적절히 대응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사고 원인 분석과 책임 비율 산정에 직접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1일 발의된 자율주행자동차의 도로운행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도 경찰이 EDR과 DSSAD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운행데이터의 법적 활용 근거를 마련하려는 취지다.
운행데이터의 활용 근거가 마련되면 그 활용 범위는 사고조사와 책임 규명을 넘어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운행데이터를 보험에 접목해 보험료를 낮추고 보험사의 손해율을 개선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운행 이력과 시스템 작동 정보는 물론 급가속과 급제동, 주행거리, 운행 시간대 등 실제 운전 데이터를 보험료 산정과 위험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운행데이터를 사고조사와 책임 규명의 핵심 근거로 활용하는 방안이 입법과 정책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정확한 사고 책임 규명을 위해 경찰이 수집한 데이터를 보험사나 사고조정기구와 공유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병권 손해보험협회 자동차 보험부장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려면 사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면서 “공유 기반이 법 제도적으로 잘 마련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층 더 신속하고 촘촘한 피해자 보상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피해구제 방식은 현행 체계를 유지하면서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책임 주체를 가리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피해자는 우선 보상을 받고, 이후 운행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종 책임 주체를 정하는 방식이다. 현행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은 자동차 사고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운행자 책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현재의 피해구제 체계도 운행자 책임과 자동차보험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실제로 현행 운행자 책임은 운전 여부와 무관하게 차량의 운행으로 이익을 얻고 지배·관리하는 자에게 인정되는 구조다. 황현아 보험연구원 보험법제연구실장은 “운전이라는 행위가 책임 귀속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자율주행시스템이 운전을 담당하는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도 현행 자배법상 운행자 책임과 자동차보험 제도의 기본 틀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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