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내원객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6일부터 판매를 시작한 5세대 실손의료보험 상품이 소비자와 보험사, 설계사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각자의 이해관계는 다르지만, 상품 구조상 누구에게도 뚜렷한 이점이 없다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5세대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는 16곳으로 출격 당시와 같은 수치다. 생명보험업권에서는 삼성·교보·한화·흥국·동양·KB·NH농협생명, 손해보험업권에서는 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롯데손해보험·흥국화재·NH농협손해보험이 '매대'를 꾸렸다.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진료 항목을 중증과 비중증으로 나눠 차등화된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보험료를 낮추고, 과잉진료로 인해 다른 가입자들에게 부담이 전이되는 부작용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영업 현장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흥행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직 판매 관련 공식 통계가 집계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출시에 앞서 지목됐던 리스크들이 엮이면서 향후에도 상황이 달라지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 '가성비' 둘러싼 의문
가장 먼저 언급되는 요소는 신규 수요를 창출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기존 1~4세대 실손 가입자가 3600만명에 달하고, 장기간 이어진 저출산의 여파로 어린이보험과 태아특약 및 실손보험을 함께 가입할 잠재 고객이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전환 수요를 주목했던 것도 비우호적인 매크로 환경에서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이 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정 규모 이상으로 형성되기 어렵다는 우려가 고조된 셈이다.
실손 가입자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1~2세대 가입자로서는 전환할 이유가 많지 않다. 이들 세대는 일명 '블랙컨슈머'를 낳을 정도로 보장이 강력하다. 다수의 다른 가입자들이 10만원대 초·중반까지 높아진 보험료를 감당했던 것도 일상생활 또는 노후에 발생할 수 있는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었다.
금융당국이 5세대로 전환하는 가입자를 대상으로 보험료를 최대 50% 할인하는 조치를 일정기간 운영할 방침이지만, 그 정도로는 자기부담금 급증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3~4세대는 '환승'으로 얻는 이득이 더욱 적을 수 있다. 줄어드는 보험료 보다 비급여 치료 보장 한도 등 받을 수 있는 보험금 하락폭이 더 크다는 것이다. 입원치료 이력이 없어 보험료가 할인된 가입자는 오히려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 “이걸요? 제가요? 왜요?"
▲5세대 실손보험이 출시 초기부터 흥행 부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기업들은 5세대 손해율이 중·장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발목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언더라이팅 강화를 토대로 보험금 예실차를 줄이는 등 보험손익을 끌어올리기 위한 '고군분투'가 퇴색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선택형 할인을 비롯한 1~2세대 재매입 관련 제도가 확정되지 않았다. 11월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지만, 최근 보험업권에서 도입하려는 제도 다수가 연기되고 있는 만큼 이번에도 적기 도입을 보장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5세대 전환을 권장하면 가입자의 불만과 민원을 피하기 쉽지 않다.
고객을 만나 상품을 소개하는 설계사 역시 건강보험을 비롯한 다른 상품 판매에 매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제판(보험 상품 제조와 판매)분리'의 가속화로 성장한 법인보험대리점(GA) 채널을 통한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는 원인이다. 일부 자회사형 GA를 제외하면 시장 선점을 위한 활동이 당초 예상 보다 저조하다는 분석이다.
대형 보험사들이 GA 채널을 통한 판매를 제한하거나 아예 상품을 공급하지 않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명 '1200%룰'이 GA로 확대적용되고 수수료 분급이 더해지면 설계사들의 소득 감소가 점쳐진다. 낮은 보험료 때문에 수수료가 적은 5세대를 취급할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말 보험료가 인상되고, 실손 적자의 '대주주'였던 도수치료가 오는 7월 관리급여로 편입되는 등 기존 상품의 손해율 개선이 기대되는 상황에서 수익 창출이 어려운 5세대에 관심을 기울일 까닭이 없다"면서도 “본격적인 판매는 제도 확정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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