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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람 손보다 빠르고 정교하다”…3M, ‘테이프’로 제조업의 공식을 다시 쓰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09 10:00

“오토메이션, 인건비 절감 넘어 품질의 ‘일관성’이 핵심”
전기차 배터리 ‘밀봉’과 ‘재개봉’ 난제, 화학 기술로 풀어
‘짜서 쓰는’ 테이프 개발…굴곡·거친 표면에도 적용 가능
“고객사와 초기 단계부터 머리 맞대고 해결 방안 찾는다”

한국쓰리엠 기술연구소 1층의 조형물. 사진=박규빈 기자

▲한국쓰리엠 기술연구소 1층의 조형물. 사진=박규빈 기자

지난 8일 경기 화성 동탄 소재 한국쓰리엠(3M) 고객기술센터(CTC)에서 열린 '산업 자동화 솔루션 테크 브리핑'에 다녀왔다.


이곳 지하 연구실에선 기계의 구동음과 함께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흔히 '테이프'라고 하면 문구용 스카치 테이프나 박스 포장용 테이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날 현장에서는 테이프가 사무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모품이 아니라 첨단 제조 공정의 핵심 '부품'이자 '자동화 솔루션'으로 진화했음을 확인했다.


“볼트·너트·용접 없는 세상…'레벨 4' 자동화로 간다"

정세훈 한국쓰리엠 접착제·테이프 사업부 영업팀장(부장)이 기자들에게 자사 테이프 자동화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정세훈 한국쓰리엠 접착제·테이프 사업부 영업팀장(부장)이 기자들에게 자사 테이프 자동화 솔루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본격적인 시연에 앞서 정세훈 한국쓰리엠 접착제·테이프 사업부 영업팀장(부장)은 3M이 지향하는 자동화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정 부장은 “3M은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사업을 영위하며 연간 약 37조 원(246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과학 기업"이라며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공정 혁신을 돕는 파트너"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동화를 단순 수작업인 '레벨 1'부터 완전 자동화인 '레벨 4'까지 구분하며, 3M의 솔루션은 최고 단계인 '유연한 자동화(Flexible Automation)'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은 “과거에는 볼트·너트·리벳·용접이 제조업의 체결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경량화와 디자인 자유도가 중요해지면서 접착제와 테이프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제조업계의 인건비 상승과 숙련공 부족으로 자동화 니즈가 큰데 구체적인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정 부장은 “작업자가 2~3명인 소규모 라인보다는 10명, 20명 이상의 대규모 라인에서 도입했을 때 비용 절감 효과가 훨씬 크다"며 “소규모 공정에서는 오히려 초기 투자 비용이 부담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내놨다.


이와 관련, 김정민 한국쓰리엠 이사는 “당사가 강조하고 싶은 건 자동화의 목적이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는 것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라며 “작업자의 컨디션이나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들쭉날쭉해지는 변수를 막고 '품질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라고 부연했다.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했던 실험실 내 로봇 팔

로보테이프(RoboTape) 솔루션 시연 현장. 사진=한국쓰리엠(3M) 제공

▲로보테이프(RoboTape) 솔루션 시연 현장. 사진=한국쓰리엠(3M) 제공

이날 투어의 백미는 단연 지하 랩실에서 진행된 '3M 로보테이프(RoboTape)' 시연이었다.


현장을 안내한 최보경 한국쓰리엠 수석연구원은 로봇 팔이 사람의 손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이는 원리를 상세히 설명했다.


시연에서 6축 다관절 로봇 끝에 달린 도포 장치(어플리케이터)는 S자 곡선으로 휘어진 부품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로봇이 지나간 자리에는 양면 테이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끄럽게 부착돼 있었고, 커팅까지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최 연구원은 “사람이 붙일 때는 10~20초가 걸리고 숙련도에 따라 품질 편차가 생기지만, 로봇은 최대 속도로 일관된 품질을 만들어낸다"며 “특히 사람이 작업하기 힘든 복잡한 곡면 구간도 로봇은 한 번에 정확하게 처리한다"고 강조했다.


인력 대비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낫냐는 질문엔 “속도는 로봇이 낼 수 있는 맥시멈까지 올릴 수 있어 생산성이 압도적이며, 무엇보다 곡면 구간에서 사람이 낼 수 없는 정밀도를 보장한다"고 화답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레벨 와인딩(Level Winding)' 기술이다.


최 연구원은 “일반적인 롤 테이프는 길이가 짧아 공정 중 자주 교체해야 하지만, 3M은 마치 낚싯줄이나 실타래처럼 아주 길게 감긴 대용량 스풀을 공급한다"며 “이런 긴 길이의 레벨 와인딩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은 전세계적으로도 3M을 포함해 몇 곳 되지 않으며, 이를 통해 공정 중단 없는 연속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치약처럼 짜서 쓰는데 굳힐 필요 없는 3M VHB 압출형 테이프

VHB 압출형 테이프(Extrudable Tape) 솔루션 시연 현장(상단). VHB 압출형 테이프를 짜내 '3M'이라고 쓴 것을 들어보이는 최보경 수석연구원(하단 좌측)과 제

▲VHB 압출형 테이프(Extrudable Tape) 솔루션 시연 현장(상단). VHB 압출형 테이프를 짜내 '3M'이라고 쓴 것을 들어보이는 최보경 수석연구원(하단 좌측)과 제품 성능 안내판(하단 중앙), 그리고 이의 신축성을 테스트해보는 모습. 사진=한국쓰리엠(3M)·박규빈 기자

최보경 수석연구원은 이어 기존 테이프의 고정 관념을 깬 '3M VHB 압출형 테이프(Extrudable Tape)'를 소개했다.


그는 “일반적인 양면 테이프는 평평한 곳에는 잘 붙지만, 굴곡지거나 표면이 거친 곳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짜서 쓰는' 테이프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글로벌 장비 업체인 '노드슨(Nordson)'의 프로본드(ProBond) 시스템과 결합된 솔루션이다.


최 연구원은 “고체 상태의 테이프 소재를 미니 압출기에 넣어 약 190~200도의 열로 녹인 뒤 치약처럼 원하는 모양으로 토출하는 방식"이라며 “액체 접착제처럼 보이지만, 식으면 즉시 고체 테이프의 성질을 회복하기 때문에 별도의 경화 시간이 필요 없다"고 역설했다.


자동화 라인에서 내부 기포나 도포량 불량을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느냐고 묻자 최 연구원은 “부착 후에 엑스레이 같은 비파괴 검사를 전수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대신 사전에 고객사와 물성 평가를 철저히 진행하고, 공정 변수(Parameter)를 검증해 불량 발생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신뢰성을 확보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한 “PP나 PE 등 난접착 소재에도 별도의 표면 처리(Primer) 없이 강력하게 붙고, IPX8 등급의 방수 성능을 자랑한다"며 “이형지(Liner)가 없어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솔루션"이라고 덧붙였다.


“1000만 번 충격 견디고, 필요할 땐 열린다…전기차 난제 해결"

자동차 사업부와 자동화 제품에 대해 소개하는 주형석 한국쓰리엠 상무. 사진=박규빈 기자

▲자동차 사업부와 자동화 제품에 대해 소개하는 주형석 한국쓰리엠 상무. 사진=박규빈 기자

주형석 한국쓰리엠 상무는 전기 자동차(EV) 시장을 겨냥한 두 가지 핵심 소재를 소개하며 '기능성 솔루션'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소개된 '배터리 팩 실런트 SZ1000'은 전기차 배터리의 '밀봉'과 '재개봉'이라는 모순된 과제를 해결한 제품이다.


주 상무는 “배터리 팩은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완벽히 밀봉(IPX8)되어야 하지만, 수리를 위해 필요할 때는 케이스를 파손하지 않고 열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제품은 배터리 팩을 완벽히 보호하면서도, AS가 필요할 때는 깔끔하게 떼어낼 수 있는 '재개봉' 기능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또한 배터리 화재 안전성을 위해 난연 등급(UL94 V-0)도 확보했다.


이어 소개된 '구조용 접착제 SA9820'은 용접을 대체하는 고강도 접착제다.


주 상무는 “차체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등 이종 소재 사용이 늘면서 용접이 불가능한 영역이 생겼다"며 “SA9820은 나사나 용접 없이도 알루미늄 기준 20MPa 이상의 전단 강도와 1000만 사이클 이상의 피로 수명을 자랑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약 80도의 저온 경화가 가능해, 고열에 약한 복합 소재 부품의 열변형을 최소화했다"고 강조했다.


디스펜서 같은 장비가 막히는 문제는 없느냐는 물음에 주 상무는 “우리는 일방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쓰라고 하지 않고, 설비 초기 개발 단계부터 로봇·디스펜싱 업체와 소재 물성을 조율하며 같이 만들어 간다"며 “ 막힘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을 제공하고 사전 예방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존 용접을 대체하는 구조용 접착제의 비중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초기 단계이나, 경량화와 고강도 체결을 위해 도입이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고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했다.


절대 안 떨어지는 테이프? '떼었다 붙였다 1000번'의 기술 체험

일반 폼 테이프와 VHB 테이프 비교(상단)와 큐비트론(Cubitron) 연마제 입자·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일반 폼 테이프와 VHB 테이프 비교(상단)와 큐비트론(Cubitron) 연마제 입자·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브리핑 이후 이어진 1층 투어에서는 현사래 연구원의 안내로 3M의 원천 기술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현 연구원은 일반 폼 테이프와 VHB 테이프의 비교 시연을 진행했다. 기자가 직접 시편을 양손으로 힘껏 잡아당겨 보았지만 VHB 테이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현 연구원은 “VHB는 아크릴 폼 전체가 점착 성분을 가지고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며 “나사나 못 없이 킥보드 프레임이나 냉장고 손잡이를 조립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했다.


현미경을 통해 본 큐비트론(Cubitron) 연마제 입자는 독특한 삼각형 모양이었다.


현 연구원은 “3M이 개발한 이 삼각형 세라믹 입자는 연마 시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깨지면서 스스로 날카로운 날을 다시 세우는 성질이 있다"며 “이 덕분에 작업 속도를 높이고 작업자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빛과 소리, 진동을 제어하다"…자동차 속 숨은 3M 기술

자동차 도어와 휠 가드 내부에 들어가는 흡음재 '신슐레이트(Thinsulate, 상단 좌측)'·휘발성 유기 화합물(VOC)를 억제하는 테이프(상단 중앙), '듀얼락

▲자동차 도어와 휠 가드 내부에 들어가는 흡음재 '신슐레이트(Thinsulate, 상단 좌측)'·휘발성 유기 화합물(VOC)를 억제하는 테이프(상단 중앙), '듀얼락(Dual Lock, 상단 우측)'. 야간에 앞 유리에 화면이 비치는 '고스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3M의 '라이트 컨트롤 필름' 적용 여부에 따른 차이.(중단부 빨간 원 안 비교). 피라미드 모양의 미세한 프리즘 구조물이 들어가 재귀 반사를 가능케 한 전기차용 파란색 번호판. 사진=박규빈 기자

현 연구원은 자동차 도어와 휠 가드 내부에 들어가는 하얀색 흡음재 '신슐레이트(Thinsulate)'를 가리키며 “단순한 솜처럼 보이지만 초극세사 섬유층이 소음 에너지를 포집해 열에너지로 바꿔 배출하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고 말했다.


이는 패딩 점퍼의 보온 소재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노면 소음을 잡는 핵심 소재로 쓰인다.


새 차를 탔을 때 나는 퀴퀴한 냄새의 원인인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를 억제하는 테이프 기술도 소개됐다. 현 연구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화되는 유해 물질을 줄여 탑승자의 건강을 보호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용 파란색 번호판도 있었다.


현 연구원은 “번호판 내부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미세한 프리즘 구조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며 “빛을 받으면 광원 방향으로 그대로 빛을 돌려보내는 '재귀 반사(Retro-reflection)' 성질 덕분에 일반 번호판보다 3배 이상 밝게 보여 야간 사고를 예방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자동차 대시보드 디스플레이가 대형화되면서 야간에 앞 유리에 화면이 비치는 '고스트 현상'이 문제로 떠올랐다.


현 연구원은 “3M의 '라이트 컨트롤 필름'은 마치 셔터처럼 빛의 방향을 제어해, 운전자에게는 선명한 화면을 보여주면서도 앞 유리창에는 빛이 반사되지 않게 막아준다"고 시연했다.


일명 '찍찍이(벨크로)'와 비슷해 보이지만 '듀얼락(Dual Lock)'의 원리는 달랐다.


현 연구원은 “암수가 구별되는 벨크로와 달리, 버섯 머리 모양의 동일한 구조물이 서로 맞물려 '탁' 소리와 함께 결합된다"며 “1000번 이상 떼었다 붙여도 결합력이 유지돼 수리가 필요한 자동차 내장재 고정 등에 쓰인다"고 말했다.


“고객과 함께 답을 찾는다"

이날 행사 내내 3M 관계자들이 강조한 것은 납품이 아닌 '협업'이었다.


김정민 이사는 “3M은 제품을 만들어놓고 일방적으로 사가라고 하는 회사가 아니다"라며 “고객사가 새로운 공정을 도입하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초기 단계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솔루션을 개발한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고객사와의 협업에 대해 묻자 주형석 상무는 “엄격한 요구 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며 “한국 고객사의 기준을 통과하면 글로벌 어디에서도 통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전했다.


'붙이기'를 넘어 초정밀 스펙과 자동화 기술, 그리고 고객과의 끈끈한 협업으로 무장한 3M. 이들의 '테이프'가 제조업의 생산 현장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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