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사고로 마비됐던 정부24와 주민등록시스템 등 국가 핵심 전산서비스의 일부가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고 후 첫 평일을 맞아 정부의 사무 처리와 민원 서비스 등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일선 현장에선 종이·수기로 업무가 진행되는 등 30년 전으로 행정이 후퇴된 모습을 연출했다. 완전 복구까지는 2주일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정부가 유사 상황 발생시 '3시간내 복구'를 장담했지만 이후 예산 삭감·백업 시설 설치 지연 등으로 공염불이 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이중망 설치 등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나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기준 화재로 멈췄던 정부 행정정보시스템 647개 중 62개가 복구됐다. 지난 26일 밤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공공 온라인 행정 서비스와 내부 시스템 등 647개가 한꺼번에 멈춘 지 사흘 만이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행정 서비스가 불통인 상태다.
복구된 서비스에는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정부24, 우체국 금융서비스, 주민등록시스템, 디지털원패스, 전자문서 진본확인시스템, 119 다매체 신고시스템(경찰 문자 제외), 국가화재정보시스템(부분 복구) 등이 포함됐다. 복지부의 UniMOHW(유니모) 포털, 환경부 온실가스 인벤토리, 관세청 빅데이터 포털 등도 다시 운영에 들어갔다. 정부24 재가동으로 등·초본 등 각종 서류의 온라인 발급이 가능해졌지만, 주민등록증 재발급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우편 서비스도 일부 정상화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날부터 소포 및 국제우편 접수, 인터넷·모바일 서비스, 우편물 배달과 종적 조회 등이 재개됐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행 국제 특급우편(EMS), 우체국 쇼핑, 기관 연계 전자우편 등 일부 업무는 당분간 중단된다.
행안부는 전체 복구까지 최소 2주 이상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일선 정부 부처 등 행정 현장에서는 혼선이 빚어졌다. 결재 서류를 손으로 작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 출장이나 근무 기록 등도 일일이 펜으로 기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들도 각종 민원이나 증명서 등을 디지털로 발급받지 못해 시·군·구청이나 주민센터로 직접 방문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 등의 화재 정밀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 당시 “국가 전산망은 다르다"며 3시간 이내 복구를 장담했던 것이 무색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중망 체제를 통해 한쪽이 가동이 중단됐을 경우 즉시 다른 쪽에서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때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카카오톡 불통 당시 데이터센터 내 배터리실과 전기설비 분리, 배터리 선반 간 간격 확보 같은 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플랫폼 사업자에도 기간통신사업자 수준의 재난 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같은 안전 대책은 예산 삭감 등으로 지연됐다.
2023년 11월에도 지방 행정 전산망 '새올'이 장비 불량으로 56시간 동안 멈춰 서면서 민원 서류 발급이 중단되자 2024년 1월 “1·2등급 정보시스템은 네트워크와 방화벽 등 모든 장비를 이중화해 무중단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었다. 쌍둥이 서버 기반의 실시간 재해복구(DR)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행안부는 관련 예산 편성을 보류했고, 2025년 예산안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백업 역할을 맡을 공주센터는 2012년부터 추진됐지만 예산 문제로 지연되다 올해 하반기에야 개소를 앞두고 있다.
여당에선 예산을 삭감한 전 정부와 행안부 측을 탓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2022년 카카오 먹통 사태 이후 전산망 이중화 예산 251억원이 2024년 예산안에 반영됐지만, 같은 해 8월 행안부가 235억원을 삭감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무산됐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빠른 복구와 함께 “이중 운영 체계를 비롯한 근본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또 “2023년 발생한 전산망 장애 이후에도 이중화 등 신속한 장애 복구 조치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