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철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서울 주택 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한 가운데, 주택 공급 주도권을 놓고 최근 정부와 서울시가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권한·책임 소재와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긴밀히 협의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공급 절벽'이 예상되는 서울에서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어 집값 급등 등 혼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시가 서울 주택 공급을 둘러 싸고 사전 협의없이 따로 놀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일 '9·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시도 별도의 공급 대책을 예고하면서 주택정책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먼저 정부가 단초를 제공했다. 정부는 9·7 부동산 대책에서 향후 5년간 매년 27만호씩 총 135만호를 수도권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중 33만4000호는 서울에 지을 예정이다. 도심 내 유휴부지·노후시설 재개발, 도심 정비 활성화 등을 통해서다.
구체적으로는 △강남3구 등 규제지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40%로 낮추고 △1주택자의 전세대출 한도를 수도권 2억원으로 제한했다. △도심공공복합사업의 일몰 폐지와 용적률 상향으로 5만호를 공급하고 △용적률 완화 적용을 저층주거지까지 확대하며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을 국토부로 이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전부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시와 밀접한 협의가 신속한 사업 추진의 관건이 되는 대책들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9·7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시와 전혀 사전 협의를 갖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난 7일 세종청사 브리핑에서 “현 서울시장이 야당 소속이라 당국과 소통에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며 “오 시장도 서울 주택 공급 활성화에 대해선 정부와 큰 틀에서 의견이 같다고 생각한다. 추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서울시와 협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시의 고유 권한이었던 토지거래허가제 지정 권한을 국토부 장관에게도 주는 방안에 대한 사전 논의도 없었다. 김 실장은 “서울 내 토허제 지정 문제는 지금처럼 국토부 장관에게 권한이 없을 때도 시와 협의해 온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향후 시와 협의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러자 오 시장과 시도 발끈하고 있다. 실제 오 시장은 전날 노원구 백사마을 재개발 현장을 찾아 “정부 대책만으로는 서울 집값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강남권 등 집값 급등 지역에 대한 획기적 공급 없이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특히 “시 차원의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는 정부 정책과의 엇박자를 부인했다. 시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보완하는 별도 구상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우성탁 시 주택정책팀장은 “발표 시기와 세부 내용은 아직 검토 단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시의 힘겨루기 양상이 공급 차질과 시장 혼란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공급책을 내는 건 가능하지만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면서 “중앙정부가 목표를 세워도 실제 사업을 집행하는 주체는 지자체다. 도시계획 권한을 가진 지방정부가 정비사업과 인허가를 주도하는 만큼, 중앙이 일방적으로 목표만 제시하면 현장에서 마찰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와 정부가 계속 엇박자를 낼 경우 공급 대책의 실행력이 떨어져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높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대책과 서울시 대책이 따로 나와도 당장 시장을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2030년까지 135만호 착공은 토지 보상과 인허가 절차를 고려하면 긴밀한 협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쉽지 않은 목표"라며 “도심공공복합사업도 주민 동의율과 강제수용 문제로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와 시가 주택 공급 활성화라는 대의보다는 정책 주도권을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번 공급 대책이 정치적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와 시가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나누고 긴밀한 협의를 통해 사업을 신속히 추진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