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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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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 꼬였던 현금 풀리니 밝아진 미래…‘리툴링’ 성공 신화 쓸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01 14:28

빚은 절반으로, 벌이는 일곱 배로…'체질 개선'

조선업, 내리막 정유화학 대신 그룹 실적 견인

NCF 4년 만에 9배 고성장, 미래 총알도 '탄탄'

HD현대중공업(위)·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HD현대중공업(위)·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HD현대그룹의 재무 체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영업력이 뚜렷하게 개선된 데다 현금흐름이 회복되면서 차입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그룹의 최대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조선 부문의 경우 사실상 무차입 경영 수준이다. 재무구조가 안정화된 가운데 최근 그룹 전반에서 진행 중인 '리툴링(retooling·사업구조 재편)' 전략이 성공신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1일 국내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HD현대그룹의 순차입금/EBITDA 비율(현금흐름배수)은 2020년 15.4배에서 지난 3월 말 현재 1배까지 낮아졌다.


순차입금/EBITDA는 기업이 창출하는 현금으로 차입금을 얼마나 빨리 갚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통상 2~3배면 안정적이라고 평가되고, 4배 이상이면 신용등급 하향 검토 요인으로 분류된다. HD현대그룹의 경우 2020년 당시에는 1년 간 벌어들인 현금으로 부채를 갚으려면 15년 이상 걸리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 1분기 말 현재 이 기간을 1년으로 대폭 줄인 것이다.


순차입금/EBITDA가 1배 수준으로 내려온 것은 이익 체력이 올라가고 현금 흐름이 개선되면서 차입 규모는 크게 줄어든 영향으로 분석된다.


HD현대그룹의 EBITDA는 2020년 6648억원에서 2024년 4조8983억원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지난 1분기 말 현재 기준으로 보면 1조7935억원으로 전년 동기 1조2481억원 대비 44% 증가했다. EBITDA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순차입금도 대폭 줄었다. HD현대그룹의 순차입금은 2022년 14조4000억원으로 최고치에 달했다. 정유 부문의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사업 관련 투자 부담과 HD현대인프라코어 연결 편입, 정유 부문의 투자 지출 등의 영향이다. 하지만 올해 3월 말 순차입금 규모는 7조원 수준으로 절반이 줄었다. 조선사 사업 부문의 실적 개선과 선수금 유입 등 이익 체력이 올라가면서 외부 차입 구조 개선으로 이어졌다.


선수금은 '착한 부채'로 불린다. 특히 조선업은 계약부터 납품까지 수년이 걸리는 산업인 만큼 선수금 자체가 수주 경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HD현대는 이 같은 자금 유입 덕분에 차입 의존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김현준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조선 부문의 실적 개선과 선수금 유입, 건설기계·전력기기 부문의 이익 창출 등을 통해 그룹 합산 순차입금이 크게 감소했다"며 “그룹 합산 재무부담이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유화학이 이끌고 조선이 '잭팟'…리툴링發 재무부담 '감내 수준'

미래 기업 체력을 엿볼 수 있는 지표도 우상향했다. 실제로 HD현대 그룹의 순영업현금흐름(NCF)은 2020년 7971억원에서 지난해 말 현재 7조5115억원으로 9배 이상 늘었다. 이 역시 조선 부문의 성장이 주요했다.


HD현대에서 조선 부문이 성장세로 전환된 것은 그룹 차원에서 중대한 지점이었다. 그룹 사업의 한 축인 정유화학이 기울기 시작했으나, 조선 부문이 이를 만회하는 것 이상 수준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정유화학 업황은 2022년 하반기부터 악화하기 시작한 후 2023년부터 그 본격화했다. 정제마진 약화와 중국발 공급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 등이 원인이었다.


HD현대 그룹도 2023년부터 정유화학 부문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정유화학과 건설장비 부문이 그룹 실적의 하방을 지지했다. 그러나 같은 해부터 업황 부진이 본격화하면서 해당 부문은 성장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실제 당시 그룹내 정유화학 계열사들의 총 NCF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정유화학의 NCF는 2022년 1조6227억원에서 2024년 1조3481억원으로 17% 감소했다.


반면 조선 부문의 NCF는 2020년 -900억원으로 유출상태였다. 하지만 2021년 8358억원으로 급증한 후 2022년 4622억원, 2023년 2조816억원, 2024년 4조2887억원 등 증가폭이 큰 상태다.


NCF는 본업(영업활동)에서 벌여 들여 실제로 손에 쥔 현금흐름이다. 장부상의 이익이 아닌 실제로 돈이 들어와야만 플러스로 나타날 수 있어 기업의 진짜 체력을 알 수 있는 지표다.


한국기업평가는 정유화학부문의 실적 저하에도 그룹의 수익성 개선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과 전력기기부문의 신규수주 확대 과정에서 선수금이 대거 유입돼 대규모 NCF를 창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그룹은 현재 세 가지 축으로 대규모 사업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조선 부문에서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는 강점을 지닌 분야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전략이자 나아가 방산 분야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 대응을 병행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건설기계 부문에서는 현대건설기계와 인프라코어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역량을 재편하고 있다. 이런 작업이 단기적으로 재무안정성이 낮아질 수 있으나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정유화학 부문에서는 현대케미칼과 현대오일뱅크의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김종훈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건설장비부문의 합병 과정에서의 통합 비용, 석유화학사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비용 발생이 재무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오랜 기간 그룹의 현금흐름을 저해해왔던 조선부문이 가파른 실적 개선 추이를 보이며 현금창출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 그룹 전반의 재무적 부담은 완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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