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수출 한계 넘자…‘공유성장’이 미래 무역 모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8.07 11:02

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올해 들어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는 단순한 외교 갈등을 넘어 세계 무역 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이 당연시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수출의 40% 이상이 미국과 중국에 집중되어 있어, 대외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수출 시장의 다변화는 오래된 과제지만, 이제는 그 방식 자체를 재설계할 시점이다.


그동안 한국의 개발도상국 대상 경제협력은 원조, 단순 무역, 또는 OEM 중심의 투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단순한 거래 관계를 넘어 '협력형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해졌다.


변화의 출발점은 기존 무역의 장벽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관세, 물류비, 가격경쟁력 등은 여전히 주요 진입장벽이며, 중남미 시장은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 더욱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장벽은 '함께 만드는 방식'으로 넘을 수 있다. 공동 생산, 공동 기술개발, 공동 브랜드 전략이 바로 그 해법이다.


지난 6월 말, 에콰도르 수도 키토시의 고위 공무원 연수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숭실대학교, 서울산업진흥원(SBA), 이노비즈협회,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등 다양한 창업 및 혁신 기관을 방문해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고, 다자간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창업 협력과 기술 역량 공유, 공동사업 추진을 위한 발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와 키토시 산하 혁신기관 콩키토(CONQUITO)가 체결한 협약은 양국 스타트업 간의 1:1 기술 매칭, 공동 연구개발(R&D),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등 다층적인 협력 모델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 수출을 넘어, 산업 기반을 함께 설계하고 성장하는 '공유성장형 파트너십'의 구체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노비즈협회 역시 기술 기반 중소기업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 시장개척에 그치지 않고, 기술이전, 혁신 교육, 스마트팩토리 도입 등을 포함한 '역량 전이(capacity transfer)' 중심의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양국 기업은 '시장 + 기술'이라는 두 가지 자산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숭실대학교가 주관한 키토시 고위급 연수 또한 같은 흐름에 있다. 창업 정책, 제도, 지원 시스템 등 비가시적 인프라의 공유는 단기적인 수익과는 직결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신뢰와 상호 이해 형성의 핵심 요소가 된다.


이제는 선진국이 일방적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시대를 넘어, 서로 성장하는 상호협력 모델을 본격적으로 설계할 때다. 한국은 기술과 시스템을 제공하고, 개발도상국은 시장과 인재를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구조다. 이는 무역 장벽을 본질적으로 낮추는 전략이자, 단기적 실적이 아닌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중남미는 이러한 '공유성장' 접근이 특히 효과적인 지역이다. 스마트시티 인프라, 적정 농업기술, 친환경 제조, 청년 창업지원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중남미 현지의 수요와 잘 맞아떨어진다. 기술을 단순히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와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파트너십이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제 전통적 수출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현지 파트너와 협력하고, 생산과 수익을 '함께 만드는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공동 프로젝트형 ODA, 세이프가드 없는 기술이전 모델, 스타트업 간 교차 연수 프로그램 등의 실질적 제도가 요구된다.


이제는 '무엇을 팔 것인가'보다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키토시와의 협력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한국이 개발도상국과 손잡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새 질서'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먼저 포착한 기업만이 미래의 무역 장벽을 뛰어넘고,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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