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베이어를 지나가는 제품을 현대모비스 어쿠스틱 AI 검사기가 판별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미국발 관세폭탄, 미래차 전환, 만성적 자금난이라는 '3중고'에 직면했다. 급격한 국내외 경영변화에 대응력이 취약한 영세 부품업체는 아예 문을 닫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28일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의 '자동차부품산업 정책과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국내 자동차부품의 대미 수출액은 전년동월 대비 5.8% 감소한 5억 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올해 1~5월 누적 수출액도 전년동기보다 2.8% 줄어든 33억 9000만 달러에 그쳤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과 함께 주요 무역거래국을 대상으로 밀어부치고 있는 25% 관세 부과로 한국도 올들어 대미 수출이 감소했고, 특히 완성차 수출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자동차부품 수요 축소 및 대미수출까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25% 관세에 '존폐 위기'까지
이 같은 미국 수출 감소세는 대미 의존도가 높은 국내 부품사들에게 더욱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82억 2000만 달러(약 12조원)로 전체 자동차 부품 수출액의 36.5%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자동차 부품사들이 대부분 영세기업이어서 대내외 수급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자동차부품기업의 98% 이상이 매출 100억원 미만으로 영세성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자본력과 불안정한 재무 구조로 인해 관세 부과 및 수출 감소와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이 현저히 낮다.
현대자동차와 그룹 산하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은 수출 감소세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지만 영세 기업들은 이를 당해낼 수가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 4월엔 경남 김해 소재의 한 자동차 엔진 부품 제조업체는 당좌거래가 정지되는 등 자금난으로 존폐 위기에 몰린 사례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완성차 업체에 볼트를 납품하는 A기업 관계자는 “당장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여력도 없고 관세에 대한 여파가 크기 때문에 현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부품사들의 문제는 대미관세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산업 패러다임이 전기차·자율주행차 중심으로 급변하면서 내연기관 부품업체의 40% 이상이 존립 위기에 놓였다.
미래차 대응을 위한 기술 연구개발(R&D), 설비투자, 기술인력 확보가 절실하지만, 중소·중견 부품기업은 자금·정보·인력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미래차부품산업특별법 제정 등 제도적 지원을 내놓았지만 예산이 미반영돼 실질적 정책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품업계 현장에서는 “정책은 있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자금은 없다"며 정부 정책에 강한 불신감을 토로하고 있을 정도이다.
영세기업의 만성적인 '자금난'도 여전해
이같은 수출물량 감소와 사업 영세성, 정부 지원 지연은 곧장 세번째 고충인 '자금난'으로 이어진다.
매출 100억원이 넘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미래차 전환 투자자금은 너무 큰 금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국내 주요 부품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자금부담 증가(28.2%)'가 꼽혔다.
자금난뿐 아니라 R&D, 생산현장, 경영기획 등 전 분야에서 인력난도 심화되고 있다.
정책자금의 활용이 일부 신용등급 상위 기업에만 집중되고, 대다수 중소·중견기업은 기존 대출 한도, 담보 요구, 만기 연장 거절 등으로 실질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자동차부품업계에선 “중소기업의 신규 여신 및 정책자금 이용 장벽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제42회 자동차모빌리티산업발전포럼에서도 주제발표를 맡은 김영훈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실장은 고율관세, 기술전환, 인력난 등 복합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부품업계의 생존과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김 실장은 “미래차 전환을 위한 중소·중견 부품기업의 투자 역량과 인력 확보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장기 저리 금융, R&D 투자 확대, 고용보조금 신설 등 맞춤형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화 투자 확대와 제도적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며 “북미 진출기업에 대한 금융·보증지원 확대, KOTRA 연계 현지 애로 해소 창구 마련 등 대외 리스크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