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이스라엘과 이란의 공중전으로 인해 양국에서 희생자와 피난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 6월 15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유력 이란인들의 시국 성명이 실렸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르게스 모하마디와 시린 에바디,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와 모하마드 라술로프, 여성 인권운동가, 법학자, 정권의 탄압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까지. 이란의 양심이라 할 이들이 함께 서명했다.
“두 나라(이란, 이스라엘)에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 중단을 요청한다. 우리는 이란의 영토 보전과 국민이 진정한 주권 아래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천명한다. 하지만 지금 이슬람 공화국이 추진 중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이스라엘 정권과의 파괴적인 전쟁은 이란 국민의 이익에도, 인류 전체의 이익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 갈등은 단지 사회 기반시설을 파괴하고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인류 문명의 토대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협이다."그들은 자국 이란 정권의 핵무기 야망을 정면으로 부정했고, 민간인 살상과 기반시설 파괴에 반대하며, 평화적 이행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 양국 모두에게, 인류 문명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무차별 폭력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한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스라엘에는 왜 이런 성명이 나오지 않는가. 이스라엘에도 반전(反戰) 지식인과 시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세계 언론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것은 단순한 편집의 문제만은 아니다.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누구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국제 정치의 '선택된 윤리'가 여전히 작동 중이라는 뜻이다. 2023년 11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을 이유로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에 대해 전범 혐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다.
ICC에는 군대가 없다. 체포는, 네타냐후가 방문하는 국가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은 그 어떤 협조도 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전쟁을 지휘하며 민간인을 죽음으로 내몬다. 국제법은 있지만, 정의는 없다. 힘의 논리 앞에서 법은 침묵한다. 지난 6월 11일, 그는 부패 혐의로 이스라엘 법정에 섰다. 검찰의 추궁은 날카로웠고, 일각에선 실각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다시, 전쟁을 연장했다.
팔레스타인들을 상대로 민족학살인 제노사이드를 자행해온 그는 이번에는 이란 핵·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며 전면전을 확대하며 개선장군처럼 행동하고 있다. 미국 내 일부 유대인 지지층의 함께 환호와 함께 지지율도 상승하는 모양새다. 그는 자신이 직면한 정치 위기를 국가 안보 위협을 강조하며. 특히 이란 핵 위협과의 대립 구도를 통해 국내 정치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전쟁은 유용한 도구다. 그것은 독재자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참여연대도 네타냐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전범으로 고발한 적이 있으나, 그후 수사진행은 오리무중이다. 참여연대는 네타냐후가 저지른 가자지구 폭격, 인도적 봉쇄, 민간인 학살 등을 명백한 국제인도법 위반이라 보았다.한국 시민사회는 침묵하지 않았다. 국제 정의의 실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태도 속에서, 그들은 책임을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국제기구들은 침묵했다. 유엔은 결의안을 내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ICC는 스스로를 집행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재판소로 전락했다.
서방 정치권은 네타냐후의 방패막이다. 정의는 누구에게만 작동하고, 누구에겐 멈추는가. 국제법은 왜 이렇게도 비겁하고 무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