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어떤 일이든 일어난 시점에 따라 감흥이 다르다. 야구 경기에서 홈런도 그렇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패하기 일보 직전인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터트린 역전 홈런은 다른 홈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기쁨을 준다.
지금 우리는 9회 말 역전 홈런을 기대한다. '사용후핵연료 특별법' 말이다. 21대 국회에서 4명의 여야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등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는 뜨거웠지만, 원전 정책에 대한 여야의 입장 차로 법안이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까지 한 달가량 남았다. 여야가 합심한다면, 법안 통과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나라 에너지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한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4%며, 에너지 수입금액은 미국 달러로 2164억 달러다. 이는 2022년 우리나라 총수입액의 29.6%에 해당하며, 2021년 1359억 달러 대비 57%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최근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에서의 분쟁이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면서, 에너지 가격을 들썩이고 있다. 자칫 중동과 우리나라를 잇는 핵심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제품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물가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원자력은 준국산 에너지로서 우리 경제와 산업발전을 위한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23 에너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원자력을 국내 생산으로 포함했을 때, 2022년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4%에서 82.0%로, 12.4%포인트 줄어든다. 그 이전도 비슷하다. 이처럼 원자력은 에너지 수입액을 절감해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한편, 절감된 외화를 국내 다른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 주었다. 또 원자력은 고품질 전기를 값싸게 공급해 왔다. 2022년 발전원별 정산단가는 원자력 52원, 석탄 158원, 액화천연가스(LNG) 239원, 신재생 271원이다. 이처럼 원자력은 우리 경제와 산업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반이다.
앞으로 원자력 이용 확대는 불가피하다. 우리나라가 육성하는 인공지능, 반도체 등 미래 산업은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데 심화하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최대한 줄인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생애 온실가스 배출계수(g/kWh)는 석탄 820, LNG 490, 태양광 27, 수력 24, 원자력 12, 풍력 11 순이다. 이처럼 원자력은 깨끗한 전기를 365일 24시간 공급할 수 있어,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원자력 이용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사용후핵연료다. 우리나라는 5개 본부에서 25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원전을 가동하면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이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다. 원전 가동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이 늘어나며, 저장시설의 저장 공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저장시설이 가득 차면, 해당 원전은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한빛 원전, 한울 원전, 고리 원전의 저장시설이 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2030년부터 3년 이내에 19.3기가와트(GW)의 전력 설비가 사라지는 것과 진배없다. 이런 규모의 신규 발전소는 당장 건설을 시작해도 그때까지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전의 순차적 가동정지는 결국 대규모 전력부족 사태를 초래하여, 국민과 기업은 전기 없는 고통의 시간을 수시로 체험하고, 국가 경제는 괴멸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은 예견된 재앙의 도래를 막기 위한 보루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원전 정지를 막기 위해서는 각 원전 부지에 저장시설을 시급히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원전 주변 지역주민이 그 저장시설이 나중에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시설로 둔갑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저장시설 확충에 반대하고 있다. 지역주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영구 처분시설을 건설해 사용후핵연료를 그리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확실한 보증이 필요하다. 특별법이 그 보증수단이다. 5개 원전 본부에 저장돼 있는 1만 8600톤을 포함해 앞으로 발생할 사용후핵연료를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영구 처분시설은 꼭 필요하다.
남은 한 달, 21대 국회의 마지막 기회다. 임기 내 빈약한 입법 실적으로 질타를 받은 21대 국회가 사용후핵연료 문제와 전력부족 우려를 저 멀리 날려버릴 수 있게, '특별법 통과'라는 역전 홈런을 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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