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신데렐라 신드롬은 보잘 것 없는 여자가 왕자와의 결혼으로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이 되는 서양 전래동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통 별볼 일 없던 사람이 벼락출세를 하는 현상을 말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정치권에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대표적인 신데렐라는 누가 뭐라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대통령은 꿈도 꾸지 않았던 그가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어 정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검찰총장의 자리에서 그를 몰아내려 안간힘을 썼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 박범계 등 더불어민주당 인사들 덕분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 똑같은 길을 한동훈이 걷고 있다. 시작은 채널A 이동재 기자 사건이었다. 지난 2020년 3월, 당시 채널A 이동재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과 공모해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MBC의 보도로 촉발된 사건에서 이 기자는 해고당했고, 한동훈은 좌천됐다. 이후 이 기자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4000만원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이 됐고, 국회에서 한 장관을 공격하던 김의겸, 박범계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오히려 그를 빛내주는 조연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그런 그가 내년 4월 총선에 나설 것이란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은 총선을 불과 5개월 여 앞둔 시점에도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고, 인요한 혁신위의 활동에도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처럼회, 개딸들의 반민주적 행태에도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에 압도당하는 국민의힘은 한동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총선에서 가장 큰 이익일까를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김기현 지도부로는 어려우니 한동훈 비대위를 구성해 총선을 치르자고 주장한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있는 마포갑에 공천하자는 얘기도 들리고, 정치 1번지 종로에 공천해 총선의 대표적 지역구로서의 상징성을 부각시키자는 소리도 나온다. 비례대표로 공천하고 선대위원장을 맡기자는 의견도 있고, 이준석 신당과의 경쟁을 예상해 한동훈 카드를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생각은 다양하고 제각각 일리가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두가 오히려 국민의힘을 약화시키고 한동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자충수’로 보인다.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이나 선대위원장으로 활용하면 여당인 국민의힘이 오죽 못났으면 장관 한 사람에 의존해 선거를 치르려 하느냐는 비난을 들을 것이다. 마포갑 공천은 한동훈을 정청래와 동급으로 격하시키는 것에 불과하고, 종로의 상징성도 사라진 지 오래다. 비례대표 출마는 당선권에 배치하면 국회에 진출시키려는 용산의 뜻이라는 오해를, 뒷번호에 배치하면 당선 여부의 불투명성으로 한동훈 카드를 살리기 어렵다. 이래저래 한동훈이라는 신데렐라를 활용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렵다.
가장 적합한 시나리오는 한동훈을 인천 계양에 공천해 이재명 대표와 맞붙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전략공천이 아니라 공개경쟁을 통해 투명하게 공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인천 계양은 민주당이 크게 우세한 지역이어서 ‘용산’에서 한동훈을 봐준다거나 그를 지원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다. 이재명과의 맞대결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정면으로 공격하면서 동시에 한동훈을 이 대표의 맞수로 만든다. 만일 이 대표가 비례로 빠진다면, 한동훈이 무서워 비례대표를 선택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니 그도 나쁘지 않다. 반면 정면 대결을 선택하면 인천 계양은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선거구가 될 것이고, 여론의 중심에 설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동훈은 국민의힘 총선전략의 중심이 될 것이니 선대위원장이나 비대위원장보다 선거에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한동훈에게도 이 대표와의 승부는 나쁘지 않다. 이긴다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누른 보수의 상징이 될 것이고, 진다고 해도 토론 과정이 전국적으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한동훈이 22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정치생명에 큰 부담이 될 일도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그가 할 일은 차고 넘친다.
국민의힘은 지금 한동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보다 총선을 통해 나라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진심으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기성세대의 과도한 욕심에 자신의 몫을 빼앗긴 청년세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몫을 반드시 돌려주겠다는 강한 의지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금까지의 행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대통령 주변 인물들과 다선의원들도 알량한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의종군해야 한다. 국민은 혁신된 새로운 보수 여당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