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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핵심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실손보험청구 간소화’의 실제 시행까지는 여러 걸림돌을 넘어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 |
[에너지경제신문=박경현 기자] 의료기관에서 직접 보험사로 자료를 보내 보험금을 받게되는 ‘실손보험청구 간소화’가 추진 14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러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실제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의 반대나 전송대행기관 조율 등 여러 걸림돌을 넘어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핵심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가 ‘국감 시즌’을 앞두고 있어 이번에도 무산될 경우 또 다시 논의가 미뤄질 위기였으나, 여야가 민생법안 처리에 뜻을 모으면서 국회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게 됐다.
가입자 4000만명에 육박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시행이 14년만에 가시화되면서 연평균 약 2760억원에 달하는 실손보험금이 보험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될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1년과 지난해 미청구 실손보험금은 각각 2559억원과 2512억원에 달한다.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997만명으로 국민 대다수가 보험 청구 간소화 혜택을 입게될 전망이다.
이르면 내년 10월부터는 이같은 내용이 현실화되면서 보험금 청구 방식이 현재보다 간편해진다. 지금까지는 실손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보험소비자가 병원과 약국 등 의료기관에서 의료비 증명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청구해야 했지만, 개정안 시행 시 실손보험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코자 하는 진료건을 선택한 뒤 의료기관에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직접 보험사에 의료비 등 관련 서류를 전자적 방식으로 전송하게 된다. 업계는 실손청구 간소화 전면 도입시기를 의원급 병원이 전산화 시스템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2025년께로 보고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 통과를 놓고 의료계가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어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직후 ‘반대 성명’을 내며 위헌 소송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개인의 민감한 정보인 의료정보를 보험사가 수집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추후 환자의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보험가입 거절 등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협회는 "오직 보험사의 이익만을 위해 법안 심의를 강행한 국회와 정부의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다시 한번 끝없는 분노를 표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개정안이 의료법에 상충하는지 별도 법률검토를 시행해 위헌 소송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보 전송대행기관(중개기관) 관련 문제와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점 도출도 상당 기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중개기관은 보험개발원이다. 그러나 의료계 등은 앞서 중개기관 후보로 떠오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이어 보험개발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의료계 등은 다른 기관을 정보 전송 대행기관으로 정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전자적 전송방식을 위한 인프라 지원, 정보전송 방식, 환자 민원 방지에 대한 대안책 등을 내놓으라는 주장 등을 펼치고 있다. 협회는 "요구 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모든 보건의약 종사자들이 보험사에 정보를 전송하지 않는 최악의 보이콧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도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보건의료노조·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은 지난달 1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명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민간 보험사의 환자정보 약탈법이"며 "보험업법 개정안 처리 중단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실손보험으로 지난해에만 1조5000억여원의 손실을 봤다는 민영보험사들이 전자적 청구 간소화로 보험금을 더 지급해 주겠다는 것은 ‘동그란 네모’처럼 모순 그 자체"라며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의 국회 통과는 민영보험사들의 ‘국민건강보험 대체’라는 궁극적 목표, 즉 ‘의료 민영화’로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실제 시행 시기까지 의료계와 보험업계 등의 첨예한 충돌 등이 예상된다. 특히 중개기관 결정에서 정부와 의료계, 보험업계 등으로 구성된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선정과 시행을 위해 논의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의료계는 관 성격을 지닌 심평원이나 보험료율을 정하는 보험개발원이 중개기관이 되는 것은 불가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료계가 진료정보 열람·제공과 관련해 의료법상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와 국회 등은 적합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 업무 지침’에 따르면 다른 법 규정에서 의료법 21조 적용을 배제하는 경우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중개기관과 관련한 우려에는 이미 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에 청구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돼 있으나 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은 추세적으로 보험소비자들의 편의와 권익을 위해 진행돼 왔다"며 "복잡한 병원비 청구절차가 간소화될 경우 노년층이나 취약계층의 실손보험금 청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earl@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