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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광양 LNG 기지 전경. |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7월 대표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촉발한 이번 갈등은 국제 에너지시장 환경 변화에 민간사업자들이 탄력적으로 대응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투자 및 공급선 다변화를 통한 국가 수급 안정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요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자급률 5%에 불과한 에너지 빈국에서 이러한 조치는 LNG 수급불안 강화, 한국가스공사의 구매력 약화, 가스 수급체계 변동에 따른 가스요금 인상 등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비판이 거세다.
◇ 가스공사, 에너지 안보 기여·후방산업 발전 주도 재평가 필요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LNG의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중 자가소비용 직수입 물량은 2013년 기준 국가 전체 도입물량의 3.5%에 불과했으나, 2020년 기준 22.1%를 차지하며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8월 기준 총 18개 업체가 천연가스 자가소비용 직수입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SK, GS, 포스코 계열사가 직수입 물량의 73.9% 차지한다.
권명호 의원이 지난 7월 대표 발의한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에서는 현재 시행령에서 예외적인 사유에만 허용하고 있는 가스도매사업자에 대한 판매·교환 및 다른 자가소비용직수입자 등과의 교환을 원칙적으로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가소비용직수입자 간의 가스 ‘교환’ 외에 자가소비용직수입자 간의 ‘판매’도 허용하라는 의미다.
가스공사의 독점구조가 약 40년 이상 유지돼 가스산업 효율화 및 가스시장 발전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은 가스공사의 역할을 간과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동안 가스공사는 공공기관으로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는 시기에 미수금 제도 등을 통해 가격변동성을 흡수하는 등 국내 가스가격과 서민생활 안정에 기여해 왔다.
국가 천연가스 수급을 책임짐으로써 국가 에너지 안보에 기여하고 있으며, 가스산업 뿐만 아니라 조선 등 전후방 산업 발전을 주도해 오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민간사업자들이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 개정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지나친 혜택’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천연가스직수입자는 △천연가스 수입 방식 및 등록요건 완화 △비축의무 면제 △배관시설 공동이용 등 각종 의무를 면제 받아 이미 우호적 사업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직수입자간 LNG 교환, 가스공사와의 판매·교환 등의 방법으로 재고관리 또한 충분히 가능하다는 평가다.
직수입자 간의 물량 판매 허용을 통한 직수입 활성화 시 관련 산업 육성 기회에 대한 상실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스공사는 그동안 LNG 구매 경쟁력을 활용해 도입 연계 사업 지분 참여, 해운산업 견인 등 전후방 산업을 육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
가스공사의 장기도입 계약 중 공사가 지분 참여한 계약만 5건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가스공사는 국내 조선사, 해운업 육성을 위해 총 27척의 FOB(Free On Board: 수출자가 운송비용과 운송시 발생하는 모든 리스크를 부담하는 방식) 국적선을 발주한 바 있다. 이는 2016~2020년 평균 세계 LNG 선박 발주량의 92.1%에 해당한다.
하지만 직수입사업자간 물량 판매 허용 등을 통한 LNG 직수입 확대 시 개별 사업자의 구매물량이 적어 국적선 발주 자체는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유관사업 발전 및 새로운 사업기회 확보 또한 매우 어려워지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직수입 확대에 따른 도입력 분산은 시대에 역행…일본·EU. 물량 합쳐 대규모 공동 구매 추세
국가 천연가스 수급을 가스공사 1개 기업에서 책임지고 담당하는 현 상황에 대해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가스공사는 전국 천연가스 공급을 위해 대규모 설비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원료비에 이윤을 붙이지 않고 원가로 공급함으로써 안정적인 수급을 책임져 왔다.
반면 비축의무가 없는 직수입자는 러·우 전쟁 등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수익 극대화를 위해 도입물량을 축소했으며, 이로 인해 수급위기와 가스요금 인상 등 국민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수급의무가 없는 직수입자는 필요량의 50% 수준을 장기물량으로 확보한 후, 나머지 물량은 자사 이익 확대를 위해 LNG 시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현물 구입해 국가 수급 불안이 가중되고 요금이 인상될 우려가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복수의 LNG 도입사업자가 시장에서 해외투자 및 공급선 다변화를 통해 국가 LNG 수급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 LNG시장은 완전경쟁이 이루어지는 석유시장과는 달리, 과점화가 일반적인 시장상황이다.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는 LNG 구매력(Buying power)이 있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타 국가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구매력 통합을 통해 수급안정과 LNG 구매가격 인하를 도모하고 있다는 게 가스공사 측의 설명이다.
실제 2015년 일본 도쿄전력과 추부전력은 연간 2500만 톤 이상 구매력 제고를 위해 제라(JERA)를 설립, 가스공사와 유사한 수준의 LNG 구매력을 확보한 바 있다.
EU는 지난해부터 에너지 안보위기 속 공동 LNG 도입 추진하고 있다.
결국 일본, 중국, EU 등의 국가들과 비교해 구매물량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는 국가수급 안정을 위해 필요 LNG 물량을 통합 구매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에너지 업계 한 전문가는 "대량의 LNG 구매력을 활용할 수 있는 가스공사의 LNG 구매가격은 직수입자 대비 경쟁력 우위에 있으며, 보다 경제적으로 LNG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천연가스 도매시장 개방 이어져…찬반 의견 종합평가 필요
직수입자 간 LNG 판매 허용은 향후 발전사·산업체의 직수입을 촉진시켜 발전용·산업용 부문 천연가스 도매시장의 개방으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짙다.
이에 따라 △구매력 분산으로 인한 도입협상력 저하 △공급원가 상승 및 공적 자산 유휴화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력 약화 및 도입비용 상승 △대·중소기업, 수도권·지방권의 불균형 심화와 같은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직수입자 출현으로 발전용·산업용 수요가 이탈할 경우, 가스공사의 구매력이 분산돼 저렴한 가격에 LNG를 도입할 수 있는 기회 상실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국내 천연가스 수요는 동고하저 패턴으로, 발전용·산업용 수요가 이탈하면 동하절기 수요격차 확대로 LNG도입 협상력이 저하돼 도입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LNG시장 판매자는 수요자가 연중 균등한 물량으로 도입하기를 원하며, 수요자가 동절기에 집중해 도입하고자 할 경우 도입협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LNG 직수입자가 양질의 수요처를 대상으로 별도 배관 건설을 통해 신규 배관사업자로 나설 확률도 높다.
전문가들은 이 경우 가스공사 시설 이용률 하락으로 이어져 단위당 공급비용이 상승, 민수용 가스 요금 인상과 서비스 질의 하락을 촉진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LNG 직수입자의 별도 배관 설치는 불필요한 인프라 투자로 인한 국가 재원의 낭비이며, 에너지 전환에 따라 좌초자산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수입 확대에 따라 에너지 수급 위기에 대한 대응력 약화 및 도입비용 상승 가능성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직수입자의 선택적 LNG 도입 시 추가 도입 비용 발생 및 수급관리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기저발전 및 신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에 따라 LNG 발전수요는 계획 대비 오차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직수입자의 선택적 도입은 전력 및 천연가스 수급계획의 예측성과 위기대응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더해 기업 간, 지역 간 불균형 심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LNG 직수입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발전용 및 산업용 대규모 사업자에게 허용된 특혜로, 절대 다수의 중소기업에 불공정한 제도로 출발했다"며 "결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산업용 물량이 크게 차지하는 지방 도시가스사는 물량이탈로 재정 어려움이 발생하며, 민수용 소비자에게 안정적인 가스공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이상헌 국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자가소비용직수입자의 물량 처분 제한을 완화할 지 여부는 천연가스의 국가적 수급상황 악화 우려, 우회 직수입을 합법화하게 되는 부작용과 자가소비용직수입자의 수급 효율성 제고 필요성, LNG 도입단가 인하 효과 등 정부 및 관련 협회 등의 여러 찬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youn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