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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폼테크의 ‘케이슨 제작 리프팅 유압장치’ 목업(실사용테스트) 테스트 실시 모습. 우진폼테크 제공 |
[에너지경제신문 김준현 기자] 동반성장과 공정거래 준수에 앞장서 온 현대건설이 중소기업 기술탈취 이슈로 ‘최우수 명예기업’ 명성이 퇴색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울타리 역할을 하는 중소벤처기업부 소속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이하 중재위)는 현대건설에 대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탈취했다고 인정하고, 현대건설이 해당 기술을 쓰지 못하게 할 것과, 기술탈취와 관련 보상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조정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 중재위, 현대건설 기술탈취 ‘인정’
3일 에너지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중재위 조정안에는 현대건설과 중소기업 우진폼테크의 공동협약 기술이라고 지칭한 ‘케이슨 시공 및 이송에 관한 유압장비’를 △우진폼테크만이 사용하고 △현대건설은 실시료를 청구하지 않으며 △공동연구협약 해지 및 1억원을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케이슨은 항만이나 부두 등 안벽과 교량, 방파제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항만 조성 핵심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케이슨 한 덩어리가 약 10층 높이 아파트 한 동과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는 주로 공사현장에서 직접 제작해 바다로 바로 옮기는 방식으로 시공이 이뤄진다.
이같은 케이슨 제작에 가장 중요한 공정 역할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유압장비’를 우진폼테크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일명 ‘핀앤홀’ 방식이라고 한다. 앞서 이전에는 스웨덴 회사 비깅우데만이 유압장비 제공을 독점했기에 국내 건설사들은 막대한 기술 로열티를 지불하고 해당기술을 사용해 왔다.
이에 현대건설은 지난 2018년 2월 우진폼테크에 해외 독점 분야를 국산화하고자 우진폼테크의 핀앤홀 방식의 유압장비에 대한 현장 적용 시운전(목업 테스트) 협약을 제안했고, ‘공동연구협약’을 맺어 시운전을 진행한 결과 지난 2020년 11월 현장 적용성까지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건설은 우진폼테크에게 독점적인 용역계약을 주겠다는 것을 빌미로 이 중소기업 약 18건의 자료를 무상으로 가져갔다는 것이 피해업체의 주장이다. 또 상부에 보고할 실적이 필요하다면서 핀앤홀 방식에 대한 기술은 물론, 공동연구협약과 무관하게 별도로 보유하던 기술까지 공동특허출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기술자료만 가져간 뒤 우진폼테크에게 용역계약을 주기로 약정한 인천 신항만 등 사업수주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었다고 피해업체는 주장하고 있다.
또 현대건설은 공동으로 연구협약을 진행했으니 자신들도 50% 권리가 있어 해당기술을 사용하겠다는 주장과 함께, 우진폼테크가 이 기술로 영업할 경우 매출의 10%를 기술료로 달라는 터무니없는 요구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중재위 조정안에 대해 법원 판결문과 같은 민사적인 판결의 실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어느정도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3월 충북경찰청 산업기술보호수사대는 산업기술보호법(산업기술의 유출 및 침해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수사에도 들어간 상태다.
◇ 尹정부, 기술탈취 중범죄 규정
최근 이같은 기술탈취 문제는 중소기업 혁신 의지를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3년간 특허 출원 경험이 있는 중소기업 300개 사를 대상으로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정책 수요조사’를 실시한 결과,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 10.7%는 기술탈취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대기업의 기술탈취 문제를 중범죄로 규정하면서 단호하게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바 있다. ‘식물위원회’로 지목됐던 중재위가 최근 폐지 위기에서 벗어나 존치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해 현재 우진폼테크는 중재위가 현대건설이 이 기술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한 것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다만 1억원이라는 보상금은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영석 우진폼테크 대표는 "연구개발비 27억원, 거래처 단절 영업손실 비용 96억원이 발생한 상태다"라며 "현대건설의 기술탈취가 인정됐는데 기준 근거도 없는 1억원의 위로금은 중소기업이 흘린 고통의 눈물 값도 되지 않는다"며 합리적인 보상을 토로했다.
이 사건 담당변호사인 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현재 우진폼테크는 이 사건 공동연구협약에 따른 손해로 인해 기업회생절차에서 갖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며 "현대건설이 해당 중소기업의 손해에 대해 적극 보전한다면, 오히려 중소기업기술 적극 지원사례로 비춰질 수 있으므로 국가와 국민, 현대건설의 협력사들에게도 긍정적 이미지를 주는 것에 기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건설은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2022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5년 연속 최우수 등급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공정거래, 상생협력 지원, 협력회사 체감도 등 전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최우수 명예기업’으로 선정된 만큼, 중소기업에 대한 책임감이 더 막중하게 요구될 수밖에 없다.
중재위 조정안에 대한 다른 시각도 있다. 중소업계와 건설신기술을 공동연구하는 업계 관계자는 "중재위 조정안은 제시된 보상안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며 "얼마의 보상금액을 요구했는지는 모르지만 1억원으로 조정됐다는 의미는 ‘위로금’ 차원이라고 볼 수 있어 잘잘못을 따지기 애매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기부 기술분쟁 조정위 조정부에서 1억원 지급을 조정안으로 제시한 것으로 기술 탈취의 여부를 결정지은 것이 아니다"면서 "조정위 조정안을 존중하며 향후 조정 과정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신청인의 기술침해 주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현대건설에게 공동연구를 수행한 파트너로서 위로 또는 화해를 목적으로 지급을 제안하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kjh123@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