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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원자재난 장기화…韓 주력산업이 멍든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3.15 15:42

반도체·자동차·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품목 '비용인상' 압박



철강·조선·가전·배터리 등 매출·수주 늘어도 되레 비용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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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주요 원자재 가격이 무섭게 치솟으면서 ‘자원 빈국’ 한국의 주력 산업 현장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배터리, 석유화학 등 주요 수출품목들의 우려가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주요 자원 수출국들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는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15일 산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관세청 등 정부 기관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우리 기업들의 피로감은 점점 쌓여가고 있다. 지난달 원유·가스·석탄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은 124억 8000만달러로 전년 동월(81억 4000만달러) 대비 53% 늘었다.

국제유가는 최근들어 급등락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장중 한때 배럴당 130달러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다 전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4월 인도분 가격(103달러)이 전거래일 대비 5.8% 급락하기도 했다.

니켈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지난 8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는 니켈 가격이 t당 10만달러를 넘어서며 ‘역사상 신고가’를 쓰자 매매를 정지시키기까지 했다. 니켈은 스테인리스강과 이차전지 등에 쓰이는 주요 소재다. 이밖에 이달 중순 기준 리튬 가격(kg당 약 10만원)도 작년 동기 대비 7배 가량 뛰었다. 구리, 알루미늄, 코발트 등 광물 가격도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원자재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네온과 팔라듐의 주요 공급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다. 희귀 가스인 네온은 글로벌 공급량의 4분의 1에서 절반 가량을 양국이 책임지고 있다. 팔라듐은 전세계 공급 물량의 3분의 1 정도가 러시아산이다. 우리 기업들은 사전 확보해놓은 물량을 소진하며 대체 공급처를 찾고 있다.

철광석·석탄 등 가격 부담에 철강 업계도 가격 인상 러시에 나설 모양새다. 이미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열연 등 주요 품목 가격을 5만~10만원 가량 인상한 상태다. 최근 들어서 글로벌 철강 기업들이 가격을 큰 폭으로 조정하고 있어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점쳐진다.

철강 가격이 오를 경우 자동차·조선·건설 등 산업군에서는 이익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도체 수급난 등을 겪으며 이미 수요와 공급간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다.

전기차 가격에 영향을 주는 주요 광물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점도 자동차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미국 테슬라 등은 판매 모델 가격을 최대 200만원 가량 인상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전기차용 배터리를 만드는 이차전지 기업들은 더욱 심각한 처지에 놓였다. 배터리 생산에 리튬, 니켈, 코발트 등 자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기업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화학 업계 원재료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익 훼손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로부터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은 나프타(25.3%)고 두 번째가 원유(24.6%)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의 기업 영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0.8%는 이번 사태가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특히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투자·교역 관계에 있는 기업 89.8%는 이번 사태로 인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받는다고 밝혔다. 전경련이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1000대 제조 기업을 대상(153개사 응답)으로 설문을 펼친 결과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기업들은 그 원인으로 △주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증대(50.5%) △환율 변동성 상승 및 자금 조달 애로(17.9%) △부품 수급 애로 및 생산 차질(15.1%)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인접국에 대한 수출 위축(11.5%) 등을 꼽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원자재난’이 앞으로는 상수(常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간 갈등을 시작으로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분위기가 조성됐는데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며 ‘탈세계화’ 바람이 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에너지·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구조를 지닌 우리나라 산업계 입장에서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세계 자원 부국들은 최근 ‘자국 중심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멕시코는 자국 내 리튬의 개발 이익을 민간 기업에 넘기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도네시아는 올해 초 보크사이트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자국 내 수급량 조절을 이유로 석탄 수출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중국은 일찍부터 전세계 광산 등을 사들이며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이를 무기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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