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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전 한전 사장이 던진 ‘전력산업 구조개편’ 폭탄에 발전공기업 술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1.11 16:27

- 김 전 사장 "화력발전사의 통합 필요, 전력 판매 개방해 소비자 편익 높여야" 주장



- 전력업계 리더이자 6개 발전 공기업을 자회로 둔 한전 전 사장의 소신 발언이라 주목



- 탈석탄, 재생E 확대, 한전 적자 등 구조개편 당위성 커져

캡처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김종갑 전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최근 던진 전력산업 구조개편론에 발전공기업이 술렁이고 있다.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이 5개로 분할돼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 주력사업만 털어내는 정책 방향으로 갈 거면 차라리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게 낫다는 주장부터 민영화 및 경쟁체제 도입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급속히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11일 발전 공기업 관계자들은 김종갑 전 사장이 전날 한계레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전력산업 구조개편론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김 전 사장은 이 인터뷰에서 전력 판매부문을 민간에 개방해 소비자 편익 높이고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및 화력발전 5사 등 발전 자회사 6의 통합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부가 20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당시 한전에서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공기업)로 분할하면서 밝힌 경쟁체제 도입 취지와 달리 특히 화력발전 5사의 경우 비즈니스 모델이 똑같아서 중복으로 인한 비능률이 훨씬 컸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외환위기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 로드맵으로 권고한 전력산업 민영화 및 매각은 그간 미흡 또는 지지부진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김 전 사장의 이같은 지적은 전력업계에 당장 파장을 미쳤다. 그가 산통상자원부 차관 출신에 SK하이닉스, 한국지멘스 사장은 물론 지난해까지 발전 공기업 6사의 모회사인 한전의 사장을 지냈던 점에서 그의 발언 무게감은 작지 않았다. 김 전 사장은 임기 내내 ‘두부가 콩보다 싸다’며 연료비연동제 도입을 주장해 결국 도입한 것은 물론, 불필요한 복지할인 폐지 등 전력산업의 케케묵은 문제들을 해소하는데 앞장서왔다.

더구나 한전과 발전 공기업에 닥친 현실도 김 전 사장 발언의 파장을 키운 원인이다. 현재 석탄화력발전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2050탄소중립에 따른 탈(脫)석탄·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기업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 공기업 통합 혹은 민영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력업계에선 김 전 사장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한전까지 나서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직접 참여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 "이럴 거면 차라리 통합을 하는 게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발전 자회사 분리 취지는 경쟁체제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정부가 ‘안전과 환경’이라는 가치를 강화하면서 탈원전·탈석탄, 신재생에너지·액화천연가스(LNG) 확대를 내세우고 공기업인 발전사들이 이에 부응해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따르려다 보니 비용부담이 커지면서 불필요한 경쟁만 늘어난 게 사실이다. 분리되긴 했지만 사업분야가 비슷하다 보니 통합해서 추진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공공성을 위해서 발전공기업을 운영한다면 5개로 분할할 필요가 없었다"며 "지금 석탄화력발전 줄줄이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발전 확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비율 이행 등 정체성도 모호하다. 발전사 명칭을 에너지정책수행공단으로 바꾸든가 민영화 하는 게 낫다. 한 곳만 매각되면 나머지 회사들도 줄줄이 민영화 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현재 민간발전사들은 LNG와 수소 육성 기조에 따라 LNG직도입 터미널 구축하고 수소산업육성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반면 발전공기업들은 재생에너지 확대 등 정책 수행에만 메달려 미래 먹거리 경쟁력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다만 구조개편 필요성이 20년 넘게 제기됐음에도 이뤄지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정부 소유 공기업인 만큼 오는 3월 대선 후 출범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방향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권이 재창출 될 경우 기존 정책대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전공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요청한다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통폐합 등 구조 개편이 추진될 경우 발전사들은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임원 감축 등 인력 구조 조정과 사옥 매각 등 어려운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분사한지 20년이 넘어 회사별로 인력 규모와 문화가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 유지다. 비슷한 업무를 하던 회사를 통합하면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 이는 민영화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통합에 대해 아무런 지침이 내려온 게 없다. 차기 정부에서 다시 논의되지 않겠느냐"면서도 "만약 통합이나 민영화가 추진 된다면 각 사의 사장 등 임원급 인사들은 물론 일반 직원들의 수도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는 한전의 송배전과 유통 독점 체제로 운영된 전력산업은 각종 경영비효율, 가격왜곡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송배전은 한전, 발전은 5대 발전공기업이 나눠 맡고 있는 현 전력산업 구조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구조개편이 이뤄진 뒤 20여년 간 바뀌지 않고 유지됐다.

이에 21대 국회에서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들의 비효율적 경영과 방만 경영, 중복 투자 문제 등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전력산업 재구조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다.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원자력발전 및 화력발전 축소, 신재생 발전 확대)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추진의 동력이다. 정부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년) 수립을 통해 2034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24기에서 17기로, 석탄화력발전소를 60기에서 30기로 줄이기로 했다. 2050년에는 전면폐지를 선언했다. 석탄화력발전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한전의 자회사인 발전공기업들의 통폐합의 당위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이미 ‘재생에너지3020 이행계획’에 따라 전체 발전량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7%에서 오는 2030년까지 3배 가까운 20%로 높이기로 했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탈원전, 탈석탄 발전을 가속화 하려면 한전 자회사가 한수원과 5대 발전공기업이 각각 원자력과 화력 중심 발전체계로 짜여진 기존 전력산업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와 함께 재설계가 필요하다. 특히 5대 발전 공기업의 유사한 사업구조에 더해 최근 정부의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중복투자 등 발전 공기업 경영 및 전력산업의 비효율 문제 등도 전력산업 구조개편 논의의 불을 당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뚜렷한 사업성도 없는 국내외 신재생 사업 투자가 우후죽순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중복투자가 빈번히 발생하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과 발전 공기업 6사 산하 국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 출자법인의 40% 이상이 일부 또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도 발전자회사들은 저마다 탄소중립을 위한 수조원의 투자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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