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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청구서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연료비 연동제 도입 등 전력요금체계 개편의 추진 동력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탈원전 논란에 휘말릴까 뒷짐지고 있는 형세이고 한국전력은 저유가 추세 지속에 따른 실적 호조로 느긋한 편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공언한 여권으로선 탈원전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 신호탄이었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력요금체계 개편의 불을 지폈다가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 논란에 기름을 부을 수 있어서다.
한전도 지금처럼 계속된 실적호조 속에서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부담만 떠않을 수 있다는 점에 나서길 꺼려하는 분위기다. 공연히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꺼냈다가 연동제 도입에 앞서 저유가 혜택을 한전만 독점하지 말고 나눠달라는 발전사들의 요구가 빗발칠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한전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다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3조원을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한전이 밝힌 이유는 연료비 하락으로 인한 전력구입비 감소다. 유가 하락으로 발전자회사 연료비와 민간발전사로부터 구매한 전력비용을 작년보다 3조9000억 원이나 줄었다. 한전은 "원전 가동률은 작년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저유가에 따른 연료비와 전력구매비 감소 효과가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한전은 실적개선에 표정관리하며 겉으로는 실적발표와 함께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시사했다. 한전은 "회사 경영 여건이 국제유가·환율변동 등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만큼 합리적인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추진해 요금 결정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 가격을 전기요금에 바로 반영하는 제도다. 저유가 시기에 도입하면 소비자들은 요금인하 혜택을 볼 수 있고, 한전 역시 경영실적 개선으로 전기요금 인하를 감당할 만한 체력을 다진 만큼 지금이 연동제를 도입할 적기라고 분석했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대한전기협회 주최로 열린 ‘전기요금체계 구축방안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해외 대부분 국가에서 기후환경 요금을 별도 분리 부과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있다"며 "연료비의 변동요인을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도 시행 중"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당초 올해 상반기 추진했던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코로나19로 연기한 뒤 하반기 다시 추진키로 했지만 아직까지 개편 관련 감감 무소식이다. 개편 여부·시기·내용 등 어느 것 하나 나온 게 없다. 그래서 최근 국회에서 한 김 사장의 언급은 공수표란 지적이 많다.
설령 한전이 지금 당장 전기요금체계 개편을 본격화하더라도 그 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의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대한 전기 소비자들의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다. 더욱이 올해 4분기부터 내년 1분기에는 떨어졌던 국제유가 반등 분 반영으로 연료비가 상승할 전망이다. 난방수요도 늘어 연료비연동제 도입 시 소비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에 지난 2년간 적자일 때는 도입하지 않던 연동제를 지금 도입할 경우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 4분기부터 국제유가 반등 분 반영되면 재무부담 가중 전망
지난 20일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kWh당 연료비단가는 액화천연가스(LNG)가 84원대에서 50원대로 추락했다. 전력시장가격(SMP)가 대폭하락하며 한전의 발전 자회사는 물론 LNG발전을 담당하는 SK E&S 등 민간발전사들은 일제히 적자전환했다. 한전의 3분기 반등은 도매가격은 하락하는데 소매가격은 그대로였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연료비 변동이 도매와 소매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될 경우 지금과 같은 호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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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월 발전원별 연료비 변동 추이.[자료=전력통계정보시스템] |
◇ 발전자회사 정산조정계수, 민간사 정산 체계 개편 등도 선결과제
연료비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본 발전자회사들의 전력구입가격 현실화 촉구도 연료비연동제 도입의 걸림돌이다.
실제 전력거래소는 최근 한전 발전자회사의 석탄발전소 운영과 관련한 손실 보전이 필요하다며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에 나섰다.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전력수요 감소와 LNG 가격 하락 등으로 전력시장가격이 급락하자 전력판매를 통한 에너지 정산금 만 가지고는 적정수익을 회수할 수 없게 됐다며 이를 회수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정산금 지급을 요구해 왔다. 전력거래소는 상반기 적용됐던 정산조정계수를 소급 조정해 발전자회사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전력시장운영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규칙개정위원회가 지난 20일 긴급 소집하고 해당 안건을 상정했다. 규칙개정위 심의가 완료되면 전기위원회(11월 27일 예정) 심의를 거처 12월 초 산업부 장관 승인을 통해 발전자회사에 대한 추가 정산금 지급 근거를 갖추는 절차는 완료된다.
다만 민간발전사 측에서는 반대하는 분위기다. 한 민간발전 업계 관계자는 "발전자회사에 대한 추가적인 정산금 지급 결정 전에 이러한 정산 단가의 상승이 원인이 무엇인지, 발전 자회사의 내부적인 비용절감 조치는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등에 대한 검증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며 "그러한 조치 없이 발전자회사에 대해서만 분기별 정산 조정 원칙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은 전력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연료비 연동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전반적인 전력시장 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 연동제만 도입할 경우 고유가 시기 소비자들의 불만에 거세게 시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