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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경ㅣ창간 31주년 특별인터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건설업계, 시공 아닌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0.05.28 10:45

건설산업,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위한 혁신 이뤄져야
장기적인 성장 위해 디지털 뉴딜보다 SOC 등 전통산업에 초점 맞춰야
해외건설, 단순 시공 아닌 새로운 사업모델 구축 필요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건설업계가 국내외 일거리 감소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국내는 물론 해외의 건설사업에도 제동이 걸린 상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건설투자는 최대 3.7%가 감소할 것이라 전망했다. 액수로 따지면 약 10조원 규모로 예상되고, 이는 취업자 수가 약 11만명 감소할 수 있는 규모다.

건설경기의 어려움은 곧 경제성장률의 저하를 의미한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5%, 지방 지역내총생산(GRDP)의 30%는 건설산업이 차지하는 등 그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경기부양의 일환으로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7조원 많은 30조원 규모로 편성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의 건설산업이 더 이상 정부의 지원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한국의 건설산업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더 이상 시공이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 발굴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창간 31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이상호 원장을 만나 국내 건설산업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다음은 이상호 원장과의 일문일답.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현주소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양면성이 있다.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오랫동안 국민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해 온 산업이다. 해외건설을 통해 과거 1980년대 초반에는 오일쇼크로 인한 한국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지금도 해외건설시장 점유비중이 세계 5∼6위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건설강국으로 성장했다. 반면에 부실공사나 부정·부패 혹은 입찰담합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산업이기도 하다.

건설산업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객관적이었으면 한다. 아직도 건설산업은 국내총생산의 15%를 상회하고, 200만명이 넘게 종사하고 있는 거대산업이다. 이같은 거대산업이 계속해서 국민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혁신해가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 하락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2010년 해외건설 수주액은 716억달러로 사상최고를 기록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2019년에는 223억달러로 줄어들었다. 해외건설 수주실적만 보더라도 한국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력의 하락 원인은 복합적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건설산업의 성장으로 과거와 같은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을 앞세운 해외건설 수주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유럽이나 미국 건설산업처럼 원천기술이나 설계·엔지니어링 및 투자개발사업 역량을 앞세운 선진국형 사업구조로 변신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로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게다가 한국의 건설산업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오늘날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설계·시공·유지관리 전반에 걸친 프로젝트관리 역량도 뒤쳐진다. 계약 및 클레임 관리역량도 부족하다. 시공 이전과 이후 단계로 가치사슬을 확장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해외시장에 대한 돌파구는 없을까?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건설산업 전반에 걸쳐 시스템을 리셋(Reset) 할 필요가 있다. 법·제도 혁신부터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 글로벌 인재의 영입과 양성 등 수많은 과제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시야를 바꿔야 한다. 우리는 해외건설을 하면 기술과 인력을 투입하는 ‘공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 기업 같은 경우는 원천기술을 갖고 컨설팅을 한다. 즉 해외에서 시공을 하는 게 아니라 기술 라이센싱을 하는 것이다. 유럽 기업은 M&A가 활성화 돼있다. 그러니까 계열사 수가 1000~2000개가 되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더라도 그냥 단독으로 가는 게 아니고 현지업체를 사가지고 전체를 같이 조직한다. 우리는 해외건설을 시공으로 보는데 미국과 유럽은 비즈니스의 일종으로 본다. 시공중심으로 가다 보니까 개발사업이 5%밖에 안된다. 95%가 시공, 도급 사업이다. 따라서 해외건설 사업자체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보고 사업 전략을 다시 짜야 된다. 국자 차원에서 제도 마련이나 자금지원도 필요하다고 본다.


-건설산업에서 반드시 해소해야 할 규제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건설규제는 1970∼1980년대의 다른 산업부문에 대한 규제와 마찬가지로, ‘분업과 전문화’에 기초해서 형성됐다고 본다. 민간부문의 산업이 취약한 초창기에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기반이기도 하다. 설계·시공·유지관리 등 건설사업 각 부문별로 칸막이를 설정하여 분업화하고, 겸업을 금지한 다음, 특정한 업무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맞이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융합과 통합’이다. 설계·시공·유지관리를 통합해서 발주하기도 하고, 시공자가 설계단계부터 개입해서 시공노하우를 반영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규제는 그와 같은 ‘융합과 통합’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건설공사 발주제도 또한 ‘분업과 전문화’ 논리를 더 강화하는 시대착오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설계와 시공의 분리발주는 물론, 시공도 오랫동안 토목·건축공사와 전기·통신공사를 분리발주해 왔고, 기계설비나 소방설비공사도 분리발주를 시도하고 있다. ‘융합과 통합’을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의 일괄발주나 전체 건설공사의 통합발주가 필요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해관계집단의 반대나 제도 미비로 인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한국판 뉴딜’에서 SOC가 제외될 전망인데, 이에 대한 생각은?

▲최근 정부가 제시한 방향성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에 더해 그린 뉴딜 등인 것 같다. ‘한국판 뉴딜’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과 달리 대규모 SOC사업이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와 빅데이터 분야’에 초점을 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 다음 3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첫째, ‘한국판 뉴딜’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라면 디지털 뉴딜보다 SOC 같은 전통산업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최대 수혜자는 온라인 기업이나 디지털 산업이다. 온라인기업이나 디지털 산업은 굳이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갈수록 민간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한국판 뉴딜’은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을 더 크게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전통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할 거다.

둘째, 미국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이래 IT나 디지털 부문에 대한 투자는 급속하게 늘었지만 도로·철도·공항 등과 같은 전통적인 인프라 투자는 게을리 했다. 그 결과 디지털 부문과 인프라 부문간의 격차가 심화됐고, 미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가장 큰 요인이 낙후된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도 디지털 부문과 인프라 부문 간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노후 인프라 시설만 디지털화할 것이 아니라 대규모 신규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한국판 뉴딜’에 붙어 있는 ‘한국판’이란 수식어는 과거 미국의 뉴딜과 차별화된 의미를 담아야 한다. 과거 미국의 뉴딜이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을 의미했다면, 한국판 뉴딜은 거꾸로 민간투자 활성화와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기능 회복을 중시해야 한다. 재정을 동원한 투자확대는 ‘마중물’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본격적인 민간투자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국내 건설수주액이 작년 166조원까지 증가했는데도 건설업계는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최근 4∼5년간에 걸쳐 건설수주액이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늘어난 영역은 민간주택건설 수주였다. 토목건설 투자액은 2009년 4대강 사업이래 9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해외건설 수주액도 2010년 716억달러를 정점으로 작년에는 223억달러로 계속 줄어 들었다. 그러니 주택전문업체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어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공공건설의 경우는 오랫동안 적정공사비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공공사는 수주만 하면 손실을 보는 구조가 오래 지속돼 왔다. 특히 공공공사 의존도가 높은 지역 중소건설업계는 공사 물량도 문제였지만 수익성 저하도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속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던 것이다.


-건설산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은?

▲건설시장에 수주만을 목적으로 한 페이퍼 컴퍼니가 많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건설업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연구원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부실건설업체 수를 추정해 보면 20∼30%는 되는 것 같다. 부실건설업체의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어떤 수단으로 할 것인지가 문제다. 시장진입 규제를 강화해서, 다시 말해서 건설업 등록기준을 강화해서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을 퇴출시키는 방식은 심각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거다. 기존 건설업체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신규 진입을 억제하는 조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기존의 중소기업과 신규 진입기업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부실 건설업체는 민간부문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민간에서는 대부분 발주자가 사업자를 선별하여 수의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페이퍼 컴퍼니는 공공 입찰제도의 맹점을 파고들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요행에 의한 복권당첨식 낙찰제도에서는 입찰참가자 수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조달제도 혁신을 통해 페이퍼 컴퍼니의 수주와 생존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향후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건설산업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면, 그 문제는 국민일까, 건설산업일까에 대한 고민을 할 수있다. 그러나 먼저 건설인들의 솔직한 자기반성이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 철저한 안전관리를 통해서 사망사고를 없애야 하고, 사업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면서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아야 한다. 입찰담합이나 덤핑이 아니라 공정경쟁을 해야 하고, 기술경쟁을 해야 한다. 물론 이같은 노력은 건설인만이 아니라 발주자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발주자는 갑(甲)이고, 건설업계는 을(乙)입니다. 건설산업의 혁신은 을의 위치에 있는 건설업계만 족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갑의 위치에 있는 발주자의 혁신이 필요하다. 건설산업의 부정적 이미지는 발주자의 이미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건설업체에 대한 처벌과 제재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정부조달제도를 비롯한 법·제도의 정비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1987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95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2007년 GS건설 전략담당 겸 경영연구소장 ▲2014년 한미글로벌 사장 ▲현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KOTRA 해외수주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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