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선불·현금’ 양보했나?…한·미 관세협상 ‘급물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0.16 15:57

김용범·김정관 동반 방미…워싱턴 협상서 대미 투자 패키지 최종 조율

3500억달러 투자 방식·내용, 통화 스와프 체결 등 둘러싸고 실무진 협상 진행될 듯

오는 30일 경주 APEC 정상회담 보름 앞두고 양국 ‘큰 틀에서 의견 접근’ 모양새

대통령실 “트럼프 대통령, 29~30일 방한” 발표

미국 워싱턴DC로 향하는 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장관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와 관련,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협상할 예정인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6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난항을 보여 온 한미 관세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양측 정부에서 진전을 시사하는 신호가 잇따라 나오면서 보름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협상이 타결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을 정도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는 29~30일 한국 방문이 확정돼 더욱 더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정부는 16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미국 워싱턴DC로 급파했다. 사실상 한국 측의 '키맨' 4인방이 총출동했다. 앞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후속 협의를 위해 워싱턴DC에 가 있는 상태며,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해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회담한다.


특히 우리나라 협상단이 도착 직후 백악관 관리예산국(OMB)을 방문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OMB는 백악관 웨스트윙 인근 아이젠하워 행정동에 위치한 기관으로, 미국 대통령의 예산 집행과 정책 실행을 조율하는 핵심 조직이다. 우리 협상단이 OMB를 우선적으로 찾는 것 자체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으로 협상이 진전돼 실무자간 세부 조율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 현재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 정부 양측에서 협상 진전을 시사하는 언급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구 부총리는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으로부터 '한국의 외환시장 상황을 이해하고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국감에서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 요구에서 한발 물러선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워싱턴DC 도착한 구윤철 부총리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구 부총리는 한미 무역협상의 최종 타결 전망과 관련해 “계속 빠른 속도로 서로 조율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도착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로널드레이건 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도 베선트 재무장관이 이날 워싱턴DC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이견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향후 10일 내로 무엇인가(이뤄질 것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5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를 선불로, 일본은 6500억 달러에 합의했다"고 또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달 말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온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한미 정상회담은 오는 29~30일쯤으로 예상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알려진 것처럼 29일 도착해서 30일까지 예상되는데 그 언저리에 한미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 전문가들은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달 말 일정한 수위의 합의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워싱턴DC에서 벌어질 실무진 협상에서 최대 쟁점인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두고 막판 접점을 찾을 전망이다. 미국은 일본식 모델을 참고해 투자금 대부분을 현금으로 제공하는 '백지수표'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나, 한국은 외환시장 안정과 국내총생산(GDP) 규모 등을 고려해 직접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보증·대출 중심으로 구조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여부도 변수다.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안전판' 성격의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통화 스와프가 연방준비제도(Fed) 권한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외환보유액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화를 활용한 대미 투자 집행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양국 중앙은행이 아닌 미국 재무부와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미국이 원화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달러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통한 조달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국가부채를 늘려 대미 투자액을 마련하는 꼴이 된다.


투자 수익 배분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직접 투자 비중 확대와 지난달 말 알려졌던 원금 회수전 50대50, 회수후 90% 미국 소유 방식을 고집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합리적인 수익 배분 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최종 합의문 서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이날 MBC라디오에서 “(선불 지급을 하려면)3500억 달러 마련을 위해 한국이 보유한 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각할 경우 시장에서 소화되기도 어렵고 국채 가격 하락으로 결국 미국 금리가 올라가게 된다"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도 원치 않는 결과다. 양국이 서로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선상에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 교수는 이어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도장 찍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면서도 “상당히 큰 틀에서 양국이 공통이익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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