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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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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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원칙과 기다림의 미학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2.19 08:23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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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요즘 우리나라 에너지계는 다사다난하다. 우선 국내 기름 값은 국제유가의 하향안정 추세를 따르고 있다. 국제유가는 2년 가까운 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도 지난 5개월 이래 최저 수준이다. 미국 서부텍사스(WTI)유는 한 때 배럴당 70달러 수준 아래로, 유럽 브렌트유는 70달러 중반 수준을 맴돌기도 했다. 소폭 상향추세로 유가 100달러 시대 걱정은 당분간 없는 것 같다. 이에 우리나라 주유소 휘발유가격도 전국평균으로 리터 당 1600원대, 경유는 1500원 대를 밑돌고 있다.

여기에다 전력도매가격의 하향 안정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LNG와 석탄 가격의 하락으로 지난 11월 한전의 전력도매가격(SMP)은 kWh당 122원으로 1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아직은 45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누적적자가 해결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와 경유·천연가스 유가연동보조금 지급을 연말까지 한시 연장했다. 이는 향후 국제유가 급등과 이로 인한 실물경제 및 금융·외환시장 등의 변동성에 사전대응하려는 거시경제 비상대책의 일환이다. 또한 지난 1일 시행된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에 대응해 우리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측정·보고·검증 컨설팅 등 대응역량 강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오랜만에 에너지 이슈가 거시경제정책의 중심과제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에너지부문 이슈는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끝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COP28)합의 도출이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들이 합의됐다. 지난 13일 2주간의 협상 끝에 어렵사리 ‘화석연료 퇴출(phase-out)’이라는 표현을 대신해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 away)’ 가속 개념을 선택한 것이 가장 눈에 뛴다. 이런 표현은 COP개최 28년 만에 처음으로 합의문에 포함됐다. 당연히 최대 현안이자 쟁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과 석탄 화력발전 비중이 큰 인도 등의 반발과 ‘로비’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런 데도 두바이 총리인 COP의장은 이번 합의안이 "과학이 주도하는 성격을 가지고, 배출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의 격차를 해소하는 균형 잡힌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오일 파워’의 영향일 게다. 그러나 여러 저개발국들, 특히 저지대 도서 국가들과 많은 기후 활동가들은 크게 미흡하다고 불만이다.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의 내밀한 퇴출 저지조항들이 곳곳에 있다고 비난한다. 특히 천연가스를 ‘전환 기반’ 에너지로 규정한 점은 새로운 논란거리다. 석유감축 - 가스증대라는 화석에너지 원별 구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묘한(?) 산유국 책임회피책이란다. 물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3배로 늘렸고, 배출가스 저감이 미비한(unabated) 석탄 화력발전을 ‘단계적 축소(phase down)’하는 데도 합의했다.

비록 만장일치 합의로 귀결되었지만 여러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화석연료 퇴출’조항이 유야무야하게 되고, 재생에너지 확충의 구체적 목표가 제시되지 않고, 석탄 화력발전에 대한 퇴출 의지를 담지 못한 것은 그 대표 사례다. 기후변화나 지속가능한 성장 등 인류 공동선(善)에 대한 유엔의 글로벌 합의(Consensus)체재의 붕괴라는 의견마저 나온다. 결국 세계 기후변화 대응은 이번 총회를 계기로 제기된 다음과 같은 학계의 지적에 대한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가 지구온난화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모든 UN 체재 아래서 진행되는 각종 회의와 협약들이 파리협정에서 합의된 참여국 및 주체들의 ‘이행여부 점검(global stocktake:GST)’ 결과들이 화석연료의 점진적 감축과 궁극적 퇴출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장분석 원칙을 정립하고 관련 대책 실행과정에서 각별한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껏 에너지 공급부족을 우려하는 가운데 단기적인 공급여건 변화에 주로 관심을 집중해 왔다. 그렇지만 요즘 세계 에너지시장과 정책체계는 좀 더 장기적 수요와 시장변화에 더욱 주목하는 것 같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망 단절로 천연 가스를 필두로 모든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을 야기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 지속되지만 이제는 그 전쟁으로 인한 공급 왜곡과 가격 급등은 거의 없다. 기름 값은 경기 흐름과 미국산 셰일오일 생산동향과 각국의 전략비축 수준 등이 주된 시장구성요소이며 정책결정인자가 되고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 등 OPEC+의 동시 다발적 원유감산에도 국제유가의 하락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때에 우리나라는 석유파동 등 우리가 겪은 공급애로에 대응한 공기업 위주, 국가주도 에너지전략의 재편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간 미진했던 전력원가의 가격 반영을 공급원가 하향조정기인 지금 과감하게 처리하고, 그 다음에는 민영화된 독립적 전기위원회에 시장운영을 맡기는 것을 검토할 때이다. 정부주도 전력정책의 헛된 망상을 버리기에 딱 좋은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정부와 관련 공기업은 언제까지 정치권을 대신해 헛발질을 계속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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