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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바로 보험 청구하는 ‘간소화법’ 또 제동…보험사·의료계 온도차 다른 까닭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14 15:13

내주 '간소화법' 분수령…법사위 전체회의 예정일 오는 18일



의료법·약사법 취지와 충돌할 여지 지적…보험사·의료계도 대립각



소비자 단체 "복잡한 실손보험 청구 과정상 보험금 청구 포기 많아"

보험청구사진

▲실손의료보험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14년의 표류를 마치고 국회 문턱을 넘어선다는 기대감이 실렸지만 결국 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연합


[에너지경제신문=박경현 기자] 실손의료보험 청구 과정을 간소화하는 법안이 14년의 표류를 마치고 국회 문턱을 넘어선다는 기대감이 실렸지만 결국 또 다시 제동이 걸렸다. 업계는 내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의료계의 반발이 여전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비치고 있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날 오전 전체회의에서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한 결과 의결하지 않고 계류시킨 뒤 다음 회의에서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법사위 전체회의 예정일은 오는 18일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실손 보험금을 청구할 때 진료받은 병원에서 신청하면 전산으로 자동적으로 처리되는 법안이다. 법안에는 청구 간소화를 위해 환자가 요청하면 의료서비스 제공기관이 청구 서류를 중개 기관에 전달하고 이 기관이 보험사에 전송하는 절차가 포함됐다. 청구 서류를 중개할 기관은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보험개발원 2곳이 거론되고 있다.

전날 회의에서는 의료정보 열람이나 제공을 제한하는 현 의료법·약사법 취지와 충돌할 여지에 대한 지적이 나오면서 법안 통과에 발목이 잡혔다. 박주민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법 21조 2항과 약사법 30조 3항은 의료정보 열람 또는 제공을 엄격히 제한한다"며 "보험업법 개정안은 광범위한 예외를 만들어 관련 정보를 제공하게 해 두 법의 취지와 충돌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가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것은 보험업계와 의료계를 비롯해 기관별 이해에 따라 첨예한 대립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천차만별인 병·의원의 비급여 진료비의 비교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급여 진료비를 적정 수준으로 통제하고 실손보험 손해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해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의료민영화 저지 및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 환자와 의사 단체는 실손보험 간소화 법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다. 환자단체는 "법안 개정 시 환자의 정보가 손쉽게 보험사로 넘어가면서 보험사가 환자를 선별하고 고액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밝혔다. 의사단체의 경우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소비자 단체는 큰 틀에서 보험업계와 같은 입장이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많은 소비자가 복잡한 실손보험 청구 과정과 번거로운 증빙자료 준비에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고 있다"며 "병원에 진료비 완납 후 보험사에 별도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과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 편익 제고와 권익 증진을 위해 보험업법 개정이 필요하다"고도 피력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21~2022년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 추정치는 연평균 2535억원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법제처에서 유권해석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점을 근거로 들며 법안 통과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법적 정합성 확보와 관련해 복지부,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실도 체계 정합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정책건강복지법에도 보호의무자의 열람 사본 발급이 가능함을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진창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법제처는 유권해석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절차적인 문제가 없고 과거 14년간 국회에서 논의된 점, 정무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14년을 끌었던 숙원 법안의 처리 결과가 내주 분수령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업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의료계와 일부 단체를 중심으로 반대가 여전히 거센 상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법안 필요성에 대한 대다수 보험소비자들과 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당국 차원에서도 손을 들어주고 있어 내주 법사위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도 "의료계나 환자들 단체 일부의 반대가 여전히 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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