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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별 추경편성] 文정부, 횟수·금액 모두 압도적…임기 5년간 10차례 총 151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09 13:12

외환위기 김대중정부 5회 30조, 금융위기 이명박정부 2회 33조와 대조

지난 26년 간 추경 안 한 해는 5개년 불과…"예산 편성·심의 기능 상실"

추경 줄다리기…與 "재정건전성 중요" vs 野 "국민 생계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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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회 예결위에서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오세영·윤수현 기자]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둔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다.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은 가계 살림살이를 위해 추경 편성을 압박하는 반면 집권 국민의힘과 정부는 재정 건전이 우선이라며 버티기 모드에 돌입했다.

9일 정치권 안팎에선 정부가 당분간 추경을 편성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상황에서 여당의 재정 건전성 중시와 야당의 추경압박 간 줄다리기가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당정의 경우 내년 4월 22대 총선을 몇 개월 앞둔 시기에 그동안 강조해 온 ‘재정 건전성’ 기조를 번복한다면 국민에게 신뢰를 잃으면서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반면 야당으로선 당정에 이런 위험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추경 압박 수위를 높여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재정은 세제·금융 등과 함께 중요한 경제정책 수단 중의 하나다. 특히 예산을 늘려 국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돈을 푸는 재정확대는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경제가 최근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방안으로 35조원 추경 편성을 제안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가계는 영양실조인데 정부가 재정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한다"며 "그러나 다이어트는 좋지만, 영양실조에 다이어트를 하면 사람이 죽는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당정은 무책임한 재정중독에 빠질 수 없다며 추경 편성에 신중한 입장이다. 그간 지난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 위기국면 극복의 명분으로 수차례 추경을 한 결과 재정 건전성이 취약해졌고 올 들어 세수 펑크 위기까지 온 만큼 당초 예산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추경은 용도가 정해진 국가 예산과 별개로 집행하는 예산이다. 세입이 예상보다 크게 줄었거나 예기치 못한 지출요인이 생겼을 때 편성한다.

정부는 해마다 이듬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단위로 나라의 수입과 지출계획을 담은 예산안 짜서 9월부터 시작하는 정기국회 이전에 국회에 제출한 뒤 국회에서 연말까지 심의 확정한 최종 예산안을 바탕으로 이듬해 예산 집행을 한다. 하지만 이듬해 예산 집행 중 이 예산안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경우 정부가 예산을 추가로 변경해 국회에 제출하고 의결을 거쳐 집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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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 "재정건전성 중요" vs 野 "국민 생계 외면 말아야"

민주당은 대규모 세수 부족 상황에서 정부 지출이 축소될 경우 민생 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크다고 강조하며 35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초부자 감세로 나라 곳간에 구멍을 내놓고 그 구멍을 서민 증세로 막고 있다"면서 "예산을 틀어쥔 채 생계가 어려운 우리 국민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항간에 ‘추경불호’라는 말이 회자된다고 한다. 추경을 안 하겠다는 것이 구호가 되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더 늦기 전에 민생 경제 회복 추경 논의를 시작할 것을 추경호 부총리에게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홍성국 의원도 "하반기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호언장담하던 정부는 슬그머니 경제성장률을 기존 1.6%에서 1.4%로 대폭 낮췄고 36조4000억원에 달하는 세수 결손에 대해서도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절망이 분노로 바뀌기 전에 세수 결손과 경제 위기를 해결할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5월까지 걷힌 국세는 160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조4000억원 감소했다. 내달부터 연말까지 지난해 수준으로 세수가 들어온다고 가정해도 정부가 전망한 세수 전망치(400조5000억원)보다 41조원 가량의 결손 규모가 추산된다. 그만큼 올해 나라 살림이 지난해보다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당정은 세수 결손 우려에도 당분간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추경을 편성하지 않을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지지율과 관계 없이 재정 건전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기조를 강조해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기가 우려된다고 빚을 내서 경기 진작을 하는 건 자제해야 하고 증세할 타이밍도 아니다"라며 추경에 선을 그었다.

경기 부양을 추경 편성으로, 세수 부족 상황을 증세로 대응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추 부총리는 "세수 부족엔 세계잉여금과 기금 여유 자원으로 대응할 것이고 경기는 민간 활력을 통해 회복시키는 것이 정책의 주방향성"이라고 말했다.

증세와 관련해서는 "경기와 민생이 좋지 않은데 민생을 논하는 건 국민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며 "경기가 빨리 살아나 세수 기반이 확충되는 게 세수를 늘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 방향에서도 재정 역할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밝혔다.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은 재정 투입을 최소화 하되 정책금융 지원을 키워 민간분야 투자가 확대되도록 유도하고 세제지원 혜택을 주는 방향이다. 경기 하락의 원인이 됐던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면서 실물경기 호조를 바탕으로 경기 반등을 이끌어내려는 것이 목표다.

또 야당이 주장하는 추경편성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키기보다는 규제 완화로 수출과 투자 확대로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추경으로 수십조 원의 돈이 나라에 풀리면 오히려 물가 상승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추경을 둘러싼 여야 공방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21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에서도 추경 편성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했다.

예결특위 야당 간사인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은 민생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추경 요구를 포기할 수 없다"며 "내일이라도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해 달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서 하고 정부·여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반면 임병헌 국민의힘 의원은 "지금 국가 채무 증가세가 가파르고 세수가 줄어들어서 무엇보다도 국가 재정 건전성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며 "예결위에서는 불요불급한 예산은 과감하게 줄이고 그야말로 시급한 민생예산,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을 위한 예산을 위주로 모두 함께 중지를 모아 심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경 편성에 대한 국민 여론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여론조사 기관 메트릭스에 공동 의뢰해 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정례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3.1%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재정건전성을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52.4%, ‘경기 부양과 서민 지원을 위해 추진해야 한다’는 반응이 40.4%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76.6%가 추경 편성에 ‘신중해야 한다’고 응답했지만 민주당 지지자는 64.2%가 추경 편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 역대 추경, 금융위기·전염병·자연재해 등에 편성

역대 내역을 살펴보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불시에 경제 위기 상황이 닥쳤거나 가뭄, 태풍, 전염병 등 자연재해를 복구하기 위해 주로 추경이 편성돼 왔다.

통계청 누리집 ‘e나라지표’의 ‘연도별 추경편성 현황’을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살펴보면 정권별로 △김대중 대통령(1998~2002) 5회 총 30조8000억원 △노무현 대통령(2003~2008) 4회 총 17조1000억원 △이명박 대통령(2008~2013) 2회 총 33조원 △박근혜 대통령(2013~2017) 3회 총 39조9000억원 △문재인 대통령(2017~2021) 10회 총 151조2000억원 규모다.

코로나를 겪은 문재인 정부가 횟수나 규모면에서 단연 가장 많다. 횟수가 가장 적은 정권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명박 정부, 최소규모였던 정권은 노무현 정부였다. 문재인 정부가 재임기간 추경으로 편성한 예산 총액 151조2000억원은 단군 이래 최대 위기로 평가됐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추경으로 쓴 돈 30조8000억원의 5분의 1 수준이다. 예산규모가 20년 전과 다르지만 추경이 지나치게 자주, 많이 편성됐다는 뜻이다.

이념성향별로 보면 보수정권 때보다 진보정권 때 비교적 더 자주 많이 추경이 편성됐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이후 지난해까지 26년간 추경이 편성되지 않는 해는 2007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4년 등 불과 5년 밖에 안된다. 문재인 정부 땐 한 해 무려 4차례 추경이 편성되기도 했다.

추경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처럼 자주 많이 편성되는 것을 두고 예산안 관련 정부의 편성과 국회의 심의확정 기능이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들도 높다. 추경을 남발하려면 재정의 안정성 확보는 고사하고 뭐 하러 예산을 편성하고 심의하느냐는 것이다.

정권별로 마주친 주요 현안에 따라 추경 규모도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시절인 1998년에는 주로 구조조정과 실업대책 재원 확보를 위해 13조9000억원의 추경이 집행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지난 2003년에는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 복구와 경기 진작 등을 이유로 집행된 추경은 7조5000억원 규모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9년에는 28조4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이 편성됐다. 이후 이 전 대통령 정권에서 추경은 편성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인 지난 2013년에는 경기침체 대응 등에 17조3000억원이 쓰였고 2년 뒤인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와 가뭄 대응으로 11조6000억원의 추경이 집행됐다. 이듬해에는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브렉시트)에 따른 기업 구조조정 영향을 최소화 하고자 11조원 규모의 추경이 풀렸다.

문재인 전 정부가 취임한 2017년에는 일자리 창출 등에 11조2000억원의 추경이 편성됐다.

문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2020년에는 역대 최다 추경 편성이 이뤄진 해이기도 했다. 문 전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시작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자 2020년 한 해 4차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해 소상공인들과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사용했다.

지난 2020년 한 해 추경만 살펴보면 △1차 11조7000억원(코로나19 방역체계 고도화·소상공인 회복 지원) △2차 12조2000억원(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3차 35조1000억원(포스트 코로나 선도 지원) △4차 7조8000억원(코로나19 재확산 선별재난지원금 지급) 등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역대 최다 추경을 편성하기도 했다. 당시 추경의 핵심 목표는 코로나19의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다. 정부는 소상공인 370만명에 600만~1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추경을 편성했다.

전문가들은 추경이 불가피한 경우 편성해야 하지만 세수 등 재정 상태가 불안할 때에는 집행하지 않는 게 경제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가와 국민이 위기를 맞았을 때에는 기존에 편성한 예산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니 추경을 편성하는 게 맞지만 재정 건전이 우려스러운 상황에서는 추경을 습관처럼 편성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올해에는 추경이 없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기조 자체가 재정 건전인데다가 세수 상황도 녹록치 않기 때문에 야당의 압박에도 추경을 고려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맞이한 큰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에 추경을 편성해 안정을 도모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지금처럼 국내외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 성장 전망치가 낮은데다가 세수펑크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추경까지 편성한다면 국가 채무상황은 악화되고 정치적으로도 당정에 대한 민심이 부정적으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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