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7일(수)



[데스크 칼럼] 민주당의 ‘이재명 덫’ 탈출법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3.19 14:19

에너지경제 구동본(정치경제부장/부국장)

구동본

▲구동본


창당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개인 덫에 갇혀 있다. 지금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때 기세등등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몽골 기병처럼 기민하고 유연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공룡 정당으로서 무기력하고 굼뜬 이미지 만 보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 시절 민주당의 100년 집권론까지 제기됐다. 그것도 이해찬 당시 대표 입에서 나왔다. 당연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 오만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9년 2월 문재인 정부 출범 3년차 때의 상황이었다.

민주당의 100년 집권이 가시화하는 듯 했다. 2020년 총선에서 실제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냈다.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을 함께 거머쥐었다. 민주당으로선 100년 집권이 단순한 꿈이나 환상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요즘 민주당에선 그런 호기나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또는 불안감에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민주당의 최근 상황은 지난 금요일인 17일 이 대표의 대비된 행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대표는 그날 오전 9시 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윤석열 정부의 저자세 외교를 강력 비판했다. 그 자리에서 ‘하수인’ ‘조공’ ‘숭일’ 등 거친 표현까지 썼다.

이 대표는 그로부터 1시간여 뒤인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섰다.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의혹 사건 재판에 피고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런 모습은 그날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국민들은 앞으로도 그런 장면들을 자주 볼 것이고 그 때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제 앞가림이나 잘 하지, 뭐 잘 났다고 남의 탓을 하나"이지 않을까.



이 대표 개인의 ‘사법 리스크’가 민주당에 터 잡고 있는 한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의 어떤 정치행위나 정책도 제대로 먹힐 수 없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마지막 믿는 구석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의회 권력이다. 이마저도 내년 4.10 총선에서 이기지 못하면 앞으로 1년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권력일 뿐이다.

이 대표는 지난 3.9 제20대 대통령선거를 100일 앞둔 2021년 11월 20일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문재인당’인 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높은 정권교체론에 맞선 이 대표의 승부수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대표는 3.9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권력을 내줬다. 그런데도 그 선언으로부터 9개월여 뒤 ‘이재명의 민주당’은 현실화했다. 대선 패배 불과 84일 만인 6.1 재·보궐선거에 나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더니 그로부터 88일 만인 지난해 8월 28일엔 무려 80% 가까운 득표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여기에 걸린 기간은 겨우 6개월도 안됐다.

당 대표가 된 데 그친 게 아니다. 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의 구성원인 최고위원 9명 중 7명이 이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접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선 이재명 간판만 내걸고 졌으니 그나마 이 대표만 책임지면 됐다. 이젠 명실공히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거듭나 자칫 잘못하다간 동반 침몰할 수도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현재 민주당의 짐이다. 이 대표를 둘러싼 개인 비리 혐의가 한 둘이 아니다. 한 가지라도 입증되면 중형을 면치 못할 혐의들이다. 이 대표 관련 각종 혐의는 아직 유죄로 확정된 게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이미 기소됐거나 앞으로 속속 기소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엔 이 대표 체포동의안까지 국회에 날아들었다. 그 체포안이 가까스로 부결돼 이 대표는 위기를 넘겼다. 이 대표 체포안이 추가로 제출될 것이란 얘기가 들린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그 때도 부결될 것으로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당내 일각의 분석이다.

최근엔 당내에서 이 대표 거취 결정 또는 인적 쇄신 요구도 터져나왔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발언으로 지옥까지 다녀온 적이 있다.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고 한 게 이유였다. 당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죄 혐의로 기소됐다. 나중에 대법원 판결로 살아 돌아왔다. 그 판결조차도 재판거래 결과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제는 그 때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의 집권시기가 아니다. 혐의의 가짓수나 내용을 보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이 대표 주변 인물이 죽음으로 내몰린 게 벌써 다섯 명이다. 더 이상 정치보복 타령이나 정치탄압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며 위기에서 벗어날 형편이 못 된다. 자꾸 방벽을 높이 쌓으면 공세도 그만큼 강해지는 법이다.

이 대표의 혐의는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이 대표는 변호사 출신이 아닌가. 모른다면 측근들에 솔직히 물어봐도 된다. 민주당에도 검사·판사 출신 의원들이 많지 않는가. 민주당과 이 대표의 현 위기는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민주당은 이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도 그를 당의 대통령 후보와 대표로 연거푸 선출했다. 이 대표도 그간 관행으로 자리잡아온 ‘대선 패배 후 정치 공식’을 깨고 곧바로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격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로 당과 지지자들에 적지 않은 충격과 상처를 줬다. 그 책임을 외면해 또다시 당과 지지자들에 부담이 되고 있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중 각각 자식과 형을 감방에 넣는 아픔을 겪었다. 이 대표에 빗발치는 의혹은 가족을 겨냥한 게 아니다. 이 대표 본인, 그것도 개인비리 관련 의혹이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전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이튿날 아침 "이게 검찰 수사 때문이지, 저 때문이냐"고 반문했다. 그런 이 대표는 당일 점심 때쯤 전모 씨의 유서가 발견되자 곧바로 전모 씨 빈소를 찾아 무려 7시간을 대기하다가 겨우 조문했다. 그 유서엔 이 대표를 향해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 "이제 정치 내려 놓으시라"고 한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그 뒤 달라지고 있다. 지난 14일 유튜브 방송을 통해 "어쨌든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한 일이어서 저로서야 어떤 방식이든 간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한 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지난 16일 당 의원총회에선 "내년 총선에서 당이 패하면 당도 어려워지고 내 정치도 끝난다"면서 "총선 승리를 위해선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를 후원해온 당의 핵심 원로가 당초 입장을 바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질서 있는 퇴진’ 또는 ‘인적쇄신 결단’ 요구도 있었다.

이 대표로선 억울하겠지만 뭔가 결단해야 하는 시점을 맞았다. 이 대표가 결단한다면 그 결단이 무엇이든 미봉에 그쳐선 안된다. 꼼수를 두려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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