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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글로벌 트렌드 역행…블랙리스트 낙인에 수출·탄소중립 차질 우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1.12.30 16:33

- SMR 등 국내 원전산업 기반 약화·생태계 파괴 지적

- LNG발전. 기준 완화됐지만 업계·환경단체 모두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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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30일 정부가 인정하는 친환경 경제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담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가 확정되면서 원자력업계와 LNG업계 등은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녹색분류체계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녹색 자금 투자와 직결되는 만큼 각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녹색금융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9월 말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녹색 채권 규모만 봐도 지난해보다 약 15배 늘어난 14조 500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논란이 된 액화천연가스(LNG) 관련 사업을 한시적으로 ‘녹색’으로 분류했지만, 원자력 발전은 친환경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종의 ‘블랙리스트’ 낙인으로 업계에서는 원전 수출, 재구축 및 보수 정비, 폐기물관리는 물론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 탄소중립 추진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차기 정부에서 신한울 3·4호기의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국내 원전산업 기반 약화 및 생태계 파괴 등 ‘탈원전 대못박기의 끝판’이 될 것이라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은 신규 추진됐다가 중단상태에 있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의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거나 아예 재개를 공식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 원전 업계 "탈원전 대못박기"…환경부 "향후 포함 될 수도"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30일 "탄소중립 안이야 선언적인 의미라고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후퇴금지가 엄격히 적용되는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무리수 또는 자충수일 가능성이 높다"며 "녹색분류체계는 녹색금융과 직결돼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기술에는 자금조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원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국제 분위기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러시아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고 있다. 중국은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미국도 청정에너지 기준에 포함하는 것을 고려하는 중이다. EU는 원전의 포함 여부를 두고 국가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녹색분류체계 개정을 내년 초로 미룬 상황이다.현재 프랑스를 포함한 EU(유럽연합) 국가들도 그린 텍소노미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원자력 발전이 배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신규원설 건설을 선언한 프랑스를 포함한 10개국은 원자력의 그린 택소노미 포함을, 독일 등 5개 회원국은 불포함을 주장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전이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으며 유럽도 2050년까지 현재 10% 수준인 원전 비중을 20%까지 높이기로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EU까지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면 선진국 가운데 한국만 탈원전을 하는 상황이 된다. 건설에 10년이 걸리는 원자력 발전소는 이자가 얼마인지에 따라 수출에 타격이 큰 산업"이라고 했다. 반면 환경단체 측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하더라도 폐기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들어가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텍소노미에 원전이 배제될 경우 SMR 개발에도 차질이 불가피 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는 SMR 개발에 1조5000억원의 예산 투입하겠다고 했다. 일본도 2030년까지 원전 용량을 3배 가량 늘린다고 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국제적 흐름인데도 정부는 2050년까지 원전을 6.1%까지로 축소하고 풍력과 태양광을 71%로 높이겠다며 전세계적인 흐름과 반대로 가고있다"면서 "녹색분류체계는 국제사회 요구사항도 아니고 시한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우리가 굳이 앞장서 나설 필요도, 실익도 없다"고 말했다.

국내 원전 운영을 총괄하는 한국수력원자력도 최근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수원이 최근 환경부에 보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안) 검토 의견’에 따르면 "원전은 탄소중립 및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목표 달성을 위한 주요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라며 "재생에너지 한계 및 불확실성, 무탄소신전원의 불확실성을 완화해 주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의 이용률 및 이용 시간 한계 등으로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달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발전시설 점유 면적이 작아 산림과 경작지 등 환경 보전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원전과 재생에너지 설비 이용률 등을 고려하면 태양광은 원전의 169배, 풍력은 37배 면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수원은 "원전은 원료수급이 용이해 국가 에너지 안보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며 "우라늄은 저장과 수송이 편리하고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아 수급이 용이하며 에너지 수입액 가운데 원자력 비중은 1% 이하"라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는 여전히 완강한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으로 만든 전기는 RE100(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일각에서 제기한 원전의 2050 탄소중립 역할론을 정면으로 일축했다. 또 "원전이 온실가스 감축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면서도 "높은 밀집도와 일본 후쿠시마 사태로 국민들이 안전한 에너지를 요구하고 있고, 사용후 핵연료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속적인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녹색분류체계 세부 적용 대상 등 확인 바탕으로 국내 원전사업은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의 독점 주도로 추진돼 외부 투자유치 부담이 적어 큰 영향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환경부는 향후 유럽연합 텍소노미 발표에 따라 포함여부를 변경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 LNG발전, 업계·환경단체 모두 불만

LNG 발전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340g CO2eq./kWh(설계명세서 기준) 이내이고, 설계수명기간 평균 250g CO2eq./kWh 달성을 위한 감축 계획을 제시하는 발전소에 한해 2030년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기술발전 수준을 봐서2035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길도 터놨다. 당초 알려진 배출량 기준(320g CO2eq./kWh) 보다는 다소 완화됐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날 민간발전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설치된 LNG 복합화력발전소의 경우 최신 기술을 적용한 최고 효율의 발전기일지라도 kWh당 350~360gCO2eq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신 제품을 사용한 발전소도 사실상 환경부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미세먼지 배출량을 최소화한 발전기 기술이 새로 개발되거나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 등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신기술을 적용해야 하는데, 2030년이라는 한시적 인정 제도 아래서는 기술개발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CCUS 등 기술이 상용화된 게 아니라 아직까지 실증 단계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2030년이 다 돼서야 적용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민간발전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발전사업은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되는 만큼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필수인데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놓으면 금융권에서도 아무래도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6월 민간 석탄발전사인 삼척블루파워가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아무도 사가지 않는 ‘미매각’ 사태가 벌어졌다. 삼척블루파워는 최근의 친환경 트렌드를 감안해 신용등급에 맞는 금리보다 100bp(1%포인트) 높은 연 3.391% 금리를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들은 석탄발전이 친환경에 위배된다는 회사 규정 탓에 투자할 수 없었다. 결국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발행된 회사채를 모두 떠안았다.

전력업계에서는 정부가 향후 석탄발전소 30기를 폐지하고 원자력도 순차적으로 줄이기로 하고 LNG발전 24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녹색분류체계에 LNG를 포함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미 사업허가를 받았거나 착공한 발전소 건설, 온실가스 배출 일정 수준 이하 발전소는 대상서 제외돼 영향 제한적이란 시각도 나온다. 더 나아가 환경단체들은 생산·운송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LNG를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후솔루션 소속 윤세종 변호사는 "LNG는 석탄의 70%에 가까운 온실가스가 나오는 에너지원이다. 녹색으로 인정한다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시설을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대규모 LNG 사업과 블루수소 제조사업이 녹색 투자금을 지나치게 흡수할 가능성이 높다. 굳이 포함하겠다면 녹색 채권과 전환채권을 따로 만들어 금융시장에서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환경부 "자발적 지침, 시장에 미치는 영향 파악해 수정해 나갈 것"

환경부 관계자는 "녹색분류체계는 법제도가 아닌 자발적 지침"이라면서도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적용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부가 대출을 막을 법적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녹색분류체계는 환경책임투자 지원을 위한 녹색분류체계 수립과 표준평가체계 도입 및 환경정보 작성·공개 대상 기업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이하 환경기술산업법)’을 근거로 수립되고 있다. 다만 세부내용에 대한 별도의 법적 근거는 없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고 하지만 이미 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상 금융권에서도 정권 눈치로 법적 강제력이 없음에도 석탄에 대한 지원을 전면중단했는데 LNG라고 다를 바 없다"며 "탄소중립과 NDC 목표달성을 위해 녹색분류체계가 필요하다면 법에 근거해서 시행령을 가지고 정확히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계획된 사업에 법적 강제력이 없는 녹색분류체계로 자금조달이 막히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소송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측은 "우리가 법적 강제력이 없다고 해도 시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이미 시장에 도는 이야기는 은행에서 대출을 축소할 거라고 하는데 명시적인 지침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금융이나 발전 분야에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사업을 통해 분류체계가 시장에 주는 영향을 파악하고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녹색분류체계를 일부 금융상품에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이후 개정을 거쳐 2023년엔 금융권에 본격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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