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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6일 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 수사 본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사건 관련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에 오른 그는 그 해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서거하자 10·26 사태 합동수사본부장이 됐다. 이후 그는 하나회 장교들과 군사반란을 도모했다.
군의 실권을 장악한 뒤 하나회 출신으로 군부를 재편한 그는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金)을 정치규제로 묶고 권력을 일거에 장악했다.
5·17 조치 다음날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 복원을 외치며 거리에 몰려나와 저항했으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 유혈 진압을 감행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짓밟은 전씨는 1980년 6월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국회를 해산시킴으로써 대통령 권좌를 확보했다.
같은 해 8월 대장 계급으로 군복을 벗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킨 뒤 그해 유신헌법에서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5공 독재 정권의 시작이었다.
5공 헌법을 만들고 1981년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언론 통폐합 조치와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학원가에는 안기부와 보안사 요원들을 풀어 학생들을 감시했다.
야당 인사와 학생들은 친북 용공 혐의가 씌워져 모진 고문을 당했다. 기업인들을 겁박, 통치자금을 조성해 부정축재를 일삼았고,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축재에 이용한 ‘장영자 사건’ 등 집권기 내내 각종 금융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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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5공 및 광주특위 합동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도중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불성실한 답변을 중단하라며 질책하는 모습. 연합뉴스 |
하지만 1987년 1월 서울 서빙고 대공분실에 연행된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로 덮으려 한 경찰의 발표는 6월 항쟁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
전씨는 4·13 호헌조치로 5공 연장을 획책했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굴복, 권력의 정점에서 떨어지게 된다.
전씨는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6·29 선언으로 여론이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상황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분열에 힘입어 6공화국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88년 11월에는 재임 기간 과오와 비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치자금 139억원과 개인재산 23억원 등 재산을 헌납한 뒤 이순자씨와 함께 강원도 백담사 유배 길에 올랐다.
1990년 12월 백담사에서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자택으로 돌아왔지만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와 12·12, 5·18 진상규명 및 관련자 처벌 등 과거사 청산 조치에 따라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1995년 12월 내란죄 혐의로 검찰의 출두 통보를 받은 전씨는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골목길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또 한번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집행돼 고향 땅에서 압송된 그는 한겨울 4평 남짓한 차디찬 교도소 독방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1997년 12월 대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구속 2년 만에 풀려났지만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전씨 측은 회고록 등에서 전두환 정권은 물가안정 등 경제성장 기조를 유지했고 88하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고 자체 평가한다. 장기집권을 획책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달리 7년 단임 약속을 지켰다는 점도 전씨가 내세우는 치적이다.
그는 지난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를 평화적으로 후임에게 이양한 것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자평했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와 영화 등 소프트 분야 발전에 나름 공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3S(스포츠·섹스·스크린) 정권’이란 말이 따라붙는 것에서 보듯, 문화를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해 민주화 열망을 꺾는 우민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전두환 전 대통령 연보.
△1931년 1월 18일 =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출생
△1951년 = 육군사관학교 11기 입학
△1979년 = 국군 보안사령부 사령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사태 수사. 12·12 군사반란 주도
△1980년 =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삼청교육대 설치. 대통령 간선제 및 7년 단임제 골자로 한 8차 개헌 실행. 11대 대통령 선거 당선. 대통령 취임
△1981년 =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대통령 취임
△1987년 =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발생. 4·13 호헌조치. 이한열 열사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 6월 민주항쟁 전국 확산.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6·29 선언 발표해 직선제 개헌 요구 수용
△1988년 = 대통령 퇴임.
△1989년 = 국회 ‘5공 비리 청문회’ 참석
△1994년 =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고소
△1995년 = 검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 헌법재판소, 불기소 처분 취소. 검찰,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 설치 후 재수사 개시. 사전구속영장 발부돼 안양교도소에 구속 수감
△1996년 = 5·18 사건에서의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 1심에서 사형과 2259억원 추징금 선고. 항소 후 2심에서 무기징역 감형과 추징금 2205억원 선고
△1997년 = 대법원 2심 선고 확정. 특별사면 후 석방
△2017년 = 회고록 출간. 조비오 신부 유족 등이 사자 명예훼손 혐의 형사고소. 광주지법 전두환 회고록 출판·배포금지 결정. 회고록 5·18 일부 내용 삭제 재출간
△2020년 11월 30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유죄판결
△2021년 8월 9일 = 사자명예훼손 혐의 항소심 재판 출석
△2021년 11월 23일 사망
wonhee454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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