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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올해부터 오는 2034년까지 15년 간 정부의 전력수급 방향을 담은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1년 간의 허송세월 끝에 빈손으로 마무리되게 됐다.
24일 계획 최종안을 내놓고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거쳐 연내 벼락치기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최종안의 내용도 지난 5월 발표한 초안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정부가 지난달 범 부처 차원의 추진전략까지 발표했으나 발전부문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최종안에 담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이번 공청회는 9차 전기본 날치기 확정을 위한 구색 맞추기이고 9차 전기본 내용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사로잡혀 핵심을 빠뜨린 부실 계획에 그쳤다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시간을 허비하고도 유명무실한 계획을 수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원 감사가 장기화하고 뒤이어 검찰 수사까지 이루어지면서 계획 주관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감사원과 검찰의 눈치를 보며 소극 행정을 펼치고 있기 때문으로 지적됐다.
23일 ‘산업부 소관 위원회 활동내역’에 따르면 올해 전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9차 전기본 회의는 지난달 24일 단 한차례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27일 이후 1년만이다. 그마저도 다른 안건들과 함께 상정됐으며 산업부가 심의위원들에게 통보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초안 발표 후 내용 수정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위원 21명 중 3분의 1인 7명은 불참 혹은 대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위원 21명 중 7∼8명 정도만 전력/에너지 분야 전문가이며 나머지는 갈등관리 전문가, 변호사,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으로 구성돼 이들이 ‘거수기’ 역할만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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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위원회 활동내역 |
한 전력정책심의위원은 "회의에서 이대로 가면 전기요금이 얼마나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업부 담당과장은 ‘계산해 보지 않았다’.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한 것도 다른 부서의 업무여서 모른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대대적으로 선언하고 목표달성 의지를 국내외 천명했는데도 산업부는 이를 9차 전기본에 구체적으로 현실성 있게 반영하지 않은 채 계획기간이 2034년까지란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9차 전기본은 24일 온라인 공청회, 28일 온라인 전력정책심의원회를 앞두고 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일년 내내 회의를 안하다 11월 말에 한 번하고 바로 확정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탈원전 정책,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에 눈치만 보며 손을 놓고 있다가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등이 이어지자 시한에 쫓겨 어쩔 수 없는 척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초안과 크게 달라진 것 없어...탄소중립 달성 여부 여전히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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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7일 산업부가 발표한 9차 전기본 5대 추진방향 제안. |
지난 15일 윤곽이 드러난 최종안을 보면 지난해 12월 공개한 9차 전기본 5대 추진방향 제안과 지난 5월 워킹그룹(실무작업반)이 발표한 초안과 큰 차이가 없다. 큰 틀에서 석탄과 원전은 줄이고 신재생에너지와 LNG는 늘린다는 방침은 유지한 채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 등을 반영해 5월 초안 대비 수요를 1.7GW 낮춘 게 전부다. △중장기 석탄감축 로드맵 제시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 △재생에너지 변동성 대응 △전력시장 제도개선은 담기지 않았다.
발전원별 비중 목표치만 구체적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발전원별로 석탄화력은 올해 57기(35.8GW)에서 2034년 37기(29.0GW)로 6.8GW 감축한다. 가동 30년이 도래하는 30기를 폐지하는 대신 이 중 24기는 LNG 발전기로 전환한다.
현재 가동 중인 24기 원전은 2034년 17기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원전별로는 고리 2·3·4호기, 한빛 1·2·3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가 설계수명을 채우면서 멈추게 된다. 논란이 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이번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 LNG발전 설비 용량은 올해 41.3GW에서 2034년 59.1GW로 확대된다. 같은 기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설비 용량은 그린뉴딜 정책을 반영해 중간목표만 높였다. 올해 현재 20.1GW인 태양광·풍력 설비를 2034년 77.8GW로 늘리되 2025년 누적목표를 기존 3020 이행계획 대비 12.8GW 늘어난 42.7GW로 상향 조정했다. 전체 전력설비용량은 올해 120.5GW에서 2034년 185.3GW로 64.8GW 증가한다.
2030년 예상 원별 발전량 비중은 석탄이 29.9%, 원전 25.0%, LNG 23.3%, 신재생 20.8%, 양수 등 기타 1.0% 순이다. 작년 발전량 비중은 석탄 40.4% 원전 25.9%, LNG 23.3%, 신재생 6.5%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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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 발전원별 비중. |
다만 수급안정을 위해 폐지석탄 30기 가운데 24기 12.7GW는 가스발전으로 대체 건설한다. 8차 계획 때 반영된 4기를 제외하면 2030년까지 16기, 2034년까지 추가로 4기가 각각 발전연료를 석탄에서 가스로 전환한다. 연료전환 대상 발전기는 모두 한전 자회사인 발전공기업 5사가 소유다. 전체 LNG설비용량은 올해 41.3GW에서 2034년 59.1GW로 17.8GW 증가할 전망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원별 설비용량은 변화폭이 큰 반면 발전량 비중은 신재생이 2배 이상 늘고 석탄발전이 감소하는 것 외에 차이가 없다"며 "결국 재생에너지를 약간 늘리고 원전과 석탄발전의 빈자리 대부분을 가스발전으로 채우게 되는데 이게 무슨 이산화탄소 저감이 되고 탄소중립(Net Zero)가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이제와 급하게 처리하는 이유는 월성1호기 수사결과에 따라서 정책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인데다 올해가 지나면 발전소 건설수요조사를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사업허가기간이 두 달도 남지 않았고 백지화 땐 수천억 매몰비용에 대한 책임문제 나올 수 있는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명확한 입장도 없이 9차 전기본 수급계획서 대상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