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 |
이런 문제들은 상당부분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모든 분야에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정치지도자가 소수 측근들의 의견에 의존하여 정치적 판단을 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는 우리가 무수히 보아왔던 시행착오로서 정권교체 때마다 경험하는 국가적 손실이며 그 부담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또 다시 정치적 변화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헌법상 워낙 많은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구조이다 보니 대선의 결과는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무척 크기 때문에 한 정권에 대한 평가 역시 경제적 성과에 따라 크게 달라져 왔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누가 또는 어느 편이 당선되든지 간에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 좋겠다는 소박한 기대를 하게 된다. 누구든 선거운동을 하면서 경제를 망치겠다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임기간 동안 시행한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외부적 요인으로 경제가 악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국가 경제의 상당 부분은 집권 세력의 정치적 역량에 따라 그 성과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얘기다. 그럼에도 환경에 도움을 주겠다는 정치적 판단과 행위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아우성이 최근들어 부쩍 많이 들린다. 탈원전, 수소경제, 탄소중립 등이 그 중심에 있다. 문제는 그동안은 일부 학자나 환경론자들의 담론 수준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전 세계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최근 유엔, 선진7개국(G7) 모임같은 국제기구를 비롯하여 글로벌 기업과 거대 금융기관까지 가세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환경이 뒤엉켜 있는 형상이다. 이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 주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고 엄중하다.
현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면한 고준위 핵폐기물 문제나 소형원자로(SMR) 기술개발에 초점을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임기 말에 들고 나온 수소경제도 뜬금 없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2005년으로 회귀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누구든 자료검색을 해보면 그 당시 상황이 어떠했으며 그 뒤 1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일인데도 마치 새로운 돌파구라도 발견한 것처럼 난리다.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업과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맡기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할 때 정부가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압권은 탄소중립이다. 지난달말부터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회의(COP)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대비 2030년 탄소배출량 목표를 당초 우리 정부가 잡았던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하여 발표하고 그 이행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한 순간 국제사회가 박수를 치고 찬사를 보냈지만 임기 말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목표 제시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과 기업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당장 급등하는 휘발유 값에 놀라 유류세를 인하하겠다며 국민감정에 민감한 정부가 엄청난 경제적·외교적 부담을 별다른 논의과정도 없이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길 정책을 차기 정부에게 떠넘겨 버리는 모습에 그냥 어이없어 할 뿐이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차기 정부를 책임지게 될 분들이 국가 미래를 좌우하게 될 수소경제와 탈원전, 그리고 탄소중립에 대해 전문성을 근거로 한 합리적인 방향을 분명히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