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0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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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기업가 정신 살려 저성장 파고 넘자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한국경제는 2024년 새해에도 그리 밝지 못하다. 대외적으로는 우크라니아-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중동 분쟁의 확산,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없는 불안 요소와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과 기업의 투자 둔화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요인으로 올해도 2% 초반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기 위축 이후 기저효과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기저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경기 회복력이 약화된 것은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완전고용 상태에서 물가상승을 일으키지 않는 최대성장률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 추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23년 OECD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 3.5%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낮아져 올해는 1%대 중후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하기 어려운 제도적 환경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 대다수 기업인들이 동의한다. 제도적 환경은 한마디로 '규제'다. 규제는 집행력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규제가 불합리하거나 과도해서 순응하기 어려우면 불합리한 제재가 수반되고 기업인들은 전과자가 된다. 법을 어긴 사람이라면 정치인, 기업인 가릴 것 없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에 동반되는 과도한 처벌은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을 꺾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막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2021년 한경협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6개 중앙부처의 경제관련 법령 301개 중 6568개의 기업 형벌 규정이 있다. 이 가운데는 이중 삼중 처벌도 있으니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인 과잉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하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만 대부분이 번번히 문턱을 넘지못한다. 이렇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개선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권에서 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인은 감시,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을 극진히 대접한다. 1995년 삼성전자가 영국 윈야드에 7억달러를 투자할 당시 영국은 투자금의 2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공장 준공식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왕실 유력인사, 정치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영국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조그마한 미지의 국가에 불과했겠지만,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제공한 것이다.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에 관련된 인사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검찰 기소로 시작된 사법적 다툼이 3년5개월이나 지난 2024년에야 겨우 1심이 끝난 것이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그간의 조사, 심리절차 등을 위한 시간과 재정적 비용, 돈으로 계산이 불가능한 기업과 기업인의 평판 훼손 등 해당 그룹과 경영자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검찰 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시선,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경영자들의 불안감 등 사회적 자본의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 그것이다.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린 셈이다. 기업인들은 최고의 예우를 기대하며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가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기업인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나아가 기업인의 공을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고, 후세들에게 부모세대만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렸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대구 전쟁으로 본 해양분쟁 해법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장 국민생선 대구(cod)는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아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는 입이 크다는 의미에서 대구(大口)라고 불리는 이 생선은, 사실 세계적으로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수산물로 갈 수록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한-미 통상문제는 물론이고 아이슬란드, 영국, 러시아,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과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을 사유로 국가간 분쟁을 낳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연근해와 북극해에서는 여전히 대구 어획량이 풍부한 편이어서 아이슬란드와 영국 사이에 수산자원의 확보에 관한 '대구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전쟁은 국지전에 불과한 소규모 전쟁이었지만, 포격전도 있었고 사상자도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영국 어부들이 아이슬란드 영해에서 대구를 남획하며 양국 어부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어선들이 해군으로 징발되면서 이러한 모습이 잠시 사라지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대구 어획을 목적으로 하는 영국 어선들은 다시 아이슬란드 영해에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자국의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국의 영해 범위를 지정하여 강력히 대응했고, 아이슬란드의 일방적인 조치에 영국 정부는 자국 어민들의 불만을 해결하고자 반발하며 전쟁에 이르게 됐다. 영국은 세계 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었고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에서 겨우 독립한 작은 국가에 불과했으므로 당시 아이슬란드의 대응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 전쟁은 시기에 따라서 제1차(1958-1961), 제2차(1972-1973) 그리고 제3차(1975-1976) 전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기별로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정부의 강경책과 영국 해군의 물리적 대응, 포격전과 외교적 협상 등이 이루어지는 모습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러한 과정에는 유럽경제의 변화, 냉전 시기의 국제안보,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등 국제사회의 큰 사건과 배경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이러한 국제정세를 활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아이슬란드는 영국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며 미국에 무기 구매를 의뢰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당시 소련 호위함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아이슬란드가 소련 무기를 구매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한다면, 이것은 아이슬란드에 주둔한 미국 해군이 철수하고 이 자리를 소련이 대체하면서 북해와 북극해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며 이른바 '200해리에 관한 해양수역법'을 통과시키는 등 아이슬란드를 끌어안고자 노력했고, 양국 사이의 분쟁은 NATO의 중재로 아이슬란드의 협상안이 관철되면서 종결되었다. 약소국 아이슬란드는 국민적 이해와 국제관계를 활용해 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승리한 셈이다. 양국은 원래 NATO라는 안보공동체에 속해있었고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자국민의 어업권 확보라는 당면한 이해관계에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구전쟁의 경과와 그 결과를 보면, 국익은 국가의 존립 기반이자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해양 거버넌스와 해양 자원의 확보를 위한 영해권 관할 문제는 동맹국 사이에도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으로 연결되며, 어업권 수호는 해양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핵심 사안이다. 그 형태와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대구전쟁이 오늘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때, 약소국이라도 영해권 또는 어업권 분쟁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아이슬란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그 내용이 이후 제정된 UN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에서도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개념으로 명시되었다. 이 규정으로 이제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수역에 천연자원 탐사와 개발 및 보존, 그리고 해양환경의 보존과 과학적 조사 등 모든 주권적 권리가 국제사회 전반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국제적으로 해상 영해권에 관한 분쟁은 국제법에 따라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의 통로를 열어두고 있는데, 실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해양 분쟁에 대해 과거보다는 성숙한 기준과 분쟁의 해결 방법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ICJ의 판정을 통한 분쟁의 처리는 당사국이 이 방법에 합의해야 성립한다는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해양강국인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시대의 또다른 복병 ‘멀미’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최근들어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전 인류의 최대 현안인 만큼 전기차와 수소차 등 무공해차 보급은 필연적이다. 단지 속도의 차이일 뿐이다. 전기차 보급이 주춤하는 사이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내연기관차는 찜찜하고, 전기차는 아직도 충전 등 이용에 제약이 많다 보니 연비가 좋고 비교적 친환경적이면서 중고차 가격도 높아 가성비 효과를 톡톡히 보는 탓이다. 사실 전기차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단점이 많다. 충전시간과 인프라 부족은 물론이고 화재·침수에 취약하고, 비상 시 대처방법도 내연기관차에 비해 까다롭다.내연기관차는 130여 년에 걸친 진화 끝에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 갖춰진 데 비해 전기차는 보급과 동시에 각종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며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멀미는 특히 전기택시 이용과정에서 승객이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승객 본인이 신체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빠른 차량과 크게 달라지면 바로 멀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기 택시의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승객의 전기택시 거부 현상도 부쩍 늘고 있다. 멀미 등 감각이 민감한 여성 승객 등을 중심으로 택시 호출 때 전기택시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전기차에서 멀미가 유독 심한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속도를 가속할 때와 줄일 때 회생제동을 심해 차량이 꿀렁거리기 때문이다. 파도가 심할 때 배멀미를 하는 원리와 같다. 전기차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속도를 줄일 때 제동장치가 동작되지 않아도 가속력을 발전기로 동작시켜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이를 다시 배터리에 재충전하는 에너지 절약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이 회생제동장치가 심하면 제동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제동하는 특성이 크고 회생에너지도 커져서 연비가 증가한다. 문제는 꿀렁거림이라는 특성이 크게 작동하며 탑승객의 멀미를 유발시킨다는 점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제동장치를 동작시키지 않아도 제동이 되면서 뒤따르는 차량의 추돌문제도 발생한다. 운전자가 제동장치를 동작시키지 않아도 제동이 되면서 뒤차가 브레이크등이 켜지지 않아 뒤차가 준비하지 못하고 추돌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등 여러 선진국에서 운전자가 제동을 하지 않아도 회생제동으로 인한 일정속도 감속 시 자동차용 브레이크등이 켜지는 의무장치 의무화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전기차 멀미를 잡는 방법은 화생제동 기능을 줄여서 기존 내연기관차와 같은 감각을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해도 가속특성이나 운전자의 운전 행태에 따라 멀미문제가 발생한다. 전기차의 멀미 문제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전기차용 다단 변속기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전기차용 다단 변속기는 즉 5단 이상이 되면 같은 배터리 용량으로 30% 이상 연비가 향상되고 높은 등판능력과 모터의 온도 유지로 냉각장지 축소나 제거 등 일석 십조의 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자동으로 속도가 올라가는 특성상 전기차의 급가속과 급감속을 이루어 전기차의 멀미 문제도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기차 멀미 문제의 해결은 단순하게 차량만 만드는 것이 아닌 탑승자의 선택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판단된다. 전기차 관련 업계는 전기차 판매가 주춤하는 지금을 각종 문제해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현재 시간 동안 각종 전기차 문제와 배터리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찾는 것도 좋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는 내연 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넘어가는 사이에 있는 '중간자' 역할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기차에서 가장 큰 단점으로 부각되는 충전과 가격 문제가 머지않아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는 가운데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배터리 수명연장과 충전소 설치등 인프라 확대, 저가 전략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미래산업 발목잡는 R&D 예산 삭감

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 변호사 올해 초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 2024)의 주인공은 단연 인공지능(AI)이라고 할 만했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참여해 역대 최다 혁신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혁신상을 받은 국내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중소벤처기업들이라 그 의가 크고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번 CES 2024 행사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전 산업 분야에서 기존 기술과 결합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보편적인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점차 산업과 국민 생활의 필수재로 자리잡는 추세지만 인공지능을 직접 개발하는 업체나 인공지능을 도입해 업무를 하는 기업들이 아직 제대로 수익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특정한 기술이 개발되고 상용화되어 실제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일정한 수요가 창출되어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폭발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미래 경제와 안보 등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핵심 요소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제 막 새싹이 나기 시작한 인공지능 산업은 화려한 꽃을 피울 때까지 많은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자체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 투자만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민간 투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고, 투자 이후 빠른 회수를 기본으로 한다.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인공지능 산업에 민간기업, 특히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벤처기업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를 하기에는 본래 성격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결국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멀리 보면서 지원을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지난해부터 과학기술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던 예산을 살펴보면 올해 연구개발(R&D)분야 국가예산은 2023년(31조 1000억원) 대비 15% 삭감된 25조 9000억원으로 최종 의결이 됐다. 전년도 대비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예산이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만에 처음이다. 국가 부도 위기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유지했던 예산을 줄인 것이다. 정부의 연구개발비 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공공기관과 공동으로 과제를 수행하던 인공지능 관련 중소기업이나 학계 연구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계약이 체결되어 수년에 걸쳐 진행하던 과제의 예산을 갑자기 줄이자는 협약 변경을 요구받거나 신규 연구개발 과제가 시작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협약 변경의 조건이다. 큰 틀에서 보면 연구개발 예산 삭감은 15% 정도지만 개별 연구과제에 있어서는 그 편차가 극심하다. 정부 산하기관과 체결된 계약에 따라 수년간 수행하고 있는 과제를 갑자기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이유로 적게는 30%, 많은 경우는 심지어 80%까지 기존 계약 내용보다 금액을 낮춰서 변경 계약을 요구받고 있다. 이미 체결된 계약에 맞춰 연구 인력을 채용하고, 시설과 장비를 구매했는데 이 정도 비율로 계약 금액을 변경한다는 것은 사실상 제대로 된 과제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벤처기업들은 변경되는 계약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대금 지급을 하지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변경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나마 변경되는 계약대금에 맞춰 과제 범위를 축소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때로는 기존 과제 범위는 유지한 채 계약대금 변경을 수용하라는 강요를 받기도 한다. 변경에 동의하지 않아 계약을 해지하면 향후 정부 과제 선정에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은근한 압박을 덧붙인다. 사정 변경에 따른 합리적인 수준의 변경 계약을 넘어 기업 간에서라면 불공정거래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연구개발비 예산을 삭감하면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인공지능 분야 현장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명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 과학기술 연구비 카르텔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휘두른 칼에 실제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인공지능 산업과 연구개발이 고사할 위기다. 정부가 앞에서는 인공지능 산업을 지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뒤에서는 자라나는 새싹을 자르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감독자 역할을 하는 한편으로 과도한 규제로 인공지능 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후원자 역할도 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 개선으로 뒤에서 밀어주고, 연구개발 지원을 통한 육성책으로 앞에서 끌어주는 인공지능 산업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한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유승민 활용법

얼마 전 필자는 에너지경제신문에 ‘한동훈 활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당시는 정치를 시작하기 직전의 한동훈을 비대위원장이나 선대위원장 등의 직으로 영입하자는 의견이 분분한 때였다. 이 칼럼에서 한동훈의 가장 적절한 활용법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에 전략공천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한동훈이 비대위원장에 부적절하거나 그 역할을 잘못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여기서 장황하게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용산(대통령실)과의 거리두기와 수도권 판세에의 영향, 그리고 실질적인 비대위원장 혹은 선대위원장으로서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이재명 대표를 지역구에 묶어두고 그의 사법리스크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바로 이재명 대표와 맞대결을 시키는 방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칼럼에는 쓰지 않았지만 만일 한동훈을 인천 계양을 지역에 공천한다면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을 것인가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당시 이 질문을 한 여권 인사 중 한 사람에게 사견임을 전제로 내 의견을 밝힌 바 있었는데, 비대위원장직은 유승민 전 의원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유승민은 보수적이며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젊은 세대와 여성들에게 지지도가 높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지방선거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는데 내부경선 과정에서 당시 당선인 측에서 김은혜 인수위 대변인을 밀면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것이 공정하거나 상식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본선에서 민주당의 김동연 후보에게 패함으로써 국민의힘은 수도권 중 경기도의 지방권력을 잃었다. 이것은 단순히 경기도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서울과 인천을 이겼는데, 경기도에서 패배함으로써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을 잃었을 뿐 아니라 바로 전 도지사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각종 의혹을 입증할 증거자료가 묻혀버렸다. 또 보수정당의 내부 분열이 탄핵의 강을 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앞세워 집권한 윤석열 정부가 그다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시작된 첫 사례였다는 점이다. 물론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크게 갈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정에서의 행보만이 아니라 이후 정치과정에서 현재의 국민의힘 주류와 많은 갈등을 일으켰고, 지금도 직설적 비판으로 윤석열 정부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무엇보다 보수통합을 이룰 수 있고, 당시 탈당을 저울질하던 이준석을 주저앉힐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여당 정치인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한 얼굴로 한 마디로 ‘불가능’이라고 했다. 그에 대해 나는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이고,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개딸 중심의 독재가 극심해지는 민주당과 용산 리스크 및 적어도 당시까지 리더십 부재로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상황을 고려할 때, 총선에서의 필승카드는 보수통합 외에는 없고 이를 수행할 현실적 대안은 유승민 비대위원장 카드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난 현재,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나름 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만 명품 백 소동으로 인한 용산발 리스크는 여전하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준석은 개혁신당을 창당해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러브콜에 유승민 전 의원은 "탈당은 없다", "공천신청도 없다"고 답했는데, "출마는 없다‘가 아니라 ’공천신청은 없다‘는 것은 스스로 국민의힘 승리에 힘을 보탤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수도권 승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유승민 전 의원을 적어도 수도권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서울이나 수도권의 민주당 거물 정치인 지역에 전략공천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길만이 이준석 신당으로 쏠리는 중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 여전히 많은 국민의힘 인사들은 유승민의 복귀에 부정적이고 일부 보수적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 사정이 과거의 관계나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따질 만큼 여유롭지 않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이 선거에 승리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물론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식물정부 상태로 전쟁과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한 국제관계를 극복할 방법이 있는가. 법안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지나갈 5년을 생각하면 AI 시대 국가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도 꿈에 불과할 뿐이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든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지금 쏟아내는 수많은 포퓰리즘적 지원 정책도 백약이 무효다.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 4·10 총선에서 질 때, 비로소 최악의 상황은 현실화될 것이다. 늦었지만 이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AI와 함께 여는 새로운 저널리즘 시대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4년 우리는 인공지능(AI)의 여명기를 넘어 성숙기에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다. AI기술은 생산성과 비용이라는 이점을 극대화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 재편을 이끌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딜로이트는 생성 AI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제품에 통합돼 지식근로자들이 효율적으로 작업하고 더 나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 미디어 분야도 AI에 의해 형성된 급류에 휩쓸리고 있다. AI는 뉴스의 제작, 배포, 소비 방식을 재편하고 있다. 이에 여러 미디어 기업들은 콘텐츠 큐레이션, 데이터 관리, 운영 효율화를 위해 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2024년의 저널리즘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광경이다. 이미 진행되는 도전으로 AI 시대에 더욱 빠르게 변화할 것들을 들여다 보자. 먼저 전통적인 광고에서 구독, 멤버십과 같은 직접적인 수익원으로의 전환이다. 로이터연구소와 옥스퍼드대학교의 2023년 디지털뉴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구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디지털 리더의 73%가 디지털 구독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하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의 뉴스 검색 감소다. 특히 다양한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플랫폼의 인기가 커지면서 전통적인 뉴스 콘텐츠는 갈 길을 잃고 있다. 다음은 AI활용이 늘어나면서 일어나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변화다. 미디어기업들은 뉴스의 백엔드 작업, 즉 데이터 분석 및 초기 보도 작업 자동화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일상적인 작업을 자동화하고 인간 저널리스트와 콘텐츠 제작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인적 자원을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스토리텔링에 집중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세계 최초의 AI 기반 24시간 TV 뉴스 방송국, NewsGPT의 설립처럼 저널리즘 분야에서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NewsGPT의 혁신은 AI가 뉴스 제작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창의성과 저널리즘 기술이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AI와 인간 기자가 공존하는 뉴스룸에서는 AI의 효율성과 인간의 통찰력 및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AI 저널리즘에서 언어 격차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확산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AI 도구는 영어 콘텐츠에 맞춰 개발됐지만 AI 활용이 늘어나면서 비영어권을 포함한 다양한 커뮤니티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글 콘텐츠를 영어권과 비영어권을 구분하지 않고 미디어 소비자 계층을 넓혀 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고 있다. 한편 AI를 활용한 콘텐츠 생성의 발달은 정보의 진실성을 판별하는 데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다. 특히, 딥페이크 기술은 저명인사의 이미지나 목소리를 실제처럼 재현할 수 있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저널리즘에서 AI의 윤리적 사용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예를들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가 이끄는 ‘저널리즘의 AI에 관한 파리 헌장’은 저널리즘에서 AI를 윤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지침이 있다. 디지털에 익숙한 오늘날의 미디어 소비자들은 매력적이고 개인화된 경험을 원한다. AI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 맞춤형 뉴스 피드와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개인화가 심화됨에 따라 동일한 견해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에코챔버(echo chamber)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미디어 기업이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고 개인화와 다양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인간과 AI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는 것이다. AI는 기본적인 보도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저널리스트가 심층 분석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이런 협업은 저널리즘의 신뢰성과 가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AI가 뉴스 제작에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미디어 소비자들이 AI가 뉴스 콘텐츠를 어떻게 생성하는지 이해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미디어 회사들은 이런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보다 정보에 밝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국 AI의 혁신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은 미디어 기업이 AI 활용 및 미디어 소비자에 대해 책임감 있게 접근함으로써 얻어진다. 미디어 기업은 AI를 활용하는 동시에 저널리즘의 근본 가치를 유지하는 균형을 바탕으로 정보의 수호자로서 역할을 계속 유지한다면 AI 시대에도 생존하고 번창할 수 있을 것이다.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이상호 칼럼] 북한의 전쟁위협 심각성과 핵 딜레마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새해 들어 북한 김정은의 전쟁 위협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의 공갈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지만, 최근의 양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는 ‘북’망동’,‘무모한 위협’이라고 경고하고 만약의 도발에 ‘몇배로 응징’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이지만 국제사회 여러 전문가는 최근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과연 북한이 한국을 무력 침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6·25 한국전쟁과 같은 전면적인 남침 가능성은 작다. 현재 북한군의 전투력이나 전쟁 준비 수준을 보면 장기적인 전면 재래식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구소련 무기 위주로 무장한 북한군의 전투력은 생각보다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단기적·국지적 기습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수준의 단발적인 기습 공격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최악의 상황에서 한국 및 주변국에 대한 기습 핵 도발도 가능하다. 김정은이 정권의 종말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이기 때문에 쉽게 결심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런데 북한은 승리하기 어려운 전면 전쟁 위협을 왜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는 걸까. 첫 번째는 오는 4월로 예정된 한국의 총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 한국 선거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을 시도했다. 둘째, 무기와 탄약 지원을 계기로 개선된 러시아와의 관계가 김정은에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현금과 첨단 무기체계, 최신 기술 등을 제공받게돼 한국과의 수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셋째, 올해 미국 대선에서 김정은에 우호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 북한의 핵 보유 인정, 미국의 북한 체제 안전보장, 주한미군 철수 실현 등 북한의 염원을 달성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외부 위협 과장과 군사 대응을 빌미로 어려워진 북한 내부 상황 극복과 주민 결속을 위한 계산된 언동으로 봐야 한다. 우선 김정은 일가의 권력 다툼 가능성이다. 김정은의 부인인 이설주와 여동생인 김여정이 후계 문제로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김정은이 후계 체계를 서둘러 강화하고 있다는 판단도 있다. 다음으로는 최근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러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과연 북한은 어떤 상황에서 한국과의 전쟁을 감행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무력과 전쟁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수단이 됐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위협, 하마스 이스라엘 공격 등 국제사회에 불법적인 군사 도발 행위가 확대되고 있다. 당연히 북한도 이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협력하여 미국과 서방에 대한 본격적인 체제 대결을 시작하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북한은 한국과 전쟁이 손해나는 장사가 아닐 수 있다고 계산할 수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한국은 미국 없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는 최근 미국 전문가들의 주장이 북한의 오판 가능성에 더 힘을 실어준다. 한국군이 선방하더라도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고 북한과 협상을 통한 평화나 항복까지 주장하는 한국의 반국가 세력이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북한의 한국 무력 적화통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북한이 막말을 하고 노골적인 전쟁 위협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핵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동북아 전쟁 발생 시 한국을 지원하지 못하고 한국에 대한 핵우산 제공 결의가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한국은 결국 핵무장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오는 11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벤트다. 김정은은 내심 자기에게 호의적인 트럼프의 대통령 복귀를 기대할 것이다. 한국도 이에 대비해 트럼프 행정부에 핵 보유 또는 보유 잠재력을 인정받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이슈&인사이트] 1기 신도시 재건축, 미래형 도시로 판 키우자

우리나라의 본격적 신도시 건설이 이루어진 것은 수도권 5개 신도시개발 이후이다. 1950년대의 토지구획정리사업이나, 1960~1970년대의 울산 등 공업도시 건설은 넓은 의미의 신도시로 볼 수 있으나, 신도시개발의 본격적 도입 시기는 1980년대 말 수도권 5개 신도시개발이다. 이러한 대규모 신도시가 개발된 배경은 주택공급 정책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주택공급 부족으로 부동산 문제가 심화되고 대도시 내부에 더 이상 개발할 대규모 토지가 없어 개발제한구역을 벗어나 주변 도시로 눈을 확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 사회적 현실의 해결방안으로 주택건설 200만호를 정하고 수도권 중심으로 신도시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수도권 5개 신도시는 택지개발촉진법을 근거로 개발됐다. 택지개발촉진법은 토지구획정리사업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1980년에 만들어진 특별법으로 개발사업의 발목을 잡는 각종 협의나 심의 과정을 생략하고, 공공이 직접 개발을 주도해 단기간에 계획적으로 개발사업을 이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토지소유자들을 재산권 행사를 제약했다. 단기간에 저렴한 주택을 효율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일정 시간이 경과된 이후 노후화로 인한 일시적인 대규모의 정비물량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주택용지를 빠르게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자족기능의 한계와 대규모 주택공급에 따른 대응정책이 마련돼야 한계점을 노출했다. 택지개발촉진법도 최근에 다양한 개정이 이뤄졌으나 노후된 신도시의 재정비를 위한 제도적인 수단이 병행돼야 하는 시점이다. 신도시의 건설을 위해서는 도시계획가는 물론이고 도시설계가, 건축가, 토목엔지니어, 도시와 관련된 전문가가 모두 동원돼 종합적으로 설계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새로운 도시모습을 예측하고 건설하는 종합예술인 것이다. 5개 신도시는 과거 어느 신도시나 택지개발사업지구보다 주거용지율이 낮게 책정됐고, 도시 환경수준의 제고를 위한 공공시설용지를 많이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상업용지가 과다하게 지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며, 도로용지율도 기존도시에 비해 다소 과다하게 계획됐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도시의 공업지역 등 자족용지의 비중이 3~5% 정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수도권 5개 신도시의 자족적 토지이용은 부족하다. 자족성 확보를 위한 토지이용은 대부분 업무시설 유치를 위한 상업업무용지 계획으로 이뤄졌으나 초기 일자리와 연계된 대규모의 기능유치가 여의치 않아 많은 미분양토지를 발생시켰다. 상업용지 과다공급으로 인한 주상복합 용지의 변경과 학교수요의 변화에 따를 정책변경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단편적 정비정책에는 한계가 있으며 근본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가 신도시 모델로 삼았던 이 영국의 대규모 신도시 ‘밀턴케인즈’는 신도시개발 이후 일정 시점이지나 재정비 정책을 추진했다. 여기에서 핵심은 중심상업지역 정비정책을 우선순위로 설정한 점이다. 또 각종 도시 차원의 기반시설 노후화에 대비해 ‘밀턴케인즈공사’를 설립해 대규모 기반시설의 정비를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민과 조합중심의 재건축이 이루어질 경우 신도시 전체와 생활권 차원에서 중요한 ‘공공기반시설’의 정비가 제외될 가능성이 높거나 주민 부담으로 가중될 우려가 높다. 이러한 공공기반시설은 별도의 정비정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하며,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이 절실한 부문이다. 최근 정부는 주택수요 해결의 주요 수단이었던 1기 신도시의 과거를 벗어나 미래지향적 재정비를 도모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다. 특별법은 주민주도 재정비와 공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다양한 지원정책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신속한 절차와 각종 지원방안이 법안에 마련됐고, 지자체는 행정적 지원을 위해 신도시별로 마스터플래너(MP)지원단을 마련하고 각종 인허가의 간소화를 병행해 추진될 예정이다.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신도시별로 정비계획을 마련하는 등 신도시에 대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마련 중이다. 이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방안이 필요하며, 계획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용적률 상승으로 인한 경관적인 시뮬레이션과 경관계획에 대한 고려도 중요한 사항이다. 청년층 주거공급을 위한 역세권, 이주대책을 위한 지역 등 특별정비가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용적률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되 경관적으로 다양한 대응정책을 마련해 바람직한 도시경관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정비과정에서 미래지향적인 친환경 에너지설계와 ‘탄소제로단지’적용 등 스마트한 단지설계도 요구된다.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설계와 적용으로 노후계획도시의 미래가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고 국제적인 모범사례가 되길 기대해 본다.이범현 성결대학교 도시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 / 한국경관학회 부회장

[이슈&인사이트] 對美·對中 수출

지난해 12월 미국이 중국을 넘어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으로 다시 부상하면서 향후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어느 나라가 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대미 수출액은 113억달러로 중국을 제치고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이 됐다. 월간 기준으로 미국이 우리의 최대 수출국에 오른 것은 2003년 6월 이후 20년 6개월 만이다. 대 미 수출이 꾸준히 늘어나는 데 비해 대 중 수출은 줄어들면서 중국에 대한 수출비중도 낮아지며 대 중국 의존도가 약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중 수출은 전년에 비해 19.9% 줄어든 1248억4000만달러로,우리나라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2022년 22.8%에서 지난해 19.7%로 줄었다. 반면 대 미 수출은 1157억2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5.4% 늘어 대미 수출 비중이 18.3%까지 확대됐다. 대중-대미 수출 비중은 1.4% 포인트로 좁혀졌다. 대중 수출의 감소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반도체를 비롯한 중간재 수출 부진의 영향이다. 이에 비해 미국으로의 수출 증가와 대비 수출비중 확대는 자동차, 기계, 이차전지의 수출 호조세에 힘입었다. 미국이 20여년만에 중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자리를 꿰차면서 이제는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넘어서는 현상이 일시적인지,아아니면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일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대미 수출액의 2배를 웃돌았다. 홍콩을 통한 우회 수출까지 포함하면 무려 3배에 달했을 정도로 중국의존도가 높았다. 그렇다면 왜 갑작스럽게 대미 수출이 대중 수출을 초과하게 됐을까. 단순히 볼 때 대중 수출이 급감한 데 비해 대미 수출이 급증한 영향이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 감소 요인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대중국 투자 감소, 중국산 원자재 및 중간재의 한국산 대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단기적으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반도체 수출의 급감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수출은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의 1위 품목일 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물론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물량 자체가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출액 자체가 크게 줄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중국(홍콩 우회 수출 포함) 반도체 수출액(MTI3 기준)은 2022년 715억달러에서 지난해 542억 달러로 급감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반도체 가격 회복세에 힘입어 지난해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지난해 10월 저점을 찍고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대중국 수출도 개선되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가격이 본격적으로 회복될 전망이어서 대중국 수출은 다시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대 중국 무역수지도 흑자로 다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증가는 우리나라 기업의 대미 투자 증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와 전기차 및 배터리 부문에서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상당한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우리나라 관련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한국계 기업들이 반도체와 전기차 및 배터리 부문의 중간재를 수입하면서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증가를 유발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유관 부문 보조금이 10년 정도 예정되어 있어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관련 부분의 중간재 수출도 덩달아 증가할 전망이다. 물론 미국 대선에서 어느 진영의 후보가 당선되느냐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수입 통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실제로 수입통제가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는 어부지리로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를 대체할 기회를 갖게 된다. 현 시점에서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 될 것인가를 논하기에는 상당히 변수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은 앞으로는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의 대미 투자가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국이냐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변수들에 대처하기 위한 모니터링과 대응책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 나아가 어느 시장에 더 집중하느냐 하는 논쟁보다는 양대 시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략할 것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윤덕균 칼럼]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R&D에서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 입국의 초석을 닦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5년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은 월남전 참전 대가로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을 요구했고, 미국으로부터 841만달러(현재 가치 약 600조 원)을 원조받아 그 이듬해에 KIST를 출범시켰다. 이후 AID 차관 600만 달러와 미국 수출입은행 1160만 달러의 차관으로 1971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을 발족하면서 박 대통령의 ‘과학 입국’ 토대가 완성됐다. KAIST는 2021년까지 박사 1만4418명, 석사 3만5513명, 학사 1만9457명 등 총 6만9388명의 과학인재를 양성했다. 현재 삼성전자 등 대기업 박사인력의25%, 공과대학 교수 20%, 중견·벤처기업 CEO 20%를 배출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력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과학기술 인식에 대한 일화가 있다. 과기처 장관 출신인 최형섭 초대 KIST 소장의 회고다. 최 장관은 취임 3년이 지나자 1974년 장관직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KIST 방문에 동행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과학 입국에서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를 물었고, 최 장관은 "장기정책"이라고 말하자, 대통령은 "과학 입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기정책이라는데…"라면서 사직서를 반려했다. 최 장관은 8년 7개월의 최장수 장관이 됐다. 진보의 가치가 파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분배의 정의라면, 보수의 가치는 파이를 키우는 생산의 정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간의 연설문을 분석한 결과 ‘자유, 국민, 경제’로 나타났다. 여기서 국민을 민주로 바꾸면, ‘자유-민주주의-경제’라는 보수의 가치가 나온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경제를 통해서 파이를 키우는 생산의 정의가 실현된다. 그 중간 과정에 과학기술이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생산적이다. 자본가는 노동의 가치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의 착취론에 슘페터는 기술 혁신론으로 대응했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전 재산을 집중해 반도체 기술을 개발했다. 그 결과로 한국 반도체산업을 만들었다. 그것이 ‘노동의 착취냐, 노동(일자리)의 창조냐’라는 논지다. 투기를 일삼는 자본가는 노동의 착취다. 반면, 기술 혁신을 통해서 노동을 창출하는 자본가는 보수의 가치다. 보수는 R&D를 통해서 미래를 창조하고, 진보는 복지를 통해서 현재를 향유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선 보수는 R&D 예산을 깎고, 진보는 이를 증액하려 한다. 아이러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R&D 예산을 25조 9000억 원으로 올해(31조100억원)보다 16.6%를 줄였다. 이에 따라 R&D 예산 비중이 4.9%에서 3.9%로 줄었다. IMF 외환위기 때도 없던 33년 만의 R&D 예산 감축이다.윤 대통령의 2023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민간위원 오찬 간담회 모두 발언 ‘과학 입국’이 공허하게 들린다. 여야간 막판 절충으로 6000억원을 증액하는 걸로 마무리 됐다. 과학기술계가 분노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이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나눠 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 발단이 됐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장기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할 ‘국가 R&D 중장기 투자 전략’이 휴지가 됐다. 1년간 준비한 2024년 R&D 예산이 폐기되고, 3일 만에 졸속 안이 만들어졌다. 공익성을 주로 하는 국가 R&D 평가와 효율성을 주로 하는 사기업 R&D 평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가 R&D 사업은 국가적으론 필수로 민간 영역에서 참여하지 않는다. 사기업 R&D 척도로 보면 전부 낙제점일 수 밖에 없다. "R&D는 가난한 고로, 가난하다"라는 중소기업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 나는 첩경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는 R&D 여력이 없다. 이런 처지가 지방 이공대학도 같다. 그것을 국가 R&D가 길을 터 줘야 한다. 돈이 되고 사업성이 있는 연구는 여유 있는 대기업이 하면 된다. 효율보다는 공익적이고 범용적인 연구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 국가 R&D 분배 철학이다.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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