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2월 미국 볼티모어의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은 1시간도 안돼 삽시간에 주변건물로 옮겨붙었고 당시 볼니모어시가 보유한 24대의 소방차와 8개의 사다리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워싱턴 D.C., 뉴욕시, 필라델피아 등 주변에서 소방차와 장비가 동원됐지만 장비가 소화전과 연결호스 규격에 맞지 않아 화재진압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불길은 번저 도시 전체를 삼키며 잿더미로 만들었다. 당시에 주마다 각기 다른 소방장비의 표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큰 대가를 치른 후 미국에서 소방안전 장비 표준화가 이뤄졌다. 요즘 공중화장실에서 한 줄 서기는 생활표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 줄 서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화장실 칸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운이 나쁘면 늦게 줄을 선 사람이 빠르게 문이 열린 칸에 먼저 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공공안내 표시나 그림 표지를 보게 된다. 공공안내 그림 표지는 그야말로 천 마디 말보다 1개의 그림이나 표시로 더 빨리 더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남성 모습으로 표시해온 비상출구 표지에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도 추가한다고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비상구 유도등에 '치마 입은 여성' 도안을 추가해 혼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표준화된 그림 표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의미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국제교류가 확대 될수록 국제 공통의 표시나 표준을 중시한다. 표준은 물품이나 용역에 관한 품질, 성능, 시험방법 등을 단순화·통일화하는 문서다. 표준화는 품질의 개선, 생산능력의 증대 기타 생산의 합리화, 거래의 단순화 및 사용·소비의 합리화와 함께 공공복지 증진에도 기여한다. 표준은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못 느끼지만 없으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생활 주변의 침대 등 가구, 차량 부품 등 수 없이 많은 제품에 표준이 적용되고 있다. 제품 뿐만 아니라 제품, 서비스, 시험, 검사, 국가 간의 무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표준이 활용되고 있다. 표준은 소비자의 편리성 확보외에도 기업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한다. 시장에서 먼저 표준이 정해지는 소비제품의 표준은 기업 경영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표준의 중요한 목적인 호환성은 기업 생산공정의 혁신, 신기술개발 촉진 등을 촉발한다. 표준화는 생산비용을 감소시키고 생산자 및 소비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글로벌 경제하에서 국가 간 무역이 확대되고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이 많아지고 자유로와짐에 따라 국제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무역의 80% 정도가 표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 WTO/TBT 부속서에는 국가 간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국제표준이 존재하는 경우 각국은 국제표준을 국가표준으로 받아들여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각국은 국제표준을 소비자 안전과 편익, 환경 보호 등을 위한 각종 규제와 기술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 받고 있다. 과거 표준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유형적인 분야에 적용됐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다양화되면서 무형의 서비스, 안전, 소비자 분야로 확대되며 일상생활에서 표준이 적용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최근 AI 및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관련 제품 및 서비스에소 표준이 제정되는 추세다. 한편으로 소비자는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 다양성 속에서 안전, 환경, 편익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표준이 이처럼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았는 데도 일반 소비자들은 표준을 국가나 기업 등 남의 일처럼 생각할 정도로 인식 수준이 낮다. 소비자 주권 확보 차원에서도 국가나 세계 표준 제정에 참여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