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20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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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소비자 주권과 표준화

1942년 2월 미국 볼티모어의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은 1시간도 안돼 삽시간에 주변건물로 옮겨붙었고 당시 볼니모어시가 보유한 24대의 소방차와 8개의 사다리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워싱턴 D.C., 뉴욕시, 필라델피아 등 주변에서 소방차와 장비가 동원됐지만 장비가 소화전과 연결호스 규격에 맞지 않아 화재진압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불길은 번저 도시 전체를 삼키며 잿더미로 만들었다. 당시에 주마다 각기 다른 소방장비의 표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큰 대가를 치른 후 미국에서 소방안전 장비 표준화가 이뤄졌다. 요즘 공중화장실에서 한 줄 서기는 생활표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 줄 서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화장실 칸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운이 나쁘면 늦게 줄을 선 사람이 빠르게 문이 열린 칸에 먼저 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공공안내 표시나 그림 표지를 보게 된다. 공공안내 그림 표지는 그야말로 천 마디 말보다 1개의 그림이나 표시로 더 빨리 더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남성 모습으로 표시해온 비상출구 표지에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도 추가한다고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비상구 유도등에 '치마 입은 여성' 도안을 추가해 혼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표준화된 그림 표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의미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국제교류가 확대 될수록 국제 공통의 표시나 표준을 중시한다. 표준은 물품이나 용역에 관한 품질, 성능, 시험방법 등을 단순화·통일화하는 문서다. 표준화는 품질의 개선, 생산능력의 증대 기타 생산의 합리화, 거래의 단순화 및 사용·소비의 합리화와 함께 공공복지 증진에도 기여한다. 표준은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못 느끼지만 없으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생활 주변의 침대 등 가구, 차량 부품 등 수 없이 많은 제품에 표준이 적용되고 있다. 제품 뿐만 아니라 제품, 서비스, 시험, 검사, 국가 간의 무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표준이 활용되고 있다. 표준은 소비자의 편리성 확보외에도 기업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한다. 시장에서 먼저 표준이 정해지는 소비제품의 표준은 기업 경영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표준의 중요한 목적인 호환성은 기업 생산공정의 혁신, 신기술개발 촉진 등을 촉발한다. 표준화는 생산비용을 감소시키고 생산자 및 소비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글로벌 경제하에서 국가 간 무역이 확대되고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이 많아지고 자유로와짐에 따라 국제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무역의 80% 정도가 표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 WTO/TBT 부속서에는 국가 간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국제표준이 존재하는 경우 각국은 국제표준을 국가표준으로 받아들여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각국은 국제표준을 소비자 안전과 편익, 환경 보호 등을 위한 각종 규제와 기술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 받고 있다. 과거 표준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유형적인 분야에 적용됐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다양화되면서 무형의 서비스, 안전, 소비자 분야로 확대되며 일상생활에서 표준이 적용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최근 AI 및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관련 제품 및 서비스에소 표준이 제정되는 추세다. 한편으로 소비자는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 다양성 속에서 안전, 환경, 편익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표준이 이처럼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았는 데도 일반 소비자들은 표준을 국가나 기업 등 남의 일처럼 생각할 정도로 인식 수준이 낮다. 소비자 주권 확보 차원에서도 국가나 세계 표준 제정에 참여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안전카르텔’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법률가 키르히만(Kirchmann)은 “법률가는 엉성한 실정법으로 말미암아 튼튼한 나무를 버리고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벌레가 되고 말았다"고 일갈했다. 이 주장을 안전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빗대어 말한다면 로펌뿐만 아니라 정부, 안전컨설턴트, 안전학계 등이 '카르텔'을 형성해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썩은 나무에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안전이 흔들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카르텔의 중심에 학계가 있다. 안전학계는 우리 사회의 안전에 관한 중요이슈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안제시는커녕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학회 학술대회에 학술토론이 없고 학회가 친목단체와 다를 바 없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더욱 학계로서의 전문적 권위는커녕 존재감조차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에 편승해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데 급급한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안전에 관한 학문적 역량이 의심스러운 '무늬만 학자'인 자들이 교수라는 감투를 쓰고 엉터리 연구와 자문, 평가를 하면서 안전을 오염시키고 있다. 학자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는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안전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관심을 악용해 아예 드러내놓고 '학위 장사'를 한다. 로펌과 안전컨설팅기관은 공포마케팅을 통해 '묻지마' 컨설팅을 부추기고 있다. 안전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이들은 실질적 안전이라는 염불보다는 돈벌이라는 잿밥에 여념이 없다. 엉성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기 삼아 기업을 대상으로 한몫 챙기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안전관계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아마추어들이 대놓고 전문가 행세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과 공포분위기 조성이 아마추어의, 아마추어에 의한, 아마추어를 위한 안전컨설팅 시장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휘둘리거나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기업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동조합도 겉으로 내거는 명분과는 달리 안전카르텔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장하고 있다. 소위 강성노조일수록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은 따지지도 않고 엄벌만능주의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 이들은 평상 시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안전을 주로 회사 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노조입장에선 모호하고 지키기 어려운 법일수록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만큼 좋은 법이 없을 것이다.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줬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기관은 CEO를 피의자로 소환하고 본사를 손쉽게 압수수색한다. 실제로 로펌과 대기업에서 수사기관 출신 '전관'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법원칙에 맞지 않는 자의적 법집행의 남발은 기업으로 하여금 '전관'을 찾게 하는 주범이다. 기업에게 예방역량 강화라는 정공법보다는 편법을 동원하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업중지명령 해제위원회'라는 제도와 이의 자의적 운영이 전관을 이용해 작업중지명령을 빨리 해제하도록 로비하게 하는 꼼수를 쓰게 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후 남발하는 안전보건진단명령도 흑심을 품은 전관이 활개 치게 만드는 온상이 되고 있다. 경험상 실질적 재발방지보다는 전관을 활용한 대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산업안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잘못된 법제도와 그 운영이 안전카르텔의 텃밭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되레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주무부처에 이 문제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안전카르텔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제공한 측면이 크지만, 이 문제를 방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윤석열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안전카르텔에 손을 대는 것은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정의와 공정과도 부합한다. 정부가 힘 있게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하려면 역시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정진우

[이슈&인사이트] 한국 핵무기 보유, 만병통치약 아니다

북한이 최근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군사 위협을 강화하면서 한국 국민의 70% 이상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여러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 여론만 보자면 한국의 핵무장은 시간문제일 뿐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이에 국내외 여러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한국 핵무장시 이해득실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찬성 측은 북한 핵에 대응에 가장 효과적이고 핵무기 없이 북한에 대한 전쟁억제력을 가질 수 없으며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측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 훼손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국제사회의 외면과 비난을 초래해 고립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많은 비난과 고립 가능성을 무시하고국가 안보 위협을 내세워 핵무장 목표를 달성했다. 핵무장 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국제사회는 결국 이들 국가의 핵 보유를 인정하거나 묵인했다.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 사례를 보면 한국의 핵무장도 당위성 확보가 가능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최고의 억제력은 핵무기이고 핵 보유가 장기적으로 국가안보를 보증할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의 핵 보유는 중장기적으로 국방력 약화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북한 핵 등 안보 위기와 함께 급격한 인구 감소 및 복지 예산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압박이 크다. 핵 보유는 초기에 개발과 보유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재래식 전력을 축소해 예산도 절감하고 병역 자원문제도 해결해 복지 예산을 확충하는 대안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핵 보유가 국방력 약화를 초래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초기 핵무기를 대규모 병력이나 대포, 로켓 등 보다 성능이 좋은 대량파괴 무기로 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한 재래식 전력을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1960~1970년대 '핵우선사용' 원칙을 고수하며 재래식 전력 증강을 등한시한 결과 1980년대 핵무기와 함께 강력한 재래식 전력도 확보한 소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미국이 핵무기로 일본을 굴복시킨 1945년 이후 핵이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핵무기는 가공한 파괴력을 가진 최고의 무기이지만 국가의 절대 무력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대안이지 전쟁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재래식 침공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핵전쟁을 회피하고자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결국 핵전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나토는 많은 재정적 출혈을 감수하며 재래식 전력을 확충하여 서방의 핵 억제력의 신뢰와 효용을 제고했다. 핵보유국의 재래식 전력이 약하면 오히려 전쟁에서 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어려운 선택이었다. 현재 동북아 상황은 한국이 핵을 가져야 할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인정한다면 한국이 핵 보유에 나서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훼손할 정도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밀어붙일 동기는 부족하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 안전보장과 핵우산 제공을 포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수 있다. 한국은 성급하게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기보다 미사일 등 투발 수단, 원자력추진 잠수함 등 관련 분야 기술을 확보하여 향후 핵 보유에 대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핵무장을 통한 궁극적인 국가안전 보장은 정교한 한국만의 핵과 재래식 균형 전략에 기반을 둬야 한다. 국제사회가 핵무장을 지지하더라도 중장기적인 '핵무장의 저주'를 피해야 한다. 핵무기는 전쟁에 사용하지 않기 위해 보유하는 모순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한 많은 국민이 재래식 전력 유지를 위한 노력을 거부할 수 있다. 이런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는 최후의 보루이자 국가를 보호해 주는 보험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이상호

[이슈&인사이트] 북한의 ‘적대적 두국가’ 선언과 한국의 대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하면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속조치로 조평통,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추진기구를 폐지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 온 단체들을 정리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조국통일 3대 헌장기념탑도 철거했다. 북한의 '통일'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시도와 흡사하며, 김일성 정권 이래 견지해 온 '민족자주' 통일노선을 파기하게 셈이 된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두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체제를 유지하고 흡수 통일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다. 남북관계를 독립된 주권국가 관계로 하는 것이 후계구도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 치열한 체제경쟁의 결과, 한국은 선진적 중견국이 되었으나,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위기·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한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탈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정치적·국제법적으로 완전히 단절해 흡수 통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둘째, 남한을 향한 핵사용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격적 성격이다. 북한은 2022년 4월 5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의 무력화를 위해 핵 사용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한국이 대상임을 천명했다. 이제 김정은이 '적대적 국가 간 관계' 선언을 통해 한국을 동족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이자 타자로 정체성을 규정하여 핵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했다. 셋째, 긴장을 조성해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11월 미 대선 이후 미국과의 담판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넷째, 외교 전략 공간을 확대하려는 심산이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북러 밀착, 나아가 북·중·러 북방 3각 연대 가능성 등 현 국제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보다 가까워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및 미국과의 수교 교섭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두 개의 국가' 선언은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함을 인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통일 추진의 당위성이 약화된다.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주변 4강 등에 대한 통일 외교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중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생겨 북핵문제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남북한 특수한 관계' 원칙 아래 처리해 온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헌법 개정 문제 대두가 대두되고 이념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북한내 급변사태 발생시 한국의 개입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데, 한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로서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2국 체제'에서는 개입이 어렵다. 한편으로 김정은의 '두 개 국가' 선언은 북한의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게 부담을 덜어줘 한국과의 재수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에 대한 불만으로 외교단 소식을 전할 때 쿠바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쳐 한-쿠바 재수교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두 개 국가' 주장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선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로서는 역대 남북 합의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위기관리에 주력하되, 주변 4강에 대한 외교 전략을 치밀하게 가다듬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이 대내외 실상을 보다 더 많이 알게해 체제붕괴 등 내부 변화가 생기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거시경제학으로 본 의료개혁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심장부인 한국은행 조사국에는 J.M. 케인즈의 어록이 걸려 있다. 케인즈는 순수한 시장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경제 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거시경제학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이 분야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제학 분야이다. 필자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의료개혁과 같은, 겉보기에 경제학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건강보험부터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경제학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보자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필수의료 서비스의 부족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시 추가적인 규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 시스템은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현재의 의료공백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다. 경제원론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수요가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가격도 상승한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반면,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량은 증가하고 공급량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는 필수의료(급여) 서비스의 가격이 포괄수가제 등을 통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요량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공급량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가격통제에 의해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암시장이 형성돼 수요공급의 균형을 이루지만, 의료서비스라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는 암시장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은 지속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졌다. 이론상으로 필수의료는 더욱 수요량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료비가 저렴한데 건강보험은 중복지급되니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은 같은 상병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해 중복진료를 받는다. 이런 중복지급은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적일 것이지만, 급여진료에 대해 병원에 지급되는 수가는 원가 이하 수준으로 책정돼 재정 고갈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의 상황은 어떠할까? 회사든, 정부든, 개인이든, 적자는 결국 파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원도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비급여 진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의료개혁 방안은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의사 수를 매년 2000명씩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매년 2000명의 새로운 의사들을 의료서비스에 추가 투입한다고 해도, 과연 필수진료과목인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의 수가 증가할까? 이 정책은 마치 실패가 예상되는 사업에 창업을 권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직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찾고,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는 것이 일반적인 목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특정 산업에만 적자가 불가피한 직업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의료분야로의 과도한 진입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체 의료분야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정책이 의료분야를 더 이상 선호되는 직업경로로 만들지 못한다면, 정부가 추가로 확대하려는 2000명의 의대 정원은 과연 누가 채우려 할까? 이는 단순히 대학 입시 문제를 넘어서 의료 분야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재평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수현

[이슈&인사이트] 국가주도 양육·보육 대전환 안되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태어나는 아이 1명당 0세부터 7세까지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첫만남이용권 등을 합쳐 총 2960만원의 현금성 지원 혜택을 받는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보육기관을 이용할 때 보육료나 가정에서 보육할 때의 양육수당 등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출산을 하면 따라오는 금전적 보상과 지원은 우리나라 출산율의 변동 추이를 볼때 예비 부모들의 출산 의사 결정에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에따라 저출산의 사회구조적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사교육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보고서를 통해 월평균 실질 사교육비가 1만원 증가하면 합계출산율이 0.012명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하였으며, 합계출산율 하락의 약 26.0%가 사교육비 증가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주택 가격과 자녀 교육비 관련 요인들은 저출산 현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아주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교육비와 출산 간 연계성을 고찰해 본 결과, 고학력화로 인해 결혼이나 출산이 지연 되는 문제나 과중한 양육과 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을 유발하는 연계성을 찾아낸 것이다. 2000년 이후로 특히 우리나라의 10대, 20대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입시를 치르고, 또다시 취업 준비를 위한 무한 경쟁을 해왔다. 성공과 출세에 대한 부모님의 교육비 지원에 부응하기에 오랜 기간 학업을 통해 고학력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서른 살이 다 되어서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이 비일비재하다. 결혼의 기반을 갖추기 위한 초혼 연령도 늦어진 상황에 우리나라 '일자리 상황'과 결혼 자금의 크기를 고려했을때 실제로 결혼 자체를 결정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도 고학력은 노동시장에서는 유리한 입지를 담보해 줄 수 있지만 결혼시장에서는 배우자 선택의 범위와 기회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신부보다 더 고학력의 신랑감을 찾는 기존 한국의 사회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하더라도 본인이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지원받은 교육비를 계산해보면 이미 결혼 연령이 늦은 상황에서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거나 한 자녀만 출산한 이후에 추가적인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실현시켜 주고자 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성취 욕구가 교육과열과 늦은 결혼 즉, 만혼을 야기하고, 부모가 가진 경제 소득이 본인에게 전폭적으로 투자되었던 경험은 합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자녀 사교육비 부담으로 다시 작용하게 된다. 본인이 퇴직이나 은퇴할 때까지 아이를 제대로 키워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한국 사회의 부모로서 공통적으로 갖는 출산과 양육의 큰 경제심리적 부담이다. 이제 한국은 투자된 사교육비를 회수하기에 힘든 저성장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노동시장에서 명문대 졸업장과 박사 학위의 사회적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사회진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어려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국가가 알아서 행복하게 키운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정책입안자들이 출산 장려금이나 보육비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사회구조적으로 최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양육 및 교육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이 한국이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성장과정을 누렸다면 아이를 더 낳어서 내 아이들에게 그 무형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 없이도 좋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적 성취와 사회적 역량을 충분히 키워줄 수 있는 양육과 교육 환경이 절실하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경제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세대가 결혼과 출산이 줄 엄청난 행복과 풍요로움을 기대하게 만들어 보자.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의 한국이 아닌,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기 가장 좋은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박세원

[이슈&인사이트] 부동산 PF부실위험과 캐피탈 업계의  위험관리

최근 우리 경제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가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속되는 고금리 여파로 가계의 채무부실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PF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PF는 이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돌입으로 추가적인 부동산 금융 부실의 가능성도 있다. PF는 기업 담보에 기초한 금융권 대출과 달리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현금흐름에 의한 금융지원방식으로 부동산 경기에 크게 연동된다. 국내 부동산 개발은 사업을 주관하는 시행사의 토지 매입과 사업 인허가 획득으로 시작되며, 초기 사업단계에 필요한 비용은 대체로 저축은행, 증권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으로부터 조달된다. 조달된 자금은 분양과 착공절차가 진행되는 본 사업과 초기 사업을 연결한다는 의미에서 브릿지론(bridge loan)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최근 A급 이하 캐피탈사의 부동산 PF 대출이 자기자본의 1.5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저축은행, 증권사와 달리 수신기능이 없는 캐피탈사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런데 고금리 여파로 조달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전적으로 회사채 등 시장성 수신에 의존하는 캐피탈사의 경우 브릿지론 부실이 확대되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캐피탈 업권은 자동차 할부금융 및 리스업에 주력하는 A급 이상 회사와 기업금융 및 PF 대출의 사업 비중이 높은 A급 이하 업체로 구분된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 브릿지론 보유 비중이 큰 관계로 건전성 악화 가능성이 큰 편이다. 따라서 향후 A급 이하 캐피탈사의 대출자산 부실화로 인한 고정이하자산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자산 부실화에 대비한 대손충당금 적립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현재 130% 수준의 대손충당금 요적립액 대비 실적립액 비율을 상향 조정해서 유지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대손발생시 이를 감내할 자본확충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적정성 지표로 많이 사용되는 레버리지 배율에는 문제가 있다. 현 레버리지 배율은 자기자본 대비 총자산의 배율을 의미하는데, 캐피탈업권의 경우 10배가 한도로 부여돼 있다. 레버리지 배율을 통해 캐피탈사의 부채위험 및 자본적정성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레버리지 배율 규제가 캐피탈사의 위험 발생에 따른 완충 수준을 판단하는 데 있지만, 현 레버리지 배율로는 정확한 자본확충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총자산의 경우 운용되는 자산종류별 위험 수준이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A급 이하 캐피탈사의 경우 PF 및 기업금융 등 위험자산 비중이 높지만, A급 이상의 캐피탈사는 자동차 할부금융 및 리스자산 비중이 높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 부실 가능성이 작고,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노출액도 적은 편이다. 따라서 자산종류별 위험 수준을 차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명목 수준의 현 레버리지 배율은 규제지표로 활용이 제한된다. 이로써 레버리지 배율 지표의 개선을 위해 각각의 자산종류별로 적용되는 위험가중치를 곱한 후 이를 모두 합산하는 방식의 위험가중자산을 총자산 대신 사용해야 한다. 위험가중자산을 분자로 고려할 경우 A급 이상 캐피탈사의 레버리지 배율은 하락하고, A급 이하의 레버리지 배율은 분자의 금액 증가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명목 레버리지 배율의 경우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수치가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를 토대로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자본적정성 수준이 높아진 것으로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실상은 신용등급이 낮은 A급 이하 캐피탈사의 조달금액이 줄어들며 부채 축소에 따른 총자산 수치가 감소한 데 원인이 있다. 오히려 A급 이상 캐피탈사의 경우 중고차 할부금융 및 리스 이용 수요가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등급을 활용하여 자금조달 규모가 늘어났다. 따라서 오히려 A급 이상 캐피탈사의 레버리지 배율이 상승한 것으로 확인된다. PF 대출 부실에 따른 캐피탈업권의 부채위험과 자본확충 수준을 가늠해줄 레버리지 배율이 위와 같은 착시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은 업권의 건전성과 자본적정성 수준의 판단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PF 대출 부실로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제2금융권 중에서 수신기능이 부재해 유동성 위기 가능성에도 노출되어 있는 캐피탈 업권에 대한 위험관리 강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레버리지 배율의 개선이 시급하다. 아울러 자본력이 취약한 제2금융권 업체들의 무분별한 부동산 PF 참여를 제한하는 제도 마련도 시급하다. 금융사의 부실은 금융소비자의 손실로 귀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PF 채무보증, 브릿지론 등을 취급하는 제2금융사에 대한 위험노출액 수준을 제한하고, PF 대출 집중위험 규제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서지용

[주원 칼럼] 미·중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최근 한국 사회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미묘하다. 1992년 수교 당시 우리나라의 대중국 교역 비중은 전체 수출액의 3.5%, 수입의 4.6%로 보잘 것 없었다. 그러던 것이 수출을 기준으로 보면 1997년 10%를 넘어선 데 이어 2005년에는 20%를 넘어섰다. 그리고 2018년에는 대중국 수출비중이 26.8%로 치고치를 찍으며, 같은해 대미국 수출 비중(12.0%)의 두배를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 그만큼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이는 양국 모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윈윈하는 국제 분업 구조가 잘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만 놓고 보면 대중국 수출 비중이 18.8%로 대미국 수출(19.6%)에 역전됐다. 다만 대중국 수입(비중 20.5%)은 대미국 수입(11.8%)보다는 높아 공급망 측면에서 대중 의존도는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출시장으로서의 중국 경제에 대한 위상이 약화되는 데는 중국 경제가 당면한 디플레이션(경기침체)이 가장 큰 원인이 이지만, 중국 기업의 경쟁력 상승으로 인한 우리 기업들의 중국 시장점유율 하락과 미·중 갈등에 따른 서방 세계의 중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의 원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기 침체 요인은 단기적인 리스크여서 경기 순환 관점에서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나머지 두 개의 요인은 상당 기간 우리에게 불확실성으로 다가올 것이다. 미·중 간의 헤게모니 전쟁이 지속된다면, 결국 양국 간 무역, 투자, 기술 등의 관계에서 단절이 발생하면서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고, 중국 시장은 더욱 폐쇄적으로 되는 것과 동시에 개방성을 잃어버린 중국 경제가 외부 혁신 동인을 상실하면서 저성장에 빠지게 돼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는 속도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패권 전쟁에서 유래된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라는 말이 지금의 중국이 처해 있는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는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패권국과 신흥국의 갈등이 해소되는 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승패가 갈려 명확히 서열이 정리가 돼야 끝났다는 경험이다. 이제 시작된 미·중 전쟁이 장기간 우리에게 불확실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오는 11월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 결과가 이 갈등을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 방법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보기가 두 개인 이지선다(二枝選多)의 객관식 문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봐가며 가운데서 적절히 대응해야 하는지도 아직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중국 시장에 주력하면서 대체할 시장을 마련해 두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이나, 등거리 중립 외교적 접근 방식을 가져와 양국의 갈등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스윙보터(Swing Voter)' 전략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단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은 시장 규모나 생산기지 입지 측면에서 중국을 대체할 국가는 거의 없다. 인도 시장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면 인도 시장은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또한 가운데서 '스윙보터'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겠다는 전략도 과연 우리 생각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그럴싸해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할까?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제시되는 이러한 전략은 정부 차원의 대응에나 적용될 수 있는 제한적 용도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시장의 대응은 이처럼 판에 박힌 것처럼 명확할 수 없다. 산업에 따라서, 기업에 따라서도 다양한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어찌 보면 이 난제에는 솔루션이 없다. 어떤 답도 틀릴 수 있고, 어떤 답도 맞을 수 있는 해답지가 존재하지 않는 주관식 문제다. 주원

[이슈&인사이트] 사과 그리고 유감

'사과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 혹은 대중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자신의 진정성을 잘 표현해 사과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법칙'이다. '사과의 법칙'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 중 공통적인 요소 네 가지를 꼽자면 첫째, 사과는 빠르고 진정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다만'이나 '그러나' 등의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밝히고,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실행 계획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사과의 법칙'을 강조한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대담 때문이다. 대통령의 신년 대담은, 방영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일단 여론의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왜 생방송이 아니고 녹화로 방송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20년 넘게 방송 MC를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정치 관련 인터뷰나 토론은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한다. 녹화를 하면 불필요한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치인 측에서 왜 그 부분은 편집했느냐, 혹은 편집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왜 안 해줬느냐는 항의가 빗발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토론의 경우는 더하다. 상대방은 편집해 줬는데, 왜 나는 편집해 주지 않았느냐는 항의가 쇄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런 꼴사나운 상황을 보지 않기 위해 현재 대부분의 정치인 출연 시사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진행한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대담은 녹화로 방영됐기 때문에 뒷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지적할 부분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라면서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과는 그 타이밍과 진솔함이 중요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사과는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다. 해당 사안의 파장을 줄이려 했다면, 진작에 사과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을 놓쳐 지지율이 급기야 20%대로 추락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지지율 29%를 기록했다. 이런 지지율 저하는 전적으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서 비롯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해당 논란이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만일 윤 대통령이 재빠르게 대응했더라면, 상황은 조금 나아졌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과의 시기도 놓쳤지만, 사과의 진정성 부분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라는 부분이 바로 “사과"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인데, 사과는 해석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의 진정성을 자연스럽게 느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윤 대통령의 발언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송구하게 됐다"는 말 한마디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이다. 더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윤 대통령은 “정치공작이라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 안 하게 조금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며 “단호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을 때는 선을 그어가면서 처신해야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언급 속에는 앞서 사과의 법칙에서 언급한 '재발 방지 의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은 우리 비서실에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이런 일을 예방하는 데는 별로 도움 안 되는 것 같다“라고 언급한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음을 자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제2부속실을 설치하기도 전에 별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은, 대통령이 제2부속실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인상을 여론에게 주기에 충분하다. 거기다가 다른 대안 제시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의 대담은 '사과'라는 측면에 보자면, 의미 부여가 쉽지 않다. 필자는 후보 시절의 윤 대통령을 두 번 본 적이 있다. 두 번 모두 대선 후보 TV 토론 MC를 하면서다. 당시 윤 대통령에게서 받은 인상은 상당히 솔직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 솔직함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런 윤 대통령의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한국 교육의 서글픈 현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독일 사람 안톤 숄츠(Anton Scholz)씨가 쓴 『한국인의 이상한 행복』(문학수첩, 2022)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책이면서 고마운 책이다. 한국인의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교육에 대한 것도 있다. “유치원 입학시험이 있는 곳도 있다"(151면), “교과 선행 학습은 물론, 한국의 사교육 산업은 줄넘기나 레고 만들기처럼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조차 학원에서 배워야 할 과목으로 만들어 낸다"(154면)는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중요한 것은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156면), “독일 학생들은 1시간씩 1주일간 수영을 배우면 웬만큼 하는데, 한국에서는 6개월이 걸려도 수영을 제대로 못하는, 말하자면 '가르치는 척'하는 교육"(156면)에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인의 영어 수준은 높아졌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문 편"(156면), “독일에서는 잘 배우려고 시험을 보는데 한국에서는 시험을 잘 보려고 배우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한국 교육의 특징"(159~160면)이라는 대목에서는 감탄하게 된다. “무엇을 배우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에 교육의 초점이 있는 한국"(160면)이라는 비판은 설득력 있다. 대학 교수들은 요즘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점점 좌경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이 아주 조금씩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좌경화의 원인은 정치권과 좌파 경제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백광엽 지음,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미래, 2023)를 보면, “한국에는 '따뜻하고, 착한 경제학'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는 자칭 진보경제학자 그룹이 존재한다. 서민을 위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진심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다. 이들은 여러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고 검증되지 않은 '진보 경제정책'으로 폭주했다. '사람 중심 경제'라는 깃발 아래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기획하고 밀어붙인 일단의 학자들이 대표적이다"(11면, 들어가는 말). “진보경제학자의 대부 변형윤 교수가 직접 '학현학파'로 거론한 4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등 자칭 진보정부에서 큰 감투를 썼다. 정권을 바꿔가며 두세 번씩 요직에 오른 이도 수두룩하다"(105면). 해가 갈수록 성적이 나빠지고 있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에 있다. 시험이 공부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 한글학회가 '한글 전용'을 주장해 관철됐고, 학생들이 '익일', '작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금일'을 '금요일'로,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알아듣는다. 그런데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미적분Ⅱ와 기하를 보는 '심화수학'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미적분은 '수학의 꽃'으로서 자연과학ㆍ공학 분야에 핵심 역할을 하는 데다, 인공지능(AIㆍ기계ㆍ원자력ㆍ바이러스 증식 등의 현상을 분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과학 영역인 경영, 경제, 사회학, 심리학 등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통계학 지식을 학부 수준에서 다루기 때문에 그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에도 미적분은 필수다. 기계공학의 근본인 뉴턴 역학은 힘(벡터)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하 과목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벡터를 좌표계 및 대수로 연결하는 개념을 접하게 되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기하를 모르고 어떻게 기계를 만들고 건축설계는 어떻게 하나. 숄츠씨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시험과 무관한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인데, 오히려 수학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노라 자화자찬하는 장관은 화성 사람인가? R&D 예산도 크게 줄었다. 정부가 우주 분야 육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서 우주 분야 기업을 지원하는 '스페이스 이노베이션' 사업 등이 대폭 삭감되었다. 과학자와 대학교수들을 화나게 해 간단하게 적으로 돌려놓았으니 4월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는 이미 정해진 것 아닌지?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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