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오기 전에 항상 사외이사 장(場)이 선다. 올해 10월 말 현재 대기업 집단 상장사 전체 사외이사 1111명 중 내년 주주총회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인원은 전체의 39.4%(438명)에 달한다. 그런데 기업은 사외이사를 어디서 찾을까?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는 지난달 ‘대기업집단 상장사 사외이사 10명 중 3명이 관료ㆍ법조 출신’이라는 분석 자료를 내놨다. 이 자료를 통해 사외이사 시장은 관료ㆍ법조계 인사가 대세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대기업집단 상장사 전체 사외이사 1111명 중 34.8%인 387명이 관료ㆍ법조 출신으로 조사됐다. 호반건설, 장금상선, 고려에이치씨, 반도홀딩스 등 4개 기업집단은 사외이사 전원을 전직 관료와 법조인으로 꾸렸다고 한다. 동원(71.4%), 신세계(69.6%), 중흥건설(66.7%), 삼표(66.7%), 삼천리(60.0%) 등 5개 그룹은 공무원과 법조인 비중이 60%를 넘는다. 관료·법조계 사외이사 비중이 50% 이상인 그룹은 17곳에 달한다. 관료 출신 사외이사 중에서는 국세청 출신이 48명(21.3%)으로 가장 많고, 공정거래위원회 25명(11.1%), 산업통상자원부 20명(8.9%), 기획재정부 16명(7.1%), 금융감독원 14명(6.2%), 금융위원회 12명(5.3%), 감사원 10명(4.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필자가 여러 기업인들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처럼 관료 출신이 사외이사로 선호되는 까닭은 기업에서 고위직 직업 공무원의 쓸모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런 세무조사가 들이닥치면 참으로 곤혹스러운데 국세청 출신이 앞장서 해결해 주거나 조언을 해준다면 기업과 기업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 외에 젊어서 행정고시 등을 통해 바로 중견 공무원으로 임명된 후 정부 각 부처를 두루 거치면서 실력과 인맥을 쌓은 차관과 국장 등 고위 공무원은 기업의 대관업무에 적격일 것이다. 혹시나 기업이 공정위와 트러블이 있거나, 금융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는 경우라면 그 분야에 오래 종사했던 고위 공무원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자명하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고 잡으려 할텐데, 회사의 녹을 먹는 임원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경우는 다르다고 한다. 장관과 같이 정치인 어공은 한국에서는 장관 재직 기간이 워낙 짧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따라서 짧은 기간 내에 인맥 구축도 어렵고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교체되기 때문에 늘공(늘 공무원을 했던 분)보다 쓸모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한다. 장관 출신이 사외이사가 된 경우는 인품과 식견이 훌륭한 때문일 것이다. 다음으로 법조계 인사가 많은 것은 기업인들은 언제든지 갑자기 수사를 받거나 기소 또는 구속 등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은 한국의 엄격한 배임죄 또는 업무상 배임죄 때문인데 이 배임죄라는 것이 아주 고약해서 업무처리가 조금만 잘못되어 회사가 손해를 입으면 민사적 손해배상청구와 형사적 고발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발은 주주, 직원, 거래처 등 누구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돼 형사사고 발생 가능성은 몇 배나 높아졌다. 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회사 임원으로서는 전직 판ㆍ검사나 현직 변호사의 법적 조언은 매우 유익할 것이라는 데는 의문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현실이 이렇다. 그러므로 기업인들은 관료와 법조 위 두 직군에서 사외이사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CEO 스코어’의 분석에 따른 경험적이고 현실적 조언이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